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가나 초콜릿(Ghana Chocolate)의 원재료 카카오빈(Cacao bean)의 고향, 가나(Ghana)로 떠나보겠습니다. 가나란 국명은 8세기부터 11세기 무렵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눈부신 번영을 누렸던 고대 가나 제국의 유산을 계승한 결과입니다. 1957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독립을 쟁취한 가나는 오늘날까지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나의 볼타, 그레이터아크라, 센트럴, 웨스턴 지역의 요새와 성(Forts and Castles, Volta, Greater Accra, Central and Western Regions, 1979)’은 대서양 노예무역의 비극과 인류의 저항을 동시에 증언하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산코파(Sankofa)의 정신으로 과거를 되돌아보고, 켄테(Kente)의 화려한 문양 속에 공동체의 통합을 수놓으며, 아고로(Agorɔ)의 뜨거운 리듬으로 삶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곳! 아프리카의 검은 별(The Black Star of Africa), 가나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과거를 품고 미래를 향해 걷는 발걸음, 산코파(Sankopa: Footsteps walking toward the future while embracing the past) : 가나의 영혼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핵심 키워드는 아칸어(Akan)로 ‘과거로 돌아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오다’라는 숭고한 의미를 지닌 ‘산코파(Sankofa)’입니다. 몸은 굳건히 앞을 향해 있으나 고개를 완전히 뒤로 돌려 자신의 등 위에 있는 알을 소중히 품고 있는 새의 모습으로 흔히 형상화되는 이 개념은,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결코 회피하거나 묻어두지 않고 온전히 직시하고 성찰할 때 비로소 올바른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가나인들의 굳건하고도 철학적인 역사 인식(Historical Awareness, 歷史認識)을 대변합니다. 이러한 산코파의 철학이 공간적으로 가장 짙고 무겁게 배어 있는 곳이 바로 1979년 가나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나의 볼타, 그레이터아크라, 센트럴, 웨스턴 지역의 요새와 성(Forts and Castles, Volta, Greater Accra, Central and Western Regions)’입니다.
1482년 포르투갈이 세운 엘미나 성(Elmina Castle)을 시작으로 1786년까지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수많은 유럽 열강에 의해 해안선을 따라 경쟁적으로 건립된 이 거대한 건축물들은 초기에는 금과 상아, 향신료 무역의 거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이 성채들은 점차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박탈당한 채 족쇄를 차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가기 전 어둠 속에 갇혀 있어야 했던 대서양 노예무역의 비극적인 중심지로 변모했습니다. 케이프코스트 성(Cape Coast Castle)의 습기 차고 숨 막히는 지하 감옥인 '돌아올 수 없는 문(Door of No Return)' 앞에 서면, 바로 위층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쾌적한 생활을 누렸던 유럽인 총독들의 삶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식민주의의 잔혹한 민낯과 인류의 어두운 진실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가나 정부와 국민들은 독립 이후 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공간을 분노 속에 허물어버리는 대신, 뼈아픈 기억을 인류 전체의 반성적 교훈으로 삼고자 산코파의 정신으로 정성껏 보존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곳은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 아프리카계 후손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뿌리를 눈물 속에서 되찾는 ‘귀환의 해(Year of Return)’ 프로젝트의 성지이자, 억압과 저항의 역사를 증언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했습니다.
▶ 다채로운 실로 짜아낸 정체성과 통합의 미학, 켄테(Kente: The Aesthetics of Identity and Integration Woven with Colorful Threads) : 가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살펴볼 두 번째 키워드는 서아프리카 전체의 시각적 정체성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화려한 전통 직물, ‘켄테(Kente)’입니다. 본래 바구니를 의미하는 아칸어 ‘켄텐(Kenten)’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이 직물은, 인류의 몸을 가리는 단순한 옷감을 아득히 뛰어넘어 수많은 색상의 실과 복잡한 기하학적 무늬를 정교하게 교차시켜 직조해 낸 가나인들의 세계관이자 철학의 집대성입니다.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당당히 등재된 ‘전통 직물 켄테 수공예(Craftsmanship of traditional woven textile Kente)’는 실크, 면, 레이온 등을 수평 베틀(horizontal looms)에 걸어 아주 좁고 긴 띠 형태로 짜낸 뒤, 이를 수작업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이어 붙여 하나의 커다란 천으로 완성하는 고도의 예술적 실천입니다. 켄테가 지닌 진정한 미학적 가치는 이 직물에 새겨진 무늬와 색상 하나하나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황금색은 부와 왕족의 영광을, 녹색은 생명과 수확을, 흑색은 아프리카인의 영적 강인함과 조상과의 연결을 은유하는 등, 켄테의 모든 요소는 속담, 인생의 철학, 착용자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완벽하게 담아내는 고도의 시각적 기호(Visual Sign, 視覺的記號)로 작용합니다. 또한 이 수공예의 제작 과정 자체에도 깊은 사회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성이 주로 면화를 수확하여 실을 잣고 천연 염색을 담당하며, 남성이 무거운 베틀을 만들고 정교한 직조를 맡는 등 성별 간의 유기적이고 협력적인 노동 분업(Division of Labor, 勞動分業)을 통해 비로소 완성품이 탄생합니다. 이는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엮어갈 때 비로소 튼튼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완성된다는 평화로운 공존의 메시지를 웅변합니다.
