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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인양하다 상세페이지

폐허를 인양하다

창비시선 391

  • 관심 0
창비 출판
소장
종이책 정가
8,000원
전자책 정가
30%↓
5,600원
판매가
5,600원
출간 정보
  • 2022.05.27 전자책 출간
  • 2015.10.23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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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3.3만 자
  • 10.1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88936404697
ECN
-
폐허를 인양하다

작품 정보

응축된 결의로 삶의 비참을 보듬는 뜨겁고 믿음직한 손길

무엇 때문에 인양할 것인가 인양할 이유가 사라진 것 무엇 때문에 구출할 것인가 구출의 이유가 사라진 것//(…)//무엇 을 인양하려는가 누구는 그걸 진실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그걸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을 건져올리는 기술은 존재 하지 않고 희망이 세상을 건져올린 적은 한번도 없다 그것 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 의 폐허다(「인양」 부분)

한국 노동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노동의 삶에 뿌리를 둔 일관된 시정신과 끊임없는 갱신으로 노동시의 위상을 한층 높여온 백무산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가 출간되었다. 노동자 문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삶의 근원에 대한 깊이있는 사유로 시세계를 확장하여 새로운 시적 성취를 일구어낸 대산문학상 수상작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2012)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폐허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정곡을 꿰찌르는 치열한 인식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뇌의 시선으로 “당대의 삶이 직면한 한계와 가능성을 투시하는 하나의 독특한 시학”(조정환, 해설)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자본의 폭력과 억압으로 둘러싸인 삶의 비참을 직시하는 냉철한 눈과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목소리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쩌다 한밤중 산길에서/올려다본 밤하늘/만져질 듯한 별들이 패닉처럼/하얗게 쏟아지는 우주//그 풍경이 내게 스며들자/나는 드러난다/내가 폐허라는 사실이//죽음이 갯벌처럼 어둡게 스며들고/사랑이 불같이 스며들고/모든 질서를 뒤엎고 재앙의 붉은 피가 스며들 때/나는 패닉에 열광한다//내게 고귀함이나 아름다움이나/사랑이 충만해서가 아니다/내 안에 그런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그런 따위로 길이 든 적도 없다/다만 가쁜 숨을 쉬기 위해서/갈라터진 목을 축이기 위해서/존재의 소멸이 두려워 손톱에 피가 나도록/매달린 적은 있다/고귀함이나 사랑 따위를 발명한 적은 있다//패닉만이 닿을 수 없는 낙원을 보여준다/나는 그 폐허를 원형대로 건져내야만 한다(「패닉」 전문)


지난 시절 시인은 ‘인간의 시간’ 외부에서 ‘대지의 시간’을 더듬으며 삶의 진정한 해방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시인이 보기에 “최후의 착취”(「핵(核)」) 시대를 살아가는 버림받은 존재들, 곧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사람들/묵묵한 사람들 뒷면만 거니는 사람들”(「뒷면」)에게 일상의 삶은 여전히 자본권력에 포획된 그늘이다.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호모에렉투스」)고, “착취당할 능력이 있는 동안만 생존이 허용”(「꽃이 나를 선택한다」)된다. 이 소외받은 삶의 비참함 속에서 시인은 ‘밥’을 위해 ‘자유’를 반납하며 “정규직 노예가 되고 싶다 비정규직 노예를 철폐하라/불안정 노예를 정규 노예화하라고 외”치는 “자유에 대한 새로운 감각”(「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는 알겠으나」)을 경계하면서 “멈추지 않는 직선의 되풀이”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노동”(「광활한 폐소」)뿐인 어둠과 폐쇄의 시공간을 벗어나 ‘광야의 시간’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자신의 나라에서 우리는 자주 난민이었다/자신의 나라에서 우리는 자주 불법체류자였다/자신의 나라에서 우리는 자주 보트피플이었다//(…)//선거에서 정의가 승리하고 만세를 부르고/노동자는 철탑에 올랐다/선거에서 국민이 승리하고 카퍼레이드를 하고/노동자는 송전탑에 올랐다/선거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하고 정권 교체를 하고/노동자는 굴뚝에 올랐다//그러나 나쁘지 않다/우리를 받아들였다면 우리 모두 국토에 길이 들었을 것이다/우리는 대지의 인간이길 원한다(「대지의 인간」 부분)


