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기술발전과 심령주의의 절정이 공존한 시기, 19세기다. 축음기, 무선전신, 증기선, 자동차 등등 신기술의 황금기였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가히 폭발적이었던 강신술의 절정기였다. 신기술과 강신술이 중첩되는 아이러니의 시대. 1882년 심령현상의 과학적인 연구 목적으로 창립된 심령연구학회, 1884년 현대적 심령주의의 탄생에 기폭제가 된 폭스 자매의 출현은 이 아이러니한 공존의 결정적인 장면일지 모른다.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특정시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망자의 영혼이 산자와 교감한다는 믿음, 현실과 다른 영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것이었고,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은 더 많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교령회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지금은 죽고 없는 그들의 소중한 망자와 소통을 꿈꾸었다. 때론 충격적이고 대부분 인상적인 영매들이 망자와의 소통을 주선했고 이 과정에서 경이로운 일들이 목도되었다. 대중의 미신과 경신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썩 효과적이지 않았다.
이때 유령 사냥꾼들이 등장한다. 19세기 신기술로 무장하고 심령 감별사로 나선 이들 중에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 의해 영매들의 사기 행각이 속속 드러났다. 유령은 없고 유령 사냥꾼들만 있다는 자조 속에서도 영계의 증명에 한발 더 다가서는 사례들도 나왔다.
『역사적 유령과 유령 사냥꾼』은 유럽 전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명한 유령 사례들을 소개하고, 사례마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분석을 곁들인 저서다. 총 11장으로 각장마다 9개의 유령 사례와 분석에 이어 따로 2개의 장을 할애하여 유령 사냥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 헨리 애딩턴 브루스는 유령에 대해 냉소적일 정도로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분석에 사용한 이론들이 시기적으로 정신 병리학의 초기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서 다소 단순하고 피상적이라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유령 사례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이 책은 유령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접근하되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루덩의 악마들」은 1634년 프랑스 루덩에서 벌어진 악령 빙의 사건이다. 루덩의 한 수녀원에서 수녀원장을 비롯한 수녀들이 악마에 빙의되고 그 진원지로 우르뱅 그랑디에 신부가 지목되면서 큰 파장이 일어난다. 관련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인연과 루이 8세의 왕권 강화정책이 맞물리면서 이 사건은 마녀재판으로 흘러간다.
<책 속에서>
루덩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예스럽고 낭만적인 두 도시 즉 투르와 푸아티에의 중간에 있다. 오늘날의 루덩은 너무도 소박하고 너무도 께느른한 마을이나 17세기에는 제법 괜찮은 지역이었다. 당시의 시장과 상점과 여인숙들이 호황을 누렸다. 교회마다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자부심 강한 귀족과 더 자부심 강한 성직자들은 물론 검소한 상인들과 활동적인 기술공들이 마을의 비좁은 길들을 끝없이 지나고 또 지나갔다.
흥미 거리가 풍부한 루덩에서도 단연 성과 수녀원이 으뜸이었다. 성 안에는 용맹한 루덩 주민들이 봉건 영주들의 야망과 왕의 폭정에 맞서 피난처와 요새를 구축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고풍스러운 수목 속에 쾌적하게 자리 잡고 있는 수녀원으로 자녀들을 보내 교육시켰다.
우리가 발길을 돌려 가야할 곳이 바로 이 수녀원이다. 루덩의 선량한 주민들을 괴롭힌 악마가 풀려난 진원지가 바로 이 수녀원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수녀원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동종의 많은 수도원들이 그렇듯이 이 수녀원도 당시 거세지는 신교를 저지하려는 가톨릭 반종교개혁의 산물이었다.
사건의 발단인 1616년, 우르술라회 교단이 프랑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처음부터 우르술라회 교단은 귀족 집안의 규수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머잖아 수녀들의 훌륭한 전당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