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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마그달레나 상세페이지

마리아 마그달레나작품 소개

<마리아 마그달레나> 헤벨의 이전 작품 <유디트>나 <게노베바>와는 다른 비극이다. 헤벨은 성경이나 전설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취한다. (소)시민계급의 툭성, 즉 전통적인 가부장적 관습과 관념을 고수하는 보수성 그리고 꼬인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 등으로 부터 비극성이 나오는 시민 비극을 만들려는 구상을 한다.


저자 프로필

프리드리히 헤벨 Friedrich Hebbel

  • 국적 독일
  • 출생-사망 1813년 3월 18일 - 1863년 12월 13일
  • 학력 에를랑겐대학교 대학원 박사
    하이델베르크대학교

2015.10.2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프리드리히 헤벨
프리드리히 헤벨은 서사 장르가 주류로 떠오른 사실주의 시대에, 18세기 중반 레싱에서 비롯되어 한 세기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찬란한 독일 희곡의 전통을 계승한 작가다. 그는 집안이 가난해서 별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거의 독학에 의지해 독일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성장한다.
헤벨은 1813년 3월 18일 독일 북부 홀슈타인 지방의 베셀부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미장이의 아들로 태어난다. 15살 때 교구 사무장 모어 밑에 들어가 22살 때까지 서기로 일한다. 이때 모어의 장서를 이용해 독학으로 교양을 쌓는다. 1831년, 아말리에 쇼페는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에 헤벨의 시를 싣는 것을 계기로 헤벨의 후원자가 된다. 1835년, 쇼페의 도움으로 함부르크로 이주해 뒤늦게 대학 공부를 준비하는 행운을 잡는다. 그러나 곧 도움을 받는 입장의 부자유스러움을 통감한다. 함부르크에 도착한 직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알게 된 8살 연상의 재단사 엘리제 렌징이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그러나 헤벨은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에 똑같은 열정을 바치지 않는다. 이들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나지만 둘 다 일찍 죽는다. 1836년, 헤벨은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입학해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지만 곧 법학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다. 한 학기 뒤에는 거처를 뮌헨으로 옮겨 독학으로 폭넓은 교양을 쌓으면서 그리스 비극, 실러 등 위대한 비극 작품들의 공부에 열중한다. 엘리제가 돈을 더 대주지 못하게 되자 그는 1839년 함부르크로 돌아간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창작이 이루어진다. 1840년 6월, 최초의 비극 <유디트>가 베를린에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둔다. 이듬해에는 <게노베바>를 완성하고 1842년에는 최초의 시집을 발간한다. 1840년 11월에 아들이 태어난 후 형편이 더욱 어려워짐에 따라 작품을 생산할 필요성이 증가한다. 희극 <다이아몬드>는 그 결과물이다. 1842년 말, 헤벨은 분위기를 전환하고 적당한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간다. 일자리는 얻지 못하나 당시 헤벨이 살던 지역의 군주인 덴마크 왕으로부터 2년간 여행 장학금을 받는다. 함부르크로 돌아와 희곡에 관한 견해를 피력한 <희곡에 관한 나의 견해>를 쓰고 <게노베바>를 출간한 후 견문을 넓히고 예술에 관한 지식을 심화시키기 위해 파리로 여행한다. 거기서 하이네를 만나 교류한다. 아들의 사망으로 인한 엘리제의 고통을 고려하여 정식으로 혼인할 생각도 하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마리아 마그달레나>를 탈고한다. 1844년, <희곡에 관한 나의 견해>를 보완한 것을 에를랑겐대학에 제출하여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정받는다. <마리아 마그달레나> 이후 잠시 창작 활동이 중단된다.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서 여행하다가 1845년 돈이 떨어져서 함부르크로 돌아가는 길에 빈에 들른다. 저명한 극작가 그릴파르처 등을 만나고 정착 가능성을 타진하나 쉽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돌아가려고 하다가, 그를 작가로서 존경하고 환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자신처럼 어려운 삶을 살았고 사생아를 나아 기르고 있는 국립극장의 전속 배우 크리스티네 엥하우스를 알게 되어 생각을 바꾼다. 그들은 이듬해 혼인한다. 이 행복한 결혼은 헤벨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전기가 된다. 훗날 1846년에 결별한 엘리제와의 화해도 이루어진다. 크리스티네를 통해 연극계와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헤벨은 다시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잇달아 작품을 완성한다. 이제 헤벨은 <마리아 마그달레나>의 분위기, 청년기에서 벗어나 대작으로 눈을 돌린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희곡 <시칠리아에서의 비극>을 완성한다. 헤벨은 그다음에 완성한 작품 <율리아>(1847)를 <마리아 마그달레나> 2부라고 칭하는데, 딸을 내쫓는 아버지 그리고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의 여파로 일어난 3월혁명의 와중에서, 군대가 빈을 포격하는 혼란 속에서 헤벨이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헤로데스와 마리암네>(1848)가 태어난다. <루비>(1849)는 동화적인 희극이다. <아그네스 베르나우어>(1851)는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재앙을 불러일으켜서 결국 파멸하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기게스와 그의 반지>(1854)는 <헤로데스와 마리암네>와 같이 남녀 관계를 다룬 비극이다. 