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긴 한여름을 보내면서 더없이 뜨거운 마음의 열기를 북돋아 주던 「개념론」을 탈고하게 되었다. 우선 이 자리에서 무엇보다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은, 만약 『정신현상학』 속의 절대정신이 인간 인식의 고원하면서도 적극적인 자기완성체라고 한다면 『대논리학』을 마무리하는 절대이념은 존재와 삶의 중핵을 이루는 선의지의 자기구현을 지시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인식주관과 의지의 주체가 그 한없이 넓고 깊은 헤겔 철학 사상의 전면에 걸쳐서, 즉 그의 저작의 총체적 맥락 속에서 말할 나위도 없이 그 극으로서의 지렛대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그것은 양극을 이루는 가운데 결코 파멸이 아닌 전진과 기약으로서의 동일적 통일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하겠으니, 이렇게 얻어진 각고의 소산이 다름 아닌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되묻게 된다. 결국 선善의 이념理念을 앞세워서 절대이념의 정립과 구현도 가능해질 수 있음을 보면서, 이론과 실천, 바로 이 양자의 통일의 문제가 헤겔 철학을 구성하는 주춧돌이 되고 있으며 동시에 진정 이것이 통일적인 차원에서 그 실체적 의의를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흔히 이리저리로 교차되는 이론적 통일도, 그리고 실천적 통일도 아닌 것?즉, 이론을 섭렵하고 실천을 편력하는 움직이는 중심이 온 곳에 편재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오직 정성들여 행함으로써 이 행위하는 동적 중심動的 中心(tatige Mitte)만이 그토록 번거로운 세계내의 분열과 모순과 갈등을 총괄하여 끝내 이성적인 중용의 길목으로 모두를 합일시키는 힘(tatig-vernunftige Mitte)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니, 여기서 다시금 변증법적 사상체계와 그 구조 속에 깃들인 사유와 행동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하나로 묶어 주는 원환적인 시종귀일성, 즉 변증법적 세계관의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되새겨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본 역자가 1960년에 완성한 헤겔 노동개념에 관한 연구 내용 중, 특히 활동하는 이성적 중심에 의한 중복된 이중운동二重運動, 즉 이른바 삼단계적三段階的 진행 논리만이 아닌 사차적四次的인 변증법적 논리전개의 필수성과, 다시 70년대에 들어와서 다시 한번 거론한 바 있는 특유한 헤겔적 논리체계로서의 변증법(서양)과 원융적 우주질서로서의 구조적 변증법(동양)의 일치성에 대한 논의가 필경 오늘의 동서양 어느 일각에서건 발단을 이룸으로써 앞으로 세계철학 동향에 그 어떤 전망을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여기는 바이다. 플라톤이 그의 국가론을 완성하기까지 일곱 차례나 이를 개작할 만큼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거늘, 비록 역서라고는 하나 지난至難의 書로 꼽히는 본서를 위해서도 우리는 마땅히 그만한 열과 성을 다해야만 하리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본서를 번역, 출판하는 데에 조금이 라도 소홀함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독자에게 사죄하고자 한다. 여기에 덧붙여, 국문과 독문까지 겹친 교정본을 면밀하고도 정확하게 다루어 주신 지학사 편집진 일동과, 특히 그에 버금가는 정신적, 물질적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역자의 동학이기도 한 권병일 사장에게 깊은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