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베르니에 정착
클로드 모네는 1874년 파리에서 종래의 전통적인 화풍과는 다르게 혁명적인 인상파 전시를 처음으로 개최하여 주도자(主導者)로 주목을 받았다, 1874년부터 1886년까지 12년 동안 8회에 걸쳐 개최한 장본인이다. 모네는 8회의 인상파 전시에 다섯 번을 출품하여 인상파의 대표자와 중심역할을 했다. 그는 1883년에 파리를 떠나 80km 떨어진 지베르니Giverny에 정착하였는데 1885년부터 모네가 초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여개 국가에서 350명의 화가등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파리에서 8회까지 개최된 인상파전에 많은 화가들이 관람하고 장래의 미술계의 흐름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300명의 미국 화가들이 지베르니 방문후 최고 30년간 같이 마을에 거주하다
모네는 이주한 뒤에 정착하였는데 2년 후인 1885년부터는 주로 미국 화가등 20개국에서 350명이 모네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약 30년 동안 지베르니를 방문하여 인상주의를 익히려고 한 많은 화가들 즉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는 약 350명에 달했다. 이중에 85%에 달하는 300명이 미국의 화가들이었다. 1914~1918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지베르니에 있던 외국화가들은 프랑스가 전장의 중심지가 되자 미국등 본국으로 귀국했다.
1914년 이후 귀국한 미국 화가들은 화가마을(Art Colony)에서 인상파의 르네상스
모네와 제자처럼 가깝게 지낸 화가로는 지베르니를 1885년에 방문하여 정착한 시어도어 로빈슨Theodore Robinson과 1888년에 지베르니를 방문하여 모네의 의붓딸인 수잔 호셰데 와 1892년에 결혼하여 사위가 된 시어도어 버틀러 Theodore Butler 그리고 여류화가인 릴러 캐벗 페리Lilla Cabot Perry는 1889년에 남편과 함께 지베르니를 방문하여 14년간 지내면서 생활한 화가 등을 들 수 있다. 페리는 모네가 1926년에 죽은 이후에 [모네의 회고록]을 발간하여 귀중하고 생생한 자료가 되었다.
1874년 제1회~제8회 인상주의 전시와 모네의 인상파 기법
19세기 말은 유럽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일찍이 이루어지고 도시화가 진전됨에 따라 미적인 감각이 크게 변화되었다. 종전에는 자연의 풍경과 정물등 사물이 보이는 데로 표현하는 것이 전통적인 아카데믹 스타일이었다. 즉 종전에 추구되던 화풍은 정확한 형상을 명암법과 원근법에 의하여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상파는 순간적인 빛(光)과 음영(陰影)의 영향을 사물에 비치는 시각적 변화와 작가의 느낌으로 그대로 색채(色彩)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인상파는 그림 대상의 모티프가 무한히 넓어졌고 유화 튜브물감의 발명으로 주로 외광회화(Plein Air)를 하게 됨에 따라 캔버스에 칠하는 브러시 워크(Brushwork)가 빠르며 혼색을 피하고 wet to wet 페인팅으로 Alla Prima 기법이 주를 이루어 졌다.
벨 일로 그림여행을 한 동기와 목표가 있었다.,
모네가 벨 일에 그림여행을 떠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모네는 제8회 인상파전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조루즈 쇠라 등이 추구한 바와 같이 구조(構造)와 과학(科學)에 중점을 준 후기 인상주의(Post Impresionism)가 모네의 자연주의적 빛과 색채 묘사에 대하여 반격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모네는 작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막심 뒤캉이 같이 쓴 여행일기(旅行日記) 책인 [들판을 건너, 모래밭을 지나]라는 책에서 충동을 받았다. 당시 벨 일 등의 지역을 거친 여행일기는 그에게 큰 흥미를 준 것이다. 그는 프랑스 북부의 르 아브르 해변이 고향이고 어려서 해변 그림을 익혀서 태생이 바다와 친한 DNA를 지닌 것이 계기가 되었다.
벨 일에서 39점 연작은 파리 전시후 즉각 성공을 거두고 전세계로 팔려 나갔다.
모네는 고향이 프랑스 북부 르 아브르 해안인데 인접한 에트르타 등에서도 바닷 풍경을 그려왔기에 1886년 43세에 벨 일을 본능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야생의 자연으로 해안의 절벽과 거센 해풍의 날씨는 작업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74일간 신비하고 창의적인 39점을 제작하였다. 모네는 지베르니의 작업실에 옮겨 다시 작업을 이어 간 후에 딜러인 뒤랑 뤼엘을 통한 파리의 전시회에 크게 주목과 인기를 얻고 호평속에 전세계에 판매되었다.
벨 일에서 인상파의 특징적인 기법과 성공적인 전시
벨 일에서 작품은 평소 그가 취하던 그림기법과는 상당히 달랐다. 벨 일의 작품은 해안의 바위와 절벽 및 바다가 전부로서 사람이나 동물과 나무는 없었다. 따라서 색채는 캔버스에서 물감을 서로 혼합하지 않고 나란히 색상(色相)의 병치(竝置)를 통하여 관람자가 눈으로 변환하게 하였고 색상의 진동(振動)을 생성하게 하였다. 원근(遠近)은 난색(暖色)과 온색(慍色)의 대비로 표현하였다. 붓놀림(Brush Work)도 작으면서 순간적(瞬間的)으로 느끼는 경험과 생동감 있는 작품을 그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모네가 벨 일에서 그린 39개 작품중에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소장하는 작품은 22점이며 17점은 개인소장으로 밝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