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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569년 - 1618년

2014.12.1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허균은 1569년(선조 3년) 음력 11월 3일에 강릉 초당동에서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초당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리고 다섯 살부터 둘째 형 친구 손곡 밑에서 공부하며, 서자 출신으로 출세할 수 없는 손곡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겼다. 허균 자신도 둘째 부인 소생이라서 손곡의 불우한 처지에 더욱 공감했다.

1585년(선조 18년)에는 열일곱이란 나이로 초시에 급제하고 안동 김씨 김대섭 차녀와 혼인한다. 안동 김씨 부인 친정어머니는 청송 심씨 심전의 딸로, 좌의정 심통원과 영의정 심연원의 종손녀며 인순왕후 6촌 여동생이다.

가까이 지낸 친형 허봉이 이이를 탄핵하다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더니, 허균이 스무 살인 1588년(선조 21년) 허봉은 끝내 서울 땅을 밟지 못하고 금강산에서 병사했다. 다음 해에 혀균은 생원시에 급제하나 김성립에게 출가한 누이 난설헌은 시댁과 불화를 겪고 자식은 잇달아 세상을 떠나서 눈물을 흘리며 세월을 보냈다.

1592년(선조 25년)에는 스물다섯이란 나이로 임진왜란을 피하는 와중에 부인 안동 김씨는 단천에서 첫아들을 낳다가 사망하고 어린 아들도 전란 중에 병사한다. 가족을 잃은 허균은 이후 집필에 몰두하며 외가 애일당 뒷산 이름을 따서 호를 교산(蛟山)으로 사용한다.

이후 허균은 광해군 정권에서 북인 핵심으로 참여하는데, 총명하고 영발(英發)하여 시를 능히 아는 사람이라는 칭찬과 함께 사람됨이 경박하며 인륜도덕을 어지럽히고 이단을 좋아하여 행실을 더럽혔다는 부정적 평가를 함께 받는다. 똑똑하고 혁명사상이 또렷하며 말을 잘하던 허균은 결국 반역죄로 의금부로 압송당해 국문을 받고 한성부에서 능지처참된다. 무려 3,000번이나 살점을 도려낸 뒤에 목을 자르는 잔인한 형벌이었다.

<홍길동전>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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