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콕 레인의 유령」은 육류 시장으로 유명한 런던의 스미스필드 인근 콕 레인에 낯선 남녀 한 쌍이 나타난 것이 발단이 된다. 어딘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는 상류층 분위기를 풍기는 이 남녀는 주로 빈민층이 사는 콕 레인 지역에 이질적인 존재로 비친다. 이들의 재력을 이용하고 싶었던 교구 목사 파슨스의 계획이 처음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켄트와 패니로 알려진 이들 커플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패니가 갑자기 죽고 유령이 되어 나타나 파슨스 목사의 어린 딸인 엘리자베스를 통해 남편 켄트를 살인자로 고발한다. 켄트는 결백을 주장하며 유령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진기한 상황이 펼쳐진다. 새뮤얼 존슨이 조사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당대 유명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전국적으로 큰 주목을 끌었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급격한 기술발전과 심령주의의 절정이 공존한 시기, 19세기다. 축음기, 무선전신, 증기선, 자동차 등등 신기술의 황금기였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가히 폭발적이었던 강신술의 절정기였다. 신기술과 강신술이 중첩되는 아이러니의 시대. 1882년 심령현상의 과학적인 연구 목적으로 창립된 심령연구학회, 1884년 현대적 심령주의의 탄생에 기폭제가 된 폭스 자매의 출현은 이 아이러니한 공존의 결정적인 장면일지 모른다.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특정시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망자의 영혼이 산자와 교감한다는 믿음, 현실과 다른 영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것이었고,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은 더 많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교령회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지금은 죽고 없는 그들의 소중한 망자와 소통을 꿈꾸었다. 때론 충격적이고 대부분 인상적인 영매들이 망자와의 소통을 주선했고 이 과정에서 경이로운 일들이 목도되었다. 대중의 미신과 경신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썩 효과적이지 않았다.
이때 유령 사냥꾼들이 등장한다. 19세기 신기술로 무장하고 심령 감별사로 나선 이들 중에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 의해 영매들의 사기 행각이 속속 드러났다. 유령은 없고 유령 사냥꾼들만 있다는 자조 속에서도 영계의 증명에 한발 더 다가서는 사례들도 나왔다.
『역사적 유령과 유령 사냥꾼』은 유럽 전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명한 유령 사례들을 소개하고, 사례마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분석을 곁들인 저서다. 총 11장으로 각장마다 9개의 유령 사례와 분석에 이어 따로 2개의 장을 할애하여 유령 사냥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 헨리 애딩턴 브루스는 유령에 대해 냉소적일 정도로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분석에 사용한 이론들이 시기적으로 정신 병리학의 초기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서 다소 단순하고 피상적이라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유령 사례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이 책은 유령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접근하되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색다르고 고풍스러운 런던 성묘 교회는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상류층의 예배 장소로 불리기는 어려웠다. 이 교회는 인구 밀집 지역에 있는데, 상류층 사람들은 이 교회를 교구의 소상인과 하층 노동자들에게 넘겨주고 만족해했다. 이따금씩 길 잃은 골동품전문가가 들를 때가 있으나 보통은 외지인이 찾아오는 경우는 일대 사건으로 여길 정도로 거의 드물었다.
이렇다보니 1759년 어느 아침 예배 시간에 사는 환경이 딴판으로 보이는 좋은 옷차림의 젊은 한 쌍이 등장했을 때 이곳에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왔을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 그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키 크고 꼿꼿한 남자는 태도가 느긋해 보였고 여자는 아름답고 우아했다—목을 길게 뺀 사람들과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거센 움직임이 있었다. 남녀가 자리를 잡고 한참이 지나서도 소리죽인 속닥거림은 계속되었고, 이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호기심이 일어났는지 방증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신도석을 안내해준 교구 목사야말로 이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는 특히 이 젊은 남녀가 서로 대하는 다정함을 눈여겨보았다. 이것은 그들이 사랑의 도피행각 중인 연인이라고 목사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목사가 그들로부터 두둑한 감사의 보상을 챙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예배 시간 내내 목사는 문가 그늘진 자리에서 조급하게 연신 나부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