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르치지 않는다: 바탕소 창의성 미술교육 입문』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예술가 교사들과 아이들의 생생한 활동을 통해 얻은 창의적인 결과물을 담고 있다. 다양한 표현과 예술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내재된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책속으로 추가>
아이가 자신의 열정을 발휘하는 교육적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사는 단지 멀리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교육과정을 구조적으로 조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색칠하기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먼저 아이가 쉽게 물감 등 다양한 색채 소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물감 이 여기저기 묻을까 걱정하지 않는 환경을 갖추어 놓았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색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기를 원하는지 살펴본다. 아니면 색을 정확하게 만들고 붓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적인 연습이 필요한 지,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을 드러내고 그것을 색을 가지고 표현하는 경험이 필요한 것인지 이해해야겠다. 깊은 이해와 진단을 통해 아이에게 필요한 적합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아이가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결과물에 대해서 함께 음미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지나쳐버리거나 무시하고 넘어가는 성취에 대해, 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교사의 안목을 발휘하여 아이가 확신하지 못하는 소중한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어야겠다. (p. 202~203)
표현은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표현과 현실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현실은 현실이고 표현은 표현이다. 현실의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표현 내용을 제약하는데 들이대면 표현은 뻗어나가지 못하고 시든다. 아이가 전쟁이나 죽음의 장면을 자주 표현한다면 그의 생활의 문제를 진단하여 생활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표현을 제약한다고 그의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시킬 것이다. 표현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표현을 인정해주고 적극 허용해주면 그의 생활은 여러 모로 나아질 것이다. (p. 211)
아이들의 작품활동의 마무리는 바로 ‘소통’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표현 하나하나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창작과정에서 가졌던 작은 성취들이 승화되지 않으면 그 의미를 갖지 못하고 사그러들기 쉽다. 그 의미를 승화시키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작품활동의 마지막 단계이다. (p. 241)
길다랗고 두껍고 가느다랗고 둥글고 각지고 특이한 모양의 조각들이 바닥에 잔뜩 놓여 있다. 이 어수선한 것들로 어떻게 흡족한 질서를 세울 수 있을까? 우선 작은 조각 하나를 바닥에 세워본다. 누워 있던 것들이 차지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비어 있던 공간에 강한 파도처럼 하나의 긴장이 덮친다. 다음 조각은 이 긴장을 더욱 부추기거나 아니면 잠시 누그러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비슷한 조각을 옆에 하나 더 세워서 반복되고 안정된 느낌을 지니게 할 수도 있고 훨씬 더 긴 조각을 세워서 새로운 움직임을 강조할 수도 있다. 조각을 하나씩 덧붙일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이 새롭게 생겨나서 움직여간다. 마음이 접촉하고 있는 그 리듬이 느껴지는가? 모든 조형은 리듬을 다룬다. 조형행위는 긴장과 이완의 파도를 타는 일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뒤편을 흐르는 힘들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p. 252)
우리는 아이들이 풀어내는 고유한 언어와 세계가 있음을 목격해왔는데, 그들은 종종 예술가들과 비교될 만한 놀라운 비전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표현양식은 무척 다양하고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수없이 많은 언어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질서감각을 균형있게 발달시킨 아이들은 자유로운 표현을 열정적으로 쏟아낸다. 표현이 자유롭고 열정적인 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 258)
이제 겨우 네 살인 민서의 드로잉들을 보면 그저 즐겁다. 민서가 얼마나 그리는 일을 즐기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민서가 심취하는 그리기 놀이가 자유로운 형식을 창조해내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보자. 민서가 쓰는 다양한 색의 선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민서는 무척 다양한 속도로 선을 구사하고 있다. 마치 춤을 추듯이 선의 움직 임도 흥겨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거칠게 몰아치다가 유려하게 구부러지고 분명하게 또박또박 반복되는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한 움직임은 어떤 때는 마구 뭉쳐서 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색과 선과 면들이 어울려 경쾌하고 신나는 댄스파티를 벌이는 것과 같다. (p. 267)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상상한 모든 것들이 우리를 통과해 지나간다. 몸과 마음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필터가 되고, 그것을 통과하여 펼쳐진 세계는고유한 영역을 가지는 하나의 우주가 된다. 창작과 표현은 하나로 보이는 우주속에서수없이 존재하는 무수한 우주들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열정과 비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두 버팀목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새로 생겨나는 수많은 우주의 씨앗들을 본다. 무조건 가르치려고 하는 관점을 바꾸면 우리는 아이들이 펼쳐내는 새로운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의 모든 창의의 원형이 더 힘차게 박동할 것이고, 그만큼 이 세계는 꺼져있던 불이 밝혀져 더 많은 비전으로 넘쳐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