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감성적인 눈’을 발견한 철학자 고병권
『자본』을 읽는다는 건 마르크스의 ‘슬픈 눈빛’을 체험하는 일
『다시 자본을 읽자』의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넘어서려 했던 사상가이기 이전에 우리 시대를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게 해준 사람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역사학자 홉스봄 역시 마르크스의 『자본』이 나오면서 우리 시대를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다시 자본을 읽자』의 저자 고병권에게 마르크스의 『자본』이 흥미로웠던 것은 이런 개념적 사항보다는 문제를 바라보는 ‘마르크스의 눈’ 때문이었다.
철학자 고병권이 마르크스와 『자본』에 감탄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등가교환’이라고 하면 보통은 천 원 내고 천 원짜리 물건을 받은 것이니 ‘쿨’하게 헤어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등가교환의 한 주체는 새로운 사업 전망에 불타는 눈빛으로 어깨 으쓱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한 주체는 마치 줄 것 다 주고 가죽이 되려 무두질을 기다리는 소처럼 쭈뼛쭈뼛 따라간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눈’이 발견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는 겉만 본 것을, 마르크스는 그 심층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렌즈로 비춰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상품을 교환하는 그 한 장면에서 어떻게 자본주의 본질을 잡아낼 수 있었을까? 물건 하나 달랑 교환하는 그 한 장면만 포착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그 바닥 아래까지 그려내는 솜씨에 저자 고병권은 탄복한다. 저자가 보기에 그것은 마치 고고학자가 땅을 파다가 파편을 하나 발견한 뒤 그 파편에 그려진 두 사람의 동작만 보고 그들이 살았던 사회를 그려낸 것만 같다.
무엇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이 분명한 독자를 겨냥하는 다소 ‘이상한’ 책이고 더욱이 그 독자가 바로 노동자라는 데 놀란다. 그리고 저자 고병권이 보기에 마르크스는 이 책을 읽을 노동자들을 ‘계몽’하려고 쓴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노동자들을 ‘고려’하고 ‘배려’하며, 심지어 ‘편들어주기’ 위해 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