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평>
작년 ‘손석희의 시선집중’ 연말 특집에 용재 오닐과 아이들이 함께 출연했다. 사전 녹음을 했는데 고백하자면 두 번 녹음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도저히 예상했던 분위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엔 식은땀까지 흘렸다. 첫 번째 녹음을 끝내고 깨달았다. 짧은 시간에 아이들의 감정을 끌어내느라 나는 녹음 시간 내내 거의 강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요할수록 아이들은 더욱 움츠러들었고 분위기는 점점 더 경직돼 갔다. 나는 방송의 목적에만 매달렸을 뿐, 아이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생각하지 못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아무래도 주어진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느낌들을 나는 달랑 주어진 삼사십 분에, 그것도 만나자마자 끄집어내려 했으니 그게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결국 “처음부터 다시 합시다! 대본 없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연말 특집이 방송되었다. 물론 아이들은 많이 풀려 있었고, 방송이 나간 후에는 반향도 컸다. 내가 아이들에게 새삼스레 배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열기 위해선 진심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또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이 기본을 다시 깨우치게 해준 꼬마들에게 감사한다. 이들을 만나게 해준 이보영 프로듀서와 어른 천사 같았던 용재 오닐에게도…….
- 손석희(‘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자)
반짝이고픈 당신에게
반짝이는 아이들이 전하는 다독임의 멜로디
※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안녕?! 오케스트라」의 음악활동지원금으로 기부됩니다.
1500석이나 되는 큰 공연장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수많은 좌석은 사람들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이제는 우리의 음악을 들려주는 일만 남았다. 한껏 차려입은 아이들이 이내 무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심장은 터질 듯 뛰지만 태연한 척 애써 표정을 다잡는다. 음음, 작게 헛기침을 해봐도 심장 박동을 늦출 수는 없다. 이 떨림을 그저 즐길 수밖에.
별 같은 아이들, 하지만 모든 별이 제 빛을 드러내진 않아
세상 모든 아이들은 별과 같다. 어디서나 밝고 환하게 빛나는 별들이다. 그러나 자신의 빛을 감추기 위해 꽁꽁 숨어 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눈에 띄지 않으려,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조용히 걷는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을 굳이 툭툭 건드려 본다. 손끝으로 쿡 찌르기도 하고 발끝으로 툭 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눈에선 와락 눈물이 터진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별처럼 빛나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새 잊어버린 걸까? 우리의 가슴은 언제부터 이렇게 아픔에 둔감해졌을까?
우리나라에는 15만 명의 숨어서 빛나는 아이들이 있다. 얼굴색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눈이 유독 크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외모가 다른 아이들은 다르다고 놀림을 받는다. 외모가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도, 역시 놀림을 받는다. 놀림 받는 이유는 특별히 없다.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그저 어머니가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것, 그것이 이유의 전부다. 아이들은 상처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상처는 고스란히 마음을 후벼 파 어린 마음에 날카로운 생채기를 남긴다.
우리는 어느새 맑은 영혼들이 아파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울타리 밖으로 떨려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라고 떠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들어오라고 손을 내밀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리처드 용재 오닐, 공감의 멘토이자 지휘자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어린 시절이 꼭 그랬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속속들이 아는 작은 마을에서, 그는 유일한 동양인 아이였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입양한 조부모님이 가족의 전부였다. 그가 가진 남다른 외모와 남다른 가정환경은 늘 그를 따라다니며 놀림과 차별의 대상이 되게 했고,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하다는 절망감이 그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든든한 지원군인 가족이 그의 곁에 항상 함께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왕복 다섯 시간 거리를 손수 데려다주며 재능 있는 손주에게 음악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그의 가족인 할머니였다. 용재는 가족의 든든한 응원 속에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쉬지 않고 익힌 음악은 그의 삶을 꽃피우는 가장 큰 매개체가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음악을 즐기고 사랑할 거예요”
3월,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쌀쌀한 어느 날 용재와 아이들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추워서인지 긴장해서인지 용재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내내 떨고 있었다. 한 손에는 우리말로 써 놓은 인사말을 쥐고 끊임없이 소리 내어 연습하면서 아이들의 버스가 도착하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비올라를 연주하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앞으로 서로 친해지고 함께 음악을 즐기고 사랑할 거예요.”
그러나 서로의 간격이 생각만큼 금세 좁혀지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낯선 용재를 경계했고, 용재도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후, 용재가 비올라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일순 고요해지고, 산만하던 아이들의 눈동자는 한 군데에 고정되었다. 느슨하게 풀어졌던 표정이 터질 듯 팽팽해졌다. 아이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책은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 안녕?! 오케스트라가 결성되고, 리처드 용재 오닐이 멘토로 참여하며 만들어지는 화합의 하모니를 이야기한다. 서로를 경계하던 웅크린 별들이 음악으로 인해 비로소 하나의 가족으로 일어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좇는다. 다문화라는 거창한 틀을 가지고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어느새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데 고정된 관념은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상처를 품은 사람이 상처를 가진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서로를 치유해 가는 과정, 그것이 모든 다양한 잣대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열쇠였다.
각자 남모를 아픔을 품고 있는 아이들은 연주하고픈 악기를 고르고, 음악 수업을 듣고, 각 악기의 파트장을 선발하는 여러 과정을 밟아나가며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쥐었다. 그 와중에 실패도 하고 눈물도 쏟으며 자신만의 ‘이기는 방법’을 깨쳤다. 아이들만 얻어간 것은 아니었다. 용재를 비롯해 아이들의 또 다른 멘토 카이와 음악 선생님들은 별 같은 아이들에게서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아이들의 눈물에 같이 울고, 아이들의 환호성에 더 폴짝폴짝 뛴 것도 그들이었다.
‘홀로’에 익숙한 아이들이 ‘함께’를 배우다
“안녕하세요, 엄마. 저 다니엘이에요. 엄마 절 낳아줘서 감사하고요. 그리고 저를 지금까지 잘 키워주신 것을 감사하고, 모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예쁘고 큰 눈을 가진 다니엘이 엄마에게 서툴지만 사랑을 표현한다. 자신의 감정을 꽁꽁 숨기고 드러내기를 꺼리던 아이들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오케스트라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이들과 용재는 서로를 보듬고 끌어안으며 그들을 괴롭히던 질문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기는 한 걸까, 내가 태어난 건 어쩌면 하나님의 실수 아니었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이제 선생님도 좋고, 친구도 생기구요. 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요. 이제는 저 행복해요.” 홀로 꾸역꾸역 이겨내는 게 버릇처럼 몸에 뱄던 아이들에게 음악과 악기, 그리고 용재와 친구들은 든든한 아군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제 버텨내지 않고 겉으로 표현했다. 참아내지 않고 밖으로 쏟아냈다. 용재는 이 아이들에게서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간 고통은 혼자 감내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손을 뻗는 일,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은 저에게 아이들을 위해 한 일에 대해 고맙다고 말해 줬지만,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이들로부터 배운 것이 더 많으니까요.” 드디어, 숨어만 있던 별빛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픈가요? 안녕 오케스트라에 털어 놓으세요
안녕?! 오케스트라의 지난 1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이 책은 당신의 시선이 틀린 거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그 시선을 깨버리라고 조언하지도 않는다. 해맑은 아이들이 음악과 만나 슬픔을 이겨내고 한껏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당신의 아픔을 다독여보라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의 고백에 가슴 저려하다가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행동에 입가엔 다시금 미소가 번진다.
누구에게나 이겨내야 할 상처는 있다. 덮어두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통통 튀어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모니를 이루어 낼 열쇠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