시인은 “철창을 걷어낸 후에도 들판으로 갈 수 없”(「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는 알겠으나」)고 “혁명은 꿈도 꿀 수 없”(「낙화」)는 시대의 “모든 질서를 뒤엎고”(「패닉」) 획일적으로 가치화된 자본주의적 공간의 ‘중심’을 깨뜨리고자 한다. “지난 시절 더러운 체제의 목을 베어” 내던지고 싶었으나 “우리들 비루한 모가지들도 그 더러운 체제에 기생해 있었다”(「참수」)는 자각에 이르러서는 삶의 ‘가장자리’이거나 세계의 “변두리”(「세계의 변두리」)에 “계급 아니라 인간의 온기”(「오래된 숲」)로서 ‘프롤레타리아’의 저항의 힘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은 지난날의 혁명이 늘 중심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하고 또 그것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기도 하다. 시인은 또한 “내 생의 최대의 불안은 내 모가지가 든든히 붙어 있는 거였다”(「참수」)는 뼈아픈 고백을 비치기도 한다.


지구는 둥글어 모든 지점이 다 중심이라는 말은/돼먹지 않은 소리다 둥근 표면은 다 주변이다//얼어 죽을 중심은 동공이거나 허공이거나 불덩이이거나 소금바다다//풀 한포기 모래 한알에도 우주가 다 들어 있다는 소리도/중심에 구원을 받아내고 싶어 미치고 환장한 사람의 말이다//수만개의 유일사상이 중심을 향해 경멸과 저주를 품고/성전이 성전으로 피를 적시고 중심에 진입해보지만/중심엔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지옥뿐//(…)//태양은 따듯한 중심이 아니라/제 몸이 뜨거워 불덩이를 사방으로 마구잡이로 흩뿌리는 거다/주변에 있어 모두 손이 둘인 거다 모두가 결핍돼 있어/손을 잡아야 일어설 수 있는 거다(「주변뿐인 우주」 부분)


오로지 이윤만을 따르는 자본의 무한확장을 경계하고 자본권력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시인은 저 끔찍한 세월호 침몰을 ‘지금-여기’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사고로서가 아니라 “다가올 시대에 대한 은유”(「그날」)로 인식한다.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분노를 억누른 채 “한순간에 거대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지식은 있어도 바닥을 인양하는 지식은 보유하지 못한 세계”에서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은 구조의 대상도 아니고 처분의 대상도 아니다”(「인양」)라고 비틀어 말한다. 시인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만 있을 뿐 “열정도 진정성도 없는 비열한 정부”가 버티는 한, “입신출세와/대박 챙길 일밖에 아무 관심도 없”고 “촛불시위와 행진과 민주주의가 더 큰 재난이라 여기는” 자들이 있는 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경고하며 “뒤집어진 걸 바로 세우게 하는,/죽음을 뒤집는 4월의 명령”(「세월호 최후의 선장」)을 따를 것을 호소한다.


뒤집어라, 뒤집힌 저 배를 뒤집어라/뒤집어라,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야 살린다/침몰의 배후에는 나태와 부패와 음모가 있고/명령의 배후에는 은폐와 조작의 검은손이 있다/탐욕으로 뒤집힌 세상, 부패와 음모와 기만으로 뒤집힌 세상//이게 아닌데, 이럴 순 없어, 뒤집지 못한 우리들/가슴을 치며 지켜만 봐야 하다니, 회한의 눈물을 삼키며/우리가 너희들을 다 죽이는구나, 뒤집어라,/폭력과 약탈로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야 살린다/이렇게 내버려둘 순 없어 저 죽음을 뒤집어라/뒤집지 않고서는 살리지 못해 저 죽음의 세력을 뒤집어라(「세월호 최후의 선장」 부분)


