슈베르트처럼 방황하고 리스트처럼 사랑하라
QR코드와 함께 읽고 듣고 보는 클래식 이야기
클래식을 즐기는 여섯 가지 방법
피아니스트가 대중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무대 위에는 피아노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피아니스트는 곧장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피아노 곡 한 소절을 연주한다. 그리고 그 곡의 작곡자, 몇 백 년 전에 그 곡을 연주했을 어떤 음악가의 인생을 소개한다.
이것은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의 저자인 피아니스트 조현영 씨가 실제로 ‘피아노크’라는 대중강연을 하는 모습이다. 시중에 쏟아져 나온 클래식 관련 책은 무수히 많다. 그 모든 책은 어떻게 해서든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는 클래식은 ‘어렵다(혹은 낯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오랜 시간을 이겨낸 것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노력과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클래식은 어려운 음악이라는 낙인이 찍혔는데, 사실 어렵다기보다는 낯설어서 즐기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300~400년 전에 만들어진 음악이 어찌 단박에 이해되는 쉬운 음악이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한문으로 쓴 조선왕조 오백 년 역사를 한 번 읽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제가 경험한 클래식은 그저 단순한 음악이 아닙니다. 클래식은 사람이고 사랑이며, 한 시대를 대변하는 역사입니다. 일단 즐기는 수준까지 가보자고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클래식이 평생 함께하고 싶은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에서는 일단 즐기기로 한다. 클래식이 ‘낯설어서’ 어렵다면, ‘익숙한’ 클래식부터 먼저 찾아보는 방식이다. 그래서 광고,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클래식을 들어본다. 익숙해서 당장 흥얼거릴 수도 있는 이 멜로디가 그렇게나 유명하고 위대한 음악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일단 클래식과 안면은 튼 셈이다.
그 다음은 클래식과 사랑에 빠지는 방법
이 책에는 100여 곡의 클래식 영상이 QR코드로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를 읽다가 QR코드를 찍으면 <사계>의 명연주 장면과 <사계>가 사용된 광고 영상을 보는 식이다. 그리고 비발디의 인생, <사계>를 작곡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계>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이어진다. 이렇게 ‘집요하게’,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클래식 한 곡 한 곡을 짚어나가다 보면 독자들에게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취향이 생길 것이고 음악가나 연주자에 대한 호불호가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가 독자들을 클래식과 사랑에 빠뜨리는 방법이다.
조현영이 ‘피아노 토크’에서 들려주는 음악가 이야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작곡가 베토벤, 엄청난 천재라는 것만 알고 있는 모차르트. 지하철에서 나오는 음악의 작곡가는 비발디. 그런데 우리가 음악가에 대해 보통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이제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에서 소개하고 있는 음악가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알면 더 이상 클래식은 낯선 세상의 음악이 아니다. 그들의 인생은 신기하게도 201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나 우리가 짊어진 걱정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몇 명의 음악가들을 소개한다.
# 게스트 1 비발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비발디의 머리카락은 빨간색이었습니다. 비발디는 자신의 빨간색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의 음악 역시 화려한 치장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발디는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여성적인 취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적이고 화려한 취향 탓에 비발디의 음악은 한마디로 총천연색 음의 대향연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대부분 밝고 화려합니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비발디는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사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사를 드리는 사제 대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신부가 됩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갈 곳 없는 어린 고아들을 데려다 교육하는 성당이 많았거든요. 우리에게 <사계>로 알려져 있는 곡은 바로 그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학습용 음악이었습니다.
# 게스트 2 바흐
바흐는 거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요한 암브로시우스 바흐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나 열 살에 부모를 모두 잃었습니다. 큰 형의 손에서 자라면서, 바흐는 이미 어린 나이에 삶이란 온전히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겠지요. 일찍 철이 든 그는 모든 것을 독학으로 배웁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기에 달빛을 벗 삼아 악보를 베껴 가며 공부했다는 그의 일화는 아주 유명하지요. 절실함은 결핍이 주는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시력을 잃어 가면서도 좋은 악보 하나를 더 익히고 알아가는 혼자만의 행복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흐는 오르간, 하프시코드 등의 건반악기 음악과 함께 대규모의 관현악곡을 많이 작곡합니다.