후자에서는 순전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남녀 관계를 조명한다면 이 작품에서는 종교·윤리적 측면에서 파고든다. 헤벨이 마지막으로 완성한 대작 <니벨룽겐>은 <각질 피부를 가진 지크프리트>, <지크프리트의 죽음>, <크림힐트의 복수> 등으로 구성된 3부작으로 게르만족 이동 시대의 장편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 대한 경탄에서 싹튼다. 헤벨은 1855년 10월에 집필을 시작하나 다른 일 때문에 중단하다가 1859년에 다시 시작해 1860년 초에 탈고한다. 만년에 헤벨은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 그의 작품들이 여러 주요 극장에서 상연되는 영예를 누린다. 특히 1861년 바이마르에서 이루어진 <니벨룽겐> 3부작의 초연은 크게 성공하여 주목을 받는다. 헤벨은 러시아 역사에서 소재를 얻어 집필을 시작한 비극 <데메트리우스>를 탈고하지 못하고 1863 12월 13일 빈에서 눈을 감는다.
헤벨의 주 장르는 물론 희곡, 특히 비극이지만 시와 소설도 발표한다. 1842년에 첫 시집을 펴내고 5년 뒤에는 ≪신 시집≫을 출간한다. 헤벨이 자신의 시를 희곡 작품 못지않게 중요시한 것과는 달리 그의 시에 대한 평가는 긍정에서 부정까지 엇갈린다. 헤벨은 창작만 한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여러 신문과 잡지에 평론이나 기행문을 발표하기도 하고 또 한때 일간지의 문예란 편집을 맡는 등 다양하게 활동했다.
개인과 세계 전체와의 변증법적 대립이라는 형이상학적 신념에서 나온 헤벨의 비극에 관한 견해를 간단히 요약하면, 개인이 역사나 사회윤리같이 전체를 포괄하는 가치나 규범에서 벗어날 때 필연적으로 죄를 짓고 파멸한다는 것이다. 헤벨이 <희곡에 관한 나의 견해>, <마리아 마그달레나>의 서문 등에서 피력한 견해에 따르면, 개인이 원래 속한 공동체에서 이탈해 자아 확충, 자아실현을 추구할 때 그 개인과 전체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예사롭지 않은 관계, 다시 말해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희곡은 삶의 과정 자체를 그리는” 것이다. 예술의 최고 형식으로서 희곡은 “한계를 지킬 줄 모르는 개별화로서”의 삶이 죄를 우연히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내포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드라마의 죄는 기독교의 원죄처럼 인간 의지의 방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 자체에서, 고집스럽고 독단적인 자아 확충에서 나온다.” 따라서 주인공이 좋은 일을 하다가 좌절하건 사악한 일을 하다가 좌절하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개인이 공동체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이 전체에서 이탈하려고 해도 결국 전체, 우주의 한 부분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설령 이탈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아실현 의지, 그로 인한 개인과 전체의 대립을 골자로 하는 헤벨의 견해를 범비극론(Pantragismus)이라 부른다.
인생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시야를 좁히고 체념하는 비더마이어와 급진적인 정치노선을 추구하는 청년 독일파가 병존하던 시기, 이상주의 철학이 지배하던 괴테와 헤겔의 시대가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에서 헤벨은 비극의 형식을 엄격하게 지키려고 시도했고 근대 연극의 여러 요소들을 선취했다. 특히 사회적인 문제와 실존적인 주제를 다룬 점이 그러하다. 그는 낡은 시대의 극복과 새로운 시대의 대두 조건으로 영웅이 멸망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런 역사적 변증법을 통해 비극적 필연성에 초개인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시도했다. 헤벨은 주로 역사의 전환기에서 소재를 택한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옮겨가는 시기(<헤로데스와 마리암네>), 게르만족이 기독교화하는 시기(<니벨룽겐> 3부작), 신화의 시대가 논리의 시대로 이행하는 시기(<기게스와 그의 반지>) 등 과도기적 상황에서 좌절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헤벨의 사실주의적 면모는 세밀한 심리 분석에 기초한 성격 묘사와 극적 갈등의 구체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헤벨의 비극들은 신화와 심리, 영웅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전형적인 것과 개체적인 것,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보여준다.

역자 - 윤도중
윤도중(尹度重)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뮌헨대학교, 본대학교, 마인츠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주한독일문화원, 전북대학교를 거쳐 현재 숭실대학교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숭실대학교 인문대학장을 역임했으며, 레싱, 괴테, 실러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와 역서로는 ≪레싱. 드라마와 희곡론≫, ≪레싱: 필로타스, 미나 폰 바른헬름≫, ≪레싱 희곡선: 현자 나탄, 에밀리아 갈로티≫, ≪괴테 고전주의 희곡선≫,≪카를 추크마이어: 쾨페닉의 대위≫, 프리드리히 헤벨의 <마리아 마그달레나> [실린 곳: ≪독일대표희곡선집 I≫(근대편)], ≪레싱 전설≫,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 ≪함부르크 연극론≫ 등이 있다.

목차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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