세상의 변혁을 꿈꾸며 “젊은 나이에 거친 노동으로 어깨가 무너”지고 “굽은 몸을 일으킬 수 없는 시대”(「여신상」)를 건너온 시인에게 온몸을 통과해온 “기억은 추억만이 아니다 내 몸 전체가 기억이다 시간을 담아내는 호수다”(「시간 광장」). 세월은 덧없고, 어느덧 이순의 나이, 시력 30년에 이른 시인은 “세상을 바꾸는 힘은 창검이 아니라 노래”(「노래의 꿈」), 곧 ‘시’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소멸의 방식으로 현실을 기억하는” 리얼리스트로서 늘 새로움을 모색해온 그의 시는 여전히 “비밀을 간직한 미답의 영토”(손택수, 추천사)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닿을 수 없는 낙원”(「패닉」)을 꿈꾸며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이다. “생을 초과하는 사랑”이자 “죽음을 초과하는 눈물”(「환생」)이며, “세상 모든 마음의 뿌리”(「노래의 꿈」)에 깃들어 “생의 절정을 노래하는 고결한 영혼”(「허공의 꼭지」)이다.


모두가 바다로 향할 때//타는 사막으로 가는 강이 있다//모두가 풍요의 땅으로 향할 때//마른 대지에 자신을 먹이고 증발하는 강이 있다//붉은 흙먼지에 목이 말라붙은 어린 생명들 먹이고//타는 사막을 건너온 어미들 모래 쌓인 젖가슴에 젖을 만들고//모두가 안식의 바다를 꿈꿀 때//갈라진 목구멍을 향해 달려가는 강이 있다//물은 알고 있다 타는 목을 적실 때 물의 생명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기진한 대지에 스며들 때 비로소 강의 생명이 완성된다는 것을//타는 대지에 자신을 소멸시키는 것 아니라//대지의 마른 생명을 얻어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다(「완전연소의 꿈」 전문)

추천사
백무산은 한국시의 ‘백비(白碑)’다. 비문의 해독자들은 즐겨 노동해방을 읽고 무위와 노동의 결사를 찾아내기도 하고 우주적 생명의 감각을 탁본하기도 한다. 나로 말하자면 그의 시 속에 드문드문 드러나는 가족사의 추억을 시대의 벽화처럼 그려보고 싶으나 글쎄, 그 모든 문자향 서권기를 후련하게 지워버리는 것이 백비의 언어다. “자신이 가진 것 전부를 다해 자신을 잃어버”(「뭔가를 하는 거다」)리는 이 도저한 무의지의 의지가 경이로운 것은 그의 시가 끝끝내 결핍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핍의 감수성이 소진되었을 때 언어의 무중력이 찾아온다는 걸 흐릿하게 멀어진 옛 성좌들이 숱하게 증명하고 있거니와, 이순을 맞은 시인에게 결핍은 여전히 「기억의 소수자들」과 「세계의 변두리」로 귀환케 하는 힘이 되고 있다. 이 힘이 “뒤에도 옆에도 사방 얼굴을 가진 열두 얼굴 부처님”(「뒷면」)처럼 모두가 ‘앞’이 되는 세계를 ‘인간의 폐허’와 동시에 보여준다. 그 사이의 심연이 지상의 비참과 만날 때 반어를 낳고, 소멸마저 새로운 시작으로 이끄는 우주적 직관과 만날 때 돌올한 역설을 부른다면 어떨까. 소멸의 방식으로 현실을 기억하는 자의 각고 속에 욱신거리는 리얼리스트의 별자리가 외따롭게 빛난다. 누가 이 ‘비(碑)’를 다 읽었다 하는가. 그의 시는 아직 비밀을 간직한 미답의 영토다.
- 손택수 시인

작가

백무산
출생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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