# 게스트 3 헨델
헨델은 어릴 적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궁정 이발사이자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는 헨델이 예술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하지요. 예술가의 삶이란 예나 지금이나 척박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헨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내 음악가의 길을 선택합니다. 헨델은 함부르크에서 쳄발로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옵니다. 이탈리아는 오페라가 크게 융성했던 나라입니다. 그곳에서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키운 헨델은 화려한 무대 장치와 이야기가 있는 오페라가 전망 좋은 사업임을 감지합니다. 이후 헨델은 오페라로 대성공을 거둡니다. 말 그대로 공연이 대박이 난 것이지요. 헨델은 음악가이면서 사업가이기도 하고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한 심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흔들 때 의미가 생기는 법인데, 헨델은 그 부분에서 아주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 게스트 4 텔레만
텔레만은 지금은 바로크 대표 작곡가 대열에 끼지 못하지만 과거에는 바흐보다 훨씬 유명했던 작곡가입니다. 다작을 했다는 바흐의 작품 수가 1,200여 개 정도인데, 텔레만은 4,000개가 넘는다니 ‘울트라 초특급’ 다작의 주인공입니다. 가난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바흐와는 달리 텔레만은 음악과 전혀 관계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그야말로 선천적인 재능도, 환경 덕도 못 봤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별한 정규교육도 받지 않았고 유명한 스승도 없었지만 혼자 끊임없이 자료를 찾고 악보를 연구한 그는 ‘텔레만 표’ 음악을 작곡합니다.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펼친 텔레만은 타펠뮤직(Tafelmusik, 식탁음악, 식사를 하면서 듣는 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작곡합니다. 바흐는 신 중심의 음악, 헨델은 왕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면 텔레만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음악을 작곡한 것이지요. 밥을 먹으면서 이런 클래식을 듣는다니 얼마나 멋진 발상입니까?
# 게스트 5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여섯 살에 왕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청혼할 정도로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꼬마였습니다. 일찍이 음악가인 아버지가 아들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런 재능을 펼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유럽 순회 연주를 다녔습니다. 잦은 연주 여행으로 하나밖에 없는 누이 난네를과 어머니를 떠나 있었던 모차르트는 여행 내내 틈틈이 편지를 쓰며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합니다. 항상 편지 끝에는 “천 번의 입맞춤을 보내며”라고 써서 극진한 가족애를 보여주기도 했지요. ‘아마데우스’라는 이름은 ‘신의 축복을 받은’이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모차르트는 이름 그대로 신의 축복을 받아 우리에게 천상의 소리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작품번호가 붙은 것만도 626곡(K .626 레퀴엠)이나 되니 기억되지 않은 곡들까지 치면 얼마나 많을까요?
# 게스트 6 파가니니
19세기 콘서트홀 문화의 성황과 함께 클래식을 무대 위의 예술로 승격시킨 파가니니는 화려한 멜로디와 어려운 테크닉으로 많은 이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리스트의 멘토 쯤 되는 파가니니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음악에 미쳐 살았습니다. 대단한 음악적 재능이 있는데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연습했다니, 그 앞에선 재능 탓도 못 하겠습니다. 다른 예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음악 그 자체만으로 진검승부를 보여 줬던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곡을 제외한 다른 곡들은 거의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가사가 있는 가곡도, 화려한 무대예술인 오페라도 작곡하지 않고 오로지 본인의 음악과 바이올린 연주 그 자체에 의미를 뒀던 비르투오소였습니다. 12년 일찍 태어난 베토벤이 악보 안에서 음악의 고뇌와 사색의 깊이를 표현했다면 파가니니는 무대에서 완전체가 되는 연주자이자 음악가였습니다.
# 게스트 7 생상스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는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면서 ‘프랑스 국민주의 음악 협회’를 결성해 활동하는 등 음악적인 면에서 매우 부지런하고 적극적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생상스는 ‘모차르트의 재래(再來)’라고 불릴 만큼 천재 중의 천재였습니다.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였고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 작가, 심지어는 천문학에 점성술까지 그는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었습니다. 장르별로 그가 남긴 명곡들은 많지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곡은 <동물의 사육제>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자식에게 너무 집착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생상스는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천재였지만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힘들었고, 막상 결혼을 해서는 아이가 죽고 말년에 여행 중이던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객사하는 등 개인의 삶은 불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