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턱수염
오달고는 벌써 일주일째 차가운 길바닥 위에서 검정 구두를 기다리고 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지도 못해 기운이 없지만, 이차선 도로 위를 떠나면 검정 구두를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배고픔과 추위만 어떻게든 참으면 될 줄 알았건만, 갑자기 나타난 생선 장수에게 다짜고짜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가게 된다. 오달고는 끔찍한 생각이 몰려오는 와중에도, 검정 구두에게 가는 길을 꼼꼼하게 되짚으며 기억하려 애쓴다.
쿵, 쿵, 쿵! 갑자기 땅이 울렸다. 오달고 몸도 저절로 튕겨 올랐다. 억새 뒤쪽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쏜살같이 다가왔다. 이내 시커먼 그림자가 오달고 바로 위로 떠올랐다. 코끼리만큼 커다란 물고기가 그대로 덮쳐 왔다. “깨앵!” 물고기가 오달고를 품에 꽉 안았다. 몸을 비틀어 대었지만 덩치에 눌려 꼼짝할 수 없었다.
“잡았다!”
굵직한 사람 목소리에 오달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사람의 짧고 굵은 턱수염이 몸을 찔러 댔다. 턱수염의 몸엔 비린내가 가득했다.
“깨애앵 애앵!”
오달고는 네발로 허공을 차 대며 저항했다. 턱수염은 막무가내로 오달고를 안아 들고 길가에 세워진 트럭으로 데려갔다. 트럭 짐칸은 낡은 회색빛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천막이 벌어진 틈으로 통나무 도마에 놓여 있는 칼이 보였다. 도끼처럼 두툼한 몸에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였다. 도마 위에 얼룩진 핏자국이 보였고, 잘린 생선 머리와 핏물에 뒤섞인 내장들이 나뒹굴었다. 피 냄새와 비린내가 뒤섞여 천막 밖으로 밀려 나왔다. 오달고의 몸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9쪽에서
별똥별
생선 장수는 제멋대로 오달고를 허름한 시골집에다 맡긴다. 그곳에서는 어눌한 말투의 할머니가 버림받은 개들을 혼자 돌보고 있었다. 집의 터줏대감 격인 늙은 개 호박씨로부터 할머니 집의 사정을 듣고 이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오달고는 콧방귀를 낄 뿐이다. 자신에게 가족은 검정 구두뿐이므로,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와, 완전 달덩이네. 뭔 별똥별이 저리 크대?”
갑자기 턱수염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오달고는 감기던 눈을 번쩍 뜨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밝고 커다란 별똥별이었다. 예전에 검정 구두와 함께 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검푸른 하늘에 실처럼 작은 것이 잠깐 번쩍이다 사라졌다. 지금은 뛰어오르면 꼬리를 물 수 있을 것처럼 가까웠다. 별은 떨어지기 싫은 듯 까만 하늘에 길게 하얀 발톱 자국을 남겼다.
“할매, 우리 얼른 소원 빕시다.”
턱수염은 두 손을 모아 이마에 대고 눈을 감았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오달고는 눈을 감고 소원을 빌기엔 아까운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별똥별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오달고도 살며시 눈을 감았다.
‘다시 검정 구두를 만나게 해 주세요. 가족을 찾게 해 주세요.’
아무리 멋진 별똥별이라고 해도 가족만큼 보고 싶진 않았다. 오달고에게는 가족이라고 해 봐야 검정 구두 하나뿐이다.
“요 녀석이 뭔가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은데요.”
기도를 끝낸 턱수염이 활짝 웃으며 오달고와 눈을 맞추었다. 오달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14~15쪽에서
하늘에서 내린 선물
오달고는 할머니의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뒷산으로 달아난다. 자신을 따라오는 할머니를 피해 가파른 산을 잽싸게 오르다가 무시무시한 외눈박이 도사견과 맞닥뜨리게 된다. 죽을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오달고는 할머니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평화롭기만 하던 할머니 집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항의와 민원으로 인해 내쫓기고 뿔뿔이 흩어질 날만 받아놓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된다. 별 뾰족한 수가 없어 갑갑해하던 차에 호박씨가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직접 별똥별을 찾아 나서자는 제안을 한다.
“별똥별을 찾으면 더 좋은 곳에서,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자원봉사자들이 말했어. 우리, 별을 찾자!”
“별이라고? 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 말이야?”
캔그레이트맥스장군이 눈이 커졌다.
“그래, 그 별이 땅에 떨어졌대.”
“작은 점을 어떻게 찾아? 아, 반짝거리겠지?”
“그렇게 작지 않아. 반짝거리지도 않고 그냥 검정색 돌멩이래.”
“검정색? 근데 불 꺼진 별을 찾아서 뭐 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몰라, 돌인지 별인지 사람들한테는 엄청 중요한가 봐. 저거 봐 봐.”
때마침 TV에서는 까만 돌을 들고 좋아서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저런 거라면 나도 봤어.”
누군가 끼어들었다. 호박씨가 고개를 돌려 보니 오달고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지난번에 산으로 도망갔다가 분명 저런 돌을 봤어. 검은색 돌이 땅을 움푹 파고 들어가 있더라고. 돌 있는 곳에 내가 데려다줄게.”
오달고가 말했다.
“또 도망가려고 거짓말하는 거지?”
호박씨가 풋풋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돌을 찾아 주면, 나 같은 건 풀어 줘도 상관없잖아.”
“풀어 준다니……, 여기가 무슨 감옥이야?”
호박씨가 코에 주름을 잡아 가며 이빨을 드러냈다. 누렇게 썩은 이빨이 고작 서너 개밖에 없어서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검은색이라고 다 너희가 찾는 돌이 아냐. 독특한 냄새가 있다고! 내 코는 그걸 그대로 기억해. 날 데려가든 말든 결정은 너희가 해.” -61~62쪽에서
들개들이 가르쳐 준 별
개들은 사람들이 놓은 덫과 들개들의 습격, 멧돼지와의 한판 승부, 투견꾼과의 목숨을 건 대치 등의 사건 사고를 이겨 내고 기적적으로 별똥별을 찾는다. 그러나 별똥별을 집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망연자실해한다. 한편, 투견꾼이 일으킨 소란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개들은 ‘별을 지키는 아이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유명해진다. 별똥별을 가로채려는 인간들의 탐욕스러운 손길은 막아 냈지만,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다시 찾아오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앞날이 깜깜했다. 지친 개들은 말없이 돌 주위에 하나둘 쓰러지듯 둘러앉았다. 가을 찬바람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누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닌데 개들은 서로 몸을 바짝 붙였다. 캔그레이트맥스장군이가 슬그머니 꼬리를 움직여 떨고 있는 오달고의 몸을 덮어 주었다. 북슬북슬한 털이 몸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오달고가 쳐다보자 캔그레이트맥스장군이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캔그레이트맥스장군아! 자면 안 돼. 잠들지 말라고.”
호박씨가 말했다.
캔그레이트맥스장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 침묵 속에서 개들은 눈만 껌벅거리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구름에 달이 가려졌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내 이름은 오달고야! 오줌을 달고 살아서 오달고. 흐흣흣!”
뜬금없이 오달고가 혼자 말하고 웃었다. 멍하니 보던 호박씨가 갑자기 크크크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캔그레이트맥스장군이와 독구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개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어 대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별들은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콕콕 박혀 수줍게 빛나고 있었다. -97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