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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정지용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02년 6월 20일 - 1950년 9월 25일
  • 학력 1929년 도시샤대학교 영문학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죽향초등학교
  • 경력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경향신문 편집국 국장
    문장지 추천위원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
  • 데뷔 1926년 학조 창간호 카페 프란스

2014.11.0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 정지용 (1902~1950)

아명 지용池龍, 세례명 프란치스코. 충청북도 옥천에서 아버지 정태국과 어머니 정미하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한 뒤 옥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 열두 살 때인 1913년 송재숙과 결혼했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9년 귀국 후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8·15 광복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문학과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천주교 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사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시절 요람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일본 유학 시절 <학조>, <조선지광>, <문예시대> 등과 도시샤 대학 내 동인지 <가街>, 일본 시지 <근대풍경> 등을 통해 작품활동을 했다. 1930년 김영랑·박용철과 함께 시문학동인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했으며, 1939년 이태준과 함께 <문장>지 시 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역량 있는 신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문장>을 통해 조지훈 · 박두진·박목월의 청록파를 등장시킨 것이 대표적이며,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의 시를 실어 그를 등단시키기도 했다.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 전향, 보도연맹에 가입하였다. 1948년 공직에서 물러나 녹번리(은평구 녹번동) 초당에서 은거하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됐으며, 1950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작으로 시집 《정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과 《지용문학독본》 《산문》 등이 있다.


| 추천인 소개 이진명

1990년 <작가세계>에 <저녁을 위하여>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연문학상, 서정시학 작품상을 받은 바 있으며, 시집으로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 등이 있다.

<향수(한국문학을 권하다 28: 정지용 시전집)> 저자 소개

정지용 작품 총 32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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