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지속 가능성 개념은 대척 관계를 넘어 공존할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성찰과 모색
폭염과 폭우를 비롯한 극단적 기후 현상이 우리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극단적’이라는 말이 이렇듯 피부에 와닿은 때는 없었던 듯하다.
패션도 이 위기에 일조한다. 패션이 천연자원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약 7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거나 매초 2.6톤 트럭 한 대 분량의 옷이 매립지에 버려지거나 소각된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전 세계 항공 및 해상 운송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총합보다 패션 산업에서 배출하는 양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할 말이 없어진다.
모든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말한다. 패션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언뜻 의류 생산·소비·폐기를 줄이기만 하면 지속 가능 패션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개인과 사회의 물리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 삶과 밀접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패션은 지속 가능성과 공존하기 어려운 운명을 타고났다. 어쩌면 다른 분야에 비해 늦어진 이유도 이 때문일 수 있다. 이 태생적 대척 관계는 갈등, 딜레마, 모순, 역설, 충돌을 낳는다. 그리고 이에 관한 다양한 견해는 통합되지 못한 채 개별적 담론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지속 가능 패션을 둘러싼 다양하고도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한데 모았다. 지속 가능성의 4개 축, 즉 환경·경제·사회·문화를 기반으로 디자인, 생산, 판매, 소비, 기술, 교육 등을 포함한 지속 가능 패션 관련 문제를 두루 다룬다. 패션은 지구와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쉼 없이 변화한다. 이에 저자는 관련 지식과 사례를 들어 개인 또는 집단 및 산업 내, 국지적 또는 범지구적, 생필품 또는 럭셔리로서 패션의 위치·의미·역할에 대한 총체적 접근의 필요성에 답하려 애쓴다. 아울러 지속 가능 패션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마법 같은 결과를 바라거나, 또는 밝은 미래를 믿지 않는 염세적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눈을 똑바로 뜨고 현재 상황을 주시하면서 작은 잠재력이나 그 잠재력을 이끄는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날 의복의 존재감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기술, 인프라, 노동력, 대형 자본이 결합해 다양하고 저렴한 제품을 빠르게 공급하면서 의복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인데 매년 생산하는 의류는 1000억 장에 이른다고 한다. 한 시즌 입고 버리는 일이 대수롭지 않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끊임없이 출시되는 것은 소비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황이다. 문제는 그 결과로 지구와 타인의 삶이 어떻게 희생되는지 대부분의 사람이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속 가능 패션을 위한 실천은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하다. 적게 소비하고 오래 입으면 된다. 이러한 행동이 널리 퍼지면 생산량이 자연스레 줄어들 테고, 기업은 품질 향상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 내에서 고착된 인식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환경 문제를 거론할 때 종종 접하는 반응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폄하다. 하지만 실상 지속 가능성 문제가 심각해지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쪽은 여유가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당장의 삶이 팍팍해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설령 무언가를 시도한다 해도 주목받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그래서 기업과 사회의 혁신이나 실천적 결단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개인의 의식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과 기술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은 절반의 성과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그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인식의 변화가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친환경적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런 결심을 지속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기존의 익숙한 소비와 생활 방식 사이에서 생겨나는 충돌과 머뭇거림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개인 및 공동체의 신념과 일상 사이에도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근로자의 권리와 근로 환경 개선에는 동의하지만, 내 택배가 늦는 건 싫은 것처럼 말이다.
완벽한 지속 가능성 실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포기하거나 타인의 작은 실천을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상황을 즉시 바꾸진 못할지라도, 그것이 축적되어 변화를 이루고, 그 변화가 다시 다른 행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패션은 특정 시대와 문화의 과거·현재·미래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한다. 패션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는 패션이 상상을 현실화하면서 사람들에게 그 상상을 전달할 때까지 이어지는 적극적인 구애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기존 지식을 뛰어넘은 사고가 불확실한 미래를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일 게다. 미야케와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지속 가능 패션에 적용해보면, 단순히 업사이클링을 하고 친환경 섬유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이야기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패션이 지닌 감각적·감성적 가치를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상상할 수 있고 그러한 상상이 미래 패션의 핵심적 역할을 맡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