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동, 또는 이슬람 문명권은 더 이상 미뤄두기 어려운 지역이다. 경제와 문화, 정치가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대적 특징 속에서, 중동과 이슬람은 그것이 석유든 돈이든 종교든 문화교류든 피할 수 없는 주요 검색어다. 한국 사람에게 중동과 이슬람은 대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에게 중동은 여전히 낯선 땅이며, 이슬람 문명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1970년대의 건설 진출 등을 통한 직접적인 경험은 많은 데 비해, 축적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더구나 우리의 무지는 중동과 이슬람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 어디를 들여다보아야 하는지조차도 모른다는 데까지 이른다.
함두릴라, 알 카히라는 이집트의 카이로야말로 중동과 이슬람을 들여다보는 창이라고 말한다. 저자 역시 카이로 특파원으로 생활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고대 파라오 시대를 이집트의 전성기로 알았다고 고백하는데, 사실상 이집트는 8세기 이후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로서 중 근세 세계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집트는 여전히 중동의 지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 이집트 최고의 교육기관인 알 아즈하르 대학에는 오늘날에도 12억 이슬람권은 물론이고 중국과 미국에서까지도 많은 유학생들이 몰려든다.
중세 사람들은 카이로를 ‘세계의 어머니 도시’라고 불렀다. 그리고 “현대의 이집트는 이슬람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고, 카이로는 그 중심이다.”(8쪽) 카이로의 이슬람 문명을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꼼꼼하게 되밟은 국내 최초의 역사문화기행서 함두릴라, 알 카히라는 카이로와 이슬람 문화를 들여다보는 더없이 매력적인 창이다.
이슬람의 중심, 이집트
이집트의 이슬람 시대는 7세기에 아랍군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이집트는 10세기에 등장한 파티마 왕조(969~1171년), 십자군 전쟁의 아랍측 영웅인 살라딘이 세운 아이윱 왕조(1171~1250년), 흑해변 출신 노예들이 세운 마믈룩 왕조 시대(1250~1517년)를 거치며 중동의 확고한 지존으로 자리했다. 이집트가 건설한 제국의 영토는 오늘날의 시리아 다마스쿠스, 터키 아나톨리아반도 일부, 사우디아라비아 홍해변에 이르렀다.
중동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집트의 패자를 거스를 수 없었다. 지중해변 북서쪽에서 나타난 십자군을 100년이 넘는 싸움 끝에 몰아낸 것도 이집트였고,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말을 타고 지중해변까지 몰려온 몽골군을 멈춰 세운 것도 이집트였다. 카이로의 술탄은 20세기 초까지도 아라비아반도의 이슬람 성지인 메카에 매년 ‘키스와(kiswa)’를 보냈다. ‘키스와’는 메카 대사원 한복판에 있는 검은 돌을 덮는 천인데, 가장 성스러운 물건인 이 카바의 흑석 위에 두르는 휘장을 보낸다는 것은 메카의 통치자로서 행사하는 큰 권위였다.(82쪽)
카이로와 다마스쿠스를 기반으로 구축된 이집트 제국의 재정적인 기반은 중계무역 수입이었다. 이는 인도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 위치 덕분이었다. 당시 유럽 상인들은 카이로를 보고 그 크기와 사치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세계의 어머니 도시’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13,14세기 유럽의 여행자들은 파리와 런던, 그리고 이탈리아의 대도시 인구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알 카히라에 산다고 기록했다.
골목길을 누비며 중세의 기억을 밟아가다
이집트의 카이로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더불어 아랍권 3대 도시로 꼽힌다. 그러나 이 가운데 중세 도시의 구역이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은 카이로밖에 없다. 741년에 생긴 도시가 2009년에도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마스쿠스와 바그다드는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도시가 모두 파괴되었지만, 카이로 성곽과 그 인근에는 1400년 이집트 이슬람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다. 알 카히라 성곽 내 도로인 샤리아 가말리야는 1000년 전 살라딘 술탄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며, 사람들의 복색과 골목의 분위기, 건물들도 모두 그대로다. 옛 도심은 도시 재개발이라는 물리적 파괴과정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에, 중세 아랍의 건축과 역사, 사람을 살펴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10세기에 생긴 모스크와 17세기에 건립된 대저택이 나란히 서 있고, 그 모스크는 전 시대의 궁전을 깔고 앉아 있는 게 카이로다. 알 카히라의 중세 도시 구역 그 어느 곳이나 ‘역사’를 담고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같은 자리에 퇴적된 것으로 치면 이 도시만 한 곳이 있을까.”(250쪽)
이는 다른 어느 문명권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면모다. 베이징의 골목길은 지난해에 올림픽을 치르면서 다 사라졌고,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외벽이 일부 뜯겨나가 런던이나 파리의 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카이로에 견줄 곳은 오직 로마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아마추어 이상의 사진 솜씨를 발휘하며, 그 천 년의 골목길 곳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함두릴라, 알 카히라는 또한 그곳에 간직된 과거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풀어내는데, 그 다양한 인물들과 극적인 사건들은 이제껏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터라 무척 이채롭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풍년을 가져오는 나일 강의 적절한 범람을 기원하기 위해 인신 공양되었던 카이로의 여인들(46쪽), 메카 순례를 떠나면서 신선한 채소를 즐기기 위해 낙타 40마리가 끄는 ‘이동식 채소밭’을 끌고 갔던 술탄(157쪽), 커피 중의 커피라는 예멘 산 모카커피 중계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카이로의 커피 상인들(182쪽), 1798년 이집트 원정길에 올랐던 나폴레옹이 카이로에서 만났던 여인(287~289쪽)….
함두릴라, 신께 감사!
‘함두릴라’는 ‘신께 감사합니다’, ‘신을 찬양합니다’라는 뜻의 아랍어로, 무슬림들이 생활 속에서 아주 많이 쓰는 표현이다.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게 되어 상대방이 ‘집안에 별 일 없으신지요?’라고 물어오면, 그때 사용하는 답변이 바로 ‘함두릴라’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덕분에 잘 있습니다’ 정도가 되는데, 아랍인들은 ‘신의 염려로 잘 있습니다’라는 취지에서 ‘함두릴라’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일상 속에서 이슬람 신앙을 독실하게 믿는 카이로 사람들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준다. 아울러 ‘알 카히라’는 ‘카이로’의 아랍어 표현이다. ‘카이로’는 유럽 사람들이 쓰는 표현이고, 이집트 사람들은 ‘알 카히라’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