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폭력과 고양이가 그리는 청춘 군상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만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랑과 폭력을 그리는 청춘 군상극이다. 2015년 7월 우지강 둑 근처에 있는 기리노의 집에서 주인 기리노 겐토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다. 고인의 납관을 도운 장례 지도사 사카모토 도루는 그곳에서 5년 전 실종된 겐토의 아들 기리노 요시오를 마주한다. 도루와 요시오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희곡의 첫 장면을 여는 요시오와 도루의 대화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과거의 어느 사건을 계기로 파탄 난 우정 앞에서 점차 감정이 고조되며 둘 사이가 위태롭게 느껴진다.
사실 이게 “What do you do today?”거든. 영국인은 ‘데이’를 ‘다이’라고 말해. 그래서 ‘today’는 ‘투다이’가 되는 거야. 나도 처음에는 놀랐어. 갑자기 “너 어떻게 죽을 거야?”라고 물으니까. 근데 사실은 “너 오늘 뭐 할 거야?”였다는 거지. 신박하지. 웃기지 않냐? (12쪽)
‘마이너리티’를 대표하는 인물들
함께 나눈 추억 속 끔찍한 사건이 떠오르면서 이야기의 시점은 과거로 이동한다. 과거의 풍경에서 인물들은 저마다의 ‘마이너리티’를 지닌 채로 일상을 살아간다. 자기만의 음악 취향을 가진 요시오의 누나 가즈에, 어릴 때부터 장례식장을 운영해 온 집안의 딸 유카, 전쟁 저널리스트 다쿠지, 자신의 몸에 이화감을 느끼는 요시오 모두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마이너리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희곡은 살아 있는 인물이 세상을 떠난 이에게 느끼는 그리움을 매개 삼아 시간과 감정의 흐름을 교차시킨다. 강렬한 감정이 응축된 이 희곡은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죽음’과 ‘상실’ 그리고 “기억되고 말해질 수 있는 구조”에 대해 담담히 제시하며 독특한 방식으로 희곡적 상상력과 현실의 관계를 되짚는다. 이렇듯 경계가 허물어진 무대 위의《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는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치부되고, 낙인과 혐오의 시선의 끝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거나 마음껏 드러낼 수 없었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통’이라는 말도 인간이 마음대로 만든 거니까. 보통인지 보통이 아닌지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105쪽)
천사를 품은 존재들에 대한 상상
이 작품은 2015년에 일어난 ISIL의 일본인 인질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이다. 이 사실은 결말부의 극적인 시퀀스에서 묘사되는 참혹한 고문 현장으로부터 드러난다. ISIL에 의해 납치당한 민간 군사 회사 대표 유카와 하루나를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가 구하러 가다 두 사람 모두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일본 사회에서 두 사람은 국가에 큰 민폐를 끼친 인물로 낙인찍혔고 수많은 비난의 시선이 뒤따랐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의 죽음마저 주변부로 내몰렸다. 작가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 두 사람의 사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연들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말하며, “가끔 나는 유카와 씨의 영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유카와 씨의 영혼 곁에 있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오만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가 탄생했다”고 전한다. 그때 무대 곳곳에 드리워진 사회적 혐오의 시선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가 하는 질문은 현재 이 극을 마주한 관객의 몫으로 상기된다. 인간의 거주지 확장으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는 고양이가 도로 위에서 죽어 가고, 지붕 위에는 페인트로 가려진 낙서가 누군가의 고통과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의 고독, 누군가의 의지, 누군가의 삶에 대해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희곡은 지금 바로 여기서 이어지고 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듯하다. 인간 몸에서 가장 연약한 뼈인 쇄골은 심장과 목을 이어 주는 부위로 생명을 유지하는 기관과 목소리를 내는 기관을 보호한다. 이 아름다운 사실이 어떤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부서지기 쉬워 보이는 물음은 각자의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너의, 쇄골에, 가즈에가, 잠들고, 있습니다.”(104쪽) 서로의 상처에 관여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라는 개인의 존재가 각자의 드라마를 넘어 사회적 드라마로 확장되는 순간 세상에는 천사를 품은 존재들로 가득하리라는 믿음을 어렴풋이 가져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루, 이게 끝나면, 너의 쇄골에서 잠들어도 돼?” “…응.”(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