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는 세계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안으로는 복잡다단한 대결의 회오리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야만 했던 우리 민족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대국적 안목에서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이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 철학적, 세계관적 안목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대한 방향 제시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헤겔 연구가 반세기를 넘어선 지금, 이제는 우리의 관심이 어디론가 한데 모아져야 하지 않나 생각해보게도 된다. 존재론(Sein), 본질론(Wesen), 개념론(Begriff)의 전 3부로 구성된 헤겔의 『대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 한국어판이 최초로 출간될 당시만 해도 우리의 전반적인 학문적 토대가 워낙 허약한 형편이어서 사실 번역본도 부실함을 면치 못했었다. 그것을 교본으로 하여 철학에 전념했던 연구자라곤 정말 손으로 셀 정도였으니, 이 앞 세대를 딛고 학문에 전념하고 있는 현재의 철학 연구자들은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한 철학의 근본 문제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존재와 무無의 상보적인 관계 속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존재의 진상 앞에서 고뇌하는 모든 철학자들이 그 어디에선가 해답을 찾아보려고 허우적거리는 것이 우리 연구자의 기꺼운 운명이기도 하다. 『대논리학』의 존재-본질-개념의 세 주제가 펼쳐 보여주는 사유의 전폭적인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 구도에 맞추어서 우리의 철학적 탐구가 모색되고, 그 토대 위에서 (1) 우주-대자연의 생성과 변화, (2) 그 속을 관통하는 혼벽의 실체, (3) 여기에 대응해 나가는 인간의 주체적 노력의 역정들이 전개되는 과정이 바로 헤겔의 『대논리학』이 드러내 보이려는 역사와 현실의 진면목일 것이다. 이 거대한 구도를 머릿속에 가다듬고 정밀한 논리적 탐구를 계속해 나가면서 우리는 대우주와 자연, 현실 세계의 세세한 실상이 담긴 진실을 마주하게 되며, 또한 이러한 진실의 전모가 담겨진 헤겔의 『대논리학』을 앞에 두고 우리 자신의 진정한 철학함의 자세도 확인할 수가 있다. 시대의 아픔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갈 드높은 나날이 헤겔 변증법의 도약과 정진의 논리 속에 담겨있음을 마음에 새기면서 이 거대한 철학서와 마주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해로 『대논리학』 출간 20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념사업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기념하는 뜻에서 새로이 번역서를 내놓게 됨을 진심으로 자축하는 바이다. 이 거대한 작업을 맡아주신 출판사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이를 계기로 더욱 연구 진작과 심화에 박차가 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정성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