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왔다. 낮아진 담장을 걸어가면 나의 추억은 너무 흐릿하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 시절처럼 낮은 보폭으로 걸어가면 동네 사람들이 ‘껄껄껄’ 웃고 말 것이다. 담장이 나의 키보다 낮아져버린 어른의 눈으로는 마을이 작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어떻게 살았나?
대강리 평촌이 나의 고향이다. 고흥반도는 우주선이 발사된 곳인데, 나의 고향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고흥군 동강면은 고흥군의 입구에 해당하고, 벌교와 10분 정도 거리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다. 벌교에서 뱀골재로 넘어오면 바로 유둔이 나오고 그곳이 동강면의 중심이다.
유둔과 중촌과 평촌이 있는데, 평촌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평촌은 대강리의 입구에 해당한다. 고흥군은 한반도에 들어오는 입구이고, 고흥군에 들어오는 입구는 동강면이고, 동강면에서 대강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바로 평촌부락이다. 나는 언제나 문의 위치에서 살았던 것 같다.
추석, 동네를 한바퀴 삥 돌았다. 아이들의 싱그러운 목소리가 농촌의 지루함을 깨뜨리고, 곳곳에 닭우는 소리가 아이들 웃음소리에 섞여서 동네는 살아있는 듯 싱그럽다. 나는 명절때만 내려오니, 동네의 평상시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평촌의 평상시 삶은 나의 추억속의 장면이다. 풍요롭고 인심많고.... 그러나 맘에 들지 않는 몇몇 사건이 존재하는....
나의 아버지는 평촌에서 이장(里長)을 했는데, 마을에서 책임을 맡은 이후로 생활이 더 나아져야하는데 그때 돈을 많이 잃었다고 어머니는 회고한다. 시골에서 이장을 맡으면 돈으로 봉급이 나온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도 어린 시절 부녀회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땐 창고에 라면이 가득했다. 엄마는 그 라면을 팔려고 했는데 항상 내 차지였다.
몰래, 삼양라면을 빼내서 과자처럼 부셔서 먹었던 기억이 햇살처럼 떠오른다. 그땐 그랬었다. 아마도 엄마는 아셨으리라. 뻔히 알면서도 결국 아들들 중에서 누가 먹었겠거니 했으리라. 그렇게 어렵던 시절이 지나가고, 평촌의 현재 삶은 모두 나름대로 넉넉하게 평온한 분위기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그렇지 못하였다. 막말로, 그 놈의 ‘화투’ 때문에 동네가 시름시름 앓아가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분명 그렇지 않으리라.
나는 쥐띠다.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첫 번째가 쥐띠인데 쥐는 곧 ‘자’로서 아들 자(子)라고 한다. 그러니까 쥐띠는 곧 사람띠다. 1972년생. 평촌부락에는 쥐띠가 4명이나 된다. 생년월일도 거의 비슷하다. 내가 12월 23일 새벽에 태어났고, 23일~26일까지 연달아 기빈, 중현, 유청이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득한 세월이 지났고 중년의 산문턱에서 과거를 내려다보니 낮아진 담장처럼 그리운 뜰에 흙먼지 휘날린다. 이 책은 나의 추억을 수필식으로 펼친 내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