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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 출생 1959년
  • 학력 1985년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 학사
  • 경력 시네마디지털서울 프로그램 디렉터
    2009년 제3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
    한국영화아카데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2007년 시네마디지털서울 집행위원장
    2001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포토그래머
    2001년 키노 편집장
    1997년 서울단편영화제 집행위원
    1992년 로스쇼 편집차장
    1986년 서울극장 기획실
    1986년 주부생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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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 : 정성일


鄭聖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다니면서 서울에 대한 지리감각을 익혔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를 보고 난 후 두 달 동안 낙타만 그렸다. 또 하나는 호금전의 〈용문객잔〉. 일주일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 후 무협 영화와 소설에 빠졌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장철의 〈심야의 결투〉를 본 후 급기야 학교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또 봤다. 영화에 대한 첫 번째 애정 고백.

중학생 때 이미 꼭 봐야 할 영화 500편 리스트를 작성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금지된 장난〉을 보러 프랑스 문화원에 갔다가 우연히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를 보고 쇼크를 받았다. 영화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때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 것이다, 라는 아주 명징한 사실을 깨달았다. 서점 서가에 꽂힌 《타고르 전집》을 《고다르 전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고다르의 환영에 시달리며,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영화란 운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영화를 보고, 글을 계속 쓰다가 대학에 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영화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고 학보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영화평을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영화글을 쓰기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 3학년 때 쓴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 평론은 지금의 악명(?)을 고스란히 예고한다. 1989년에 창간한 《로드쇼》의 편집차장을 시작으로, 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에 태어나 ‘90년대 시네필 문화’를 낳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키노》를 이끌며 영화 비평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16년 동안 《말》의 최장수 필자였고,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 출연하여 긴 호흡의 문어체 화법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영화연구I: 임권택》,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전2권)가 있고,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을 책임편집했다. 2009년 겨울, 서울 청계천을 걷고 또 걸으며 첫 번째 장편영화 〈카페 느와르〉를 찍었다. 2010년 영화 평론 시작한지 26년만에 첫번째 영화평론집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필사의 탐독』을 동시에 세상에 내놓았다.

<필사의 탐독>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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