▷ 흙과 대나무로 빚어낸 성소, 건축으로 번역된 직물의 기하학(A sanctuary crafted of earth and bamboo, the geometry of fabric translated into architecture) : 이러한 켄테 직물이 보여주는 고도의 철학적이고 기하학적인 예술성은 사람의 몸을 감싸는 데 그치지 않고, 가나의 전통 건축 양식으로 확장되어 공간 속에서 장엄하게 변주됩니다.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산테 전통 건축물(Asante Traditional Buildings)’은 과거 아프리카 대륙을 호령했던 18세기 아산테 제국(Asante Empire)의 화려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귀중한 물질적 유산입니다. 가나 중부의 역사 도시 쿠마시(Kumasi) 인근의 작은 마을들에 흩어져 있는 이 신전(Shrines) 혹은 정령의 집(Abosomfie)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흙, 목재, 대나무, 짚 등을 완벽한 비율로 조합하여 지어졌습니다. 안뜰을 중심으로 4개의 직사각형 건물이 마주 보는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인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으며, 회반죽을 바른 벽면의 상하단에는 켄테 직물의 패턴을 그대로 건축물에 옮겨 놓은 듯한 정교한 아딘크라(Adinkra) 상징들이 입체적인 부조(Bas-relief, 浮彫) 형태로 빽빽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악어, 새, 나선형 문양 등 자연과 추상적 도형이 결합된 이 상징들은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신과 조상, 그리고 대자연의 질서에 대한 아산테인들의 깊은 신앙과 지혜를 문맹자들도 읽어낼 수 있도록 기록한 거대한 시각적 문헌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건축물들은 17세기 후반 아산테 제국의 기틀을 굳건히 다진 영웅적인 군주 오세이 코피 투투 1세(Osei Kofi Tutu I, 1660~1717)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 엄청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영국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군사적 침략이 시작되자, 수많은 건축물들이 포화 속에 파괴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산테인들은 굴복하지 않았으며, 영국의 총독이 아산테 민족의 영혼 그 자체인 황금 의자(Golden Stool)를 빼앗으려 하자, 위대한 여전사이자 에지수(Ejisu)의 대비였던 야 아산테와(Yaa Asantewaa, 1840~1921)가 총을 빼 들고 결사항전을 주도했습니다. 오늘날 간신히 살아남은 10여 채의 이 흙집들은 화려했던 제국의 영광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영웅들의 저항 정신을 켄테의 붉고 검은 실처럼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 고단한 삶을 축제로 승화시킨 생명력, 아고로(Agoro: The vitality that transformed a weary life into a festival) : 가나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지탱하는 세 번째 핵심 키워드는 강력한 삶의 에너지이자 축제, 그리고 유희를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아칸어 ‘아고로(Agorɔ)’입니다. 가나 사회에서 아고로는 단순히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가벼운 유희나 오락 행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음악과 역동적인 춤을 통해 느슨해진 공동체의 규범을 다시 세우고, 사람들 사이의 얽힌 갈등을 땀방울과 함께 해소하며, 고단하고 척박한 일상의 시름을 집단적인 기쁨과 엑스터시로 완벽하게 승화시키는 가장 아프리카적인 치유의 메커니즘입니다. 이러한 아고로의 정신이 식민지와 근현대의 격변을 거치며 가장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형태로 구현된 사례가 바로 202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이라이프 음악과 춤(Highlife music and dance)’입니다. 기타, 호른, 금관악기 등 유럽에서 유입된 서양의 악기들에 가나 토착 민족 특유의 타악기 비트와 리듬감이 절묘하게 혼합된 이 매혹적인 장르는, 선창자가 특정 구절을 노래하면 밴드의 코러스나 관중들이 일제히 화답하는 전통적인 호응 형식(Call and Response, 呼應形式)을 충실히 따르며 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와 일체감을 유도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혼례의 기쁨, 장례식의 슬픔, 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명명식 등 가나인들의 삶의 모든 굽이마다 빠짐없이 울려 퍼지는 하이라이프는, 전염병이나 가난 같은 무거운 현실부터 남녀 간의 풋풋한 사랑, 세대 간의 교육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의 다양한 이슈를 유머러스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은 가사로 풀어내는 훌륭한 사회적 소통의 장(場)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묶인 빗자루처럼 단단하게 이어질 연대의 내일(A tomorrow of solidarity that will continue firmly like a bound broom) : 지금까지 우리는 ‘산코파(Sankofa)’, ‘켄테(Kente)’, ‘아고로(Agorɔ)’라는 묵직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세 가지 현지어 키워드를 통해, 서아프리카의 심장 가나가 지닌 깊고 다채로운 영혼의 궤적을 치열하게 탐구해 보았습니다. 가나는 대서양의 차가운 짠바람이 서린 요새의 핏빛 돌벽과, 수백 년 전의 잉크가 말라붙은 빛바랜 문서 속에서 아프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결코 외면하거나 잊지 않고 오히려 뼈저린 교훈으로 건져 올리는 산코파의 성숙한 지혜를 지녔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질감과 화려한 색상의 실들을 수평 베틀 위에서 정교하고 치밀하게 교차시켜 찬란한 문양의 예술과 통합의 건축을 완성해 내는 켄테의 철학으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굳건하게 하나로 결속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직조해 냈습니다. 나아가 아무리 거친 삶의 파도가 몰아치고 제국주의의 군화가 짓밟고 지나갔어도, 춤과 노래라는 아고로의 마법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고단한 삶을 끝내 경쾌한 축제로 승화시켜 버리는 압도적인 긍정의 에너지를 전 세계에 끊임없이 발신하고 있습니다.
Prayɛ, sɛ woyi baako a na ebu; wokabomu a emmu.
When you remove one broomstick it breaks but when you put them together they do not break.
빗자루의 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하나로 묶이면 부러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