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너와 춤을 추고 싶은 것뿐이라고 한다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자 그녀의 하얀 피부가 새빨개졌다. 오스카는 그걸 신선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빨개지는 여성은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 든다. 사교계에 막 데뷔한 아가씨라고 해도 요즘은 의외로 뻔뻔한 편인데.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당신은 나에게 심술부리고 싶은 것뿐이야!”
아멜리아는 쑥스러운 건지 뺨을 붉힌 채 시선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네 얼굴은 정말 예쁘니까. 내가 너와 춤을 추고 싶어져도 딱히 이상하진 않은데?”
‘네 얼굴’이라고 한정 지은 것이 아멜리아는 불만인 모양이었다. 피했던 시선이 이쪽을 향해 똑바로 날아왔다. 화난 듯 눈에서 힘이 느껴졌다. 오스카는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보게 되어 기뻤다.
“나는 얼굴만이라는 뜻이야?”
오스카는 일부러 어깨를 으쓱했다.
“칭찬이라고 해석해 주지 않겠어?”
“농담도.”
아멜리아가 도도하게 턱을 돌렸다.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이는 그녀도 귀엽지만, 이런 얼굴도 좋다. 어쨌거나 그녀는 표정이 풍부하다. 인형 같은 미인이 아니라는 점이 오스카가 매료된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길버트의 마음을 찢어 놓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약혼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길버트과 결혼하는 사람은 그녀였다. 그걸 생각하면 복잡한 기분이다. 오스카는 길버트의 들러리를 받아들였으나, 만약 오늘의 신부가 아멜리아였다면 자신의 가슴이 찢어졌을 게 틀림없다.
지금 이런 식으로 아멜리아와 가까이 서서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건 그녀가 약혼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이 미모 아래에 악독함이 숨어 있다는 걸 몰랐다면 좋았을걸.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오스카는 그녀와 추는 춤을 즐겼다.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해야만 한다. 길버트는 리디아를 사랑하며 행복해졌으니까, 그의 마음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오스카는 결혼에 애정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아멜리아를 향한 사랑은 이제 없으니…….
그래. 자신 안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녀와 춤을 추면서 가슴이 뛰는 건 그냥 조건반사다. 이건 애정과는 다르다. 키스하고 싶은 건 그냥 욕망이다. 그녀는 무척 아름다우니까 현혹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녀 역시 자신에게 애정 같은 건 없다. 애초에 약혼자였던 길버트도 사랑하지 않았다. 길버트의 친구에 불과한 자신이라면 그녀는 사랑은커녕 호감조차 없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녀가 참석하는 무도회에 자신은 나가지 않는다. 이것을 끝으로 만날 일이 없다.
아멜리아와 춤을 추는 것도 이게 마지막…….
어째서인지 가슴이 아프다.
이 답답한 감정은 무엇일까.
사랑은 아니다. 사랑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오스카는 영원히 그녀와 왈츠를 추고 싶었다.
* * *
“네가 부끄러워하니까 나는 조금 괴롭히고 싶어지는데.”
자신을 싫어하는 청년 백작 오스카의 기간 한정 약혼자로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 아멜리아.
반발하면서도 서로 의식하는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자석에 끌리듯 끌어안고 정열에 몸을 맡겨 버린다.
“지금 너를 안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내가 쾌락에 져 버리는 건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는……?
망설이는 아멜리아에게 오스카는 갑자기 둘의 약혼을 진짜로 만들자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