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유령」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시인이자 찬송가작가로 역시 감리교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찰스 웨슬리 등 유명인들을 다수 배출한 영국 웨슬리 집안이 겪은 유령 일화를 다룬다. 웨슬리 형제의 아버지 새뮤얼 웨슬리는 거처인 목사관 화재와 교구민들과의 불화를 극복하고 자리를 잡아가지만 이번에는 유령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이 책에 수록된 「테드워스의 북재비」, 「콕 레인의 유령」과 유사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전면에 세우면서 그 이면에는 어린아이의 병적인 상상력에 주목하고 있다.
급격한 기술발전과 심령주의의 절정이 공존한 시기, 19세기다. 축음기, 무선전신, 증기선, 자동차 등등 신기술의 황금기였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가히 폭발적이었던 강신술의 절정기였다. 신기술과 강신술이 중첩되는 아이러니의 시대. 1882년 심령현상의 과학적인 연구 목적으로 창립된 심령연구학회, 1884년 현대적 심령주의의 탄생에 기폭제가 된 폭스 자매의 출현은 이 아이러니한 공존의 결정적인 장면일지 모른다.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특정시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망자의 영혼이 산자와 교감한다는 믿음, 현실과 다른 영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것이었고,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은 더 많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교령회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지금은 죽고 없는 그들의 소중한 망자와 소통을 꿈꾸었다. 때론 충격적이고 대부분 인상적인 영매들이 망자와의 소통을 주선했고 이 과정에서 경이로운 일들이 목도되었다. 대중의 미신과 경신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썩 효과적이지 않았다.
이때 유령 사냥꾼들이 등장한다. 19세기 신기술로 무장하고 심령 감별사로 나선 이들 중에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 의해 영매들의 사기 행각이 속속 드러났다. 유령은 없고 유령 사냥꾼들만 있다는 자조 속에서도 영계의 증명에 한발 더 다가서는 사례들도 나왔다.
『역사적 유령과 유령 사냥꾼』은 유럽 전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명한 유령 사례들을 소개하고, 사례마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분석을 곁들인 저서다. 총 11장으로 각장마다 9개의 유령 사례와 분석에 이어 따로 2개의 장을 할애하여 유령 사냥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 헨리 애딩턴 브루스는 유령에 대해 냉소적일 정도로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분석에 사용한 이론들이 시기적으로 정신 병리학의 초기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서 다소 단순하고 피상적이라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유령 사례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이 책은 유령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접근하되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새뮤얼 웨슬리 목사는 후대에 주로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와 그에 못잖은 명성을 떨친 찰스 웨슬리의 부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새뮤얼 목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더 있다. 그는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를 세상에 내보냈을 뿐 아니라 17명의 또 다른 웨슬리 형제들의 아버지기도 한데, 그중에서 8명은 존과 찰스만큼이나 성인이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다른 기록에 따르면 새무얼 웨슬리의 자녀는 총 19명이었고, 이중에서 9명이 유아시기에 숨졌다고 함—옮긴이)
새뮤얼 목사 자신도 설교가, 시인, 논객으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설교는 유용하고 예스러웠다. 그의 시는 비평가들에겐 절망이었지만 그 자신에게는 폭넓은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는 휘슬러가 이름붙인 “적을 만드는 부드러운 기술”의 달인이었다. 그는 설교단의 내부에 더 친숙했지만 그렇다고 감방의 내부를 모르진 않았다. 연 수입 1000달러가 넘지 않는 돈으로 그 많은 자식들을 키워냈다. 놀라움으로 가득한 그의 이력에서 가장 믿기 힘든 사실은 아마도 그가 기록으로 남은 진짜 유령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례의 주인공이라는데 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