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흑인의 땅(land of the black people), 기니(Guinea)로 떠나보겠습니다. ‘기니’라는 국명은 '검은 사람들의 땅', '아프리카 흑인의 땅', 아프리카 남부 거주민 등의 뜻을 가진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어 기나웬(Ghinawen) 혹은 아그나우(Agnaw)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합니다. 유럽인에게 기니는 특정한 국가가 아니라 아프리카 흑인의 땅'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기니만(Gulf of Guinea), 기니비사우(Guinea-Bissau), 적도기니(Equatorial Guinea), 기니피그(Guinea pig), 영국 옛 화폐 기니(Guinea) 등에 기니란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기니는 1958년 아흐메드 세쿠 투레(Ahmed Sékou Touré, 1922~1984)의 영도 아래, 서아프리카 불어권 국가 중 유일하게 프랑스 공동체(French Community, 1958~1995) 가입을 거부하고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 특히 기니는 800년의 장구한 역사를 품은 신성한 목금(木琴) 악기 '소소 발라(Sosso-Bala)의 문화 공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척박한 식민의 역사 속에서도 삶의 모든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문화 강국입니다. 카마라 레이(Camara Laye, 1928~1980)의 자전적 소설 '검은 아이(L'Enfant noir, 1953)'를 옆구리에 끼고, 서아프리카의 급수탑(Water Tower of West Africa), 기니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피로 이어지는 기억의 노래, 젤리야(Jeliya, The Song of Memories Connected by Blood) : 서아프리카 전역에서 널리 알려진 전통적인 이야기꾼이자 역사가를 지칭할 때, 외부 세계에서는 흔히 프랑스어에서 파생된 그리오(Griot)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마닌카(Maninka) 사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인 젤리(Jeli)라는 명칭을 훨씬 더 선호하며, 이들의 예술적 행위와 장인 정신을 총칭하여 젤리야(Jeliya)라고 부릅니다. 언어학적으로 젤리(Jeli)의 어원은 '피(血)'를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희적 존재가 아니라, 한 사회의 혈통과 영적 기억을 몸속의 피처럼 순환시키고 보존하는 생명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함을 암시합니다. 젤리의 지위는 철저히 세대를 거쳐 혈통으로만 세습되며, 전통 사회에서 이들은 군주들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조언자이자 외교관, 그리고 분쟁을 조정하는 중재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 소소-발라와 영웅 서사시의 전승(Sosso-Bala and the Transmission of Heroic Epics) : 이러한 젤리야의 위대한 전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니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바로 '소소-발라의 문화 공간(Cultural space of Sosso-Bala)'입니다. 소소-발라(Sosso-Bala)는 13세기 초반 수수(Sosso) 제국을 통치했던 강력한 군주 수마오로 칸테(Soumaoro Kanté)가 소유했던 신성한 발라폰(Balafon)입니다. 조롱박을 공명통으로 사용하는 나무 건반 악기인 발라폰 중에서도, 소소-발라는 약 1.5미터의 길이에 20개의 나무 건반이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악기는 정령(Jinni)이 왕에게 직접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며, 냐마(Nyama)라 불리는 주술적이고 영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매개체로 여겨졌습니다. 이후 1235년경 키리나 전투(Battle of Kirina)에서 말리 제국(Mali Empire)의 창립자 순디아타 케이타(Sundiata Keita, c. 1217~c. 1255)가 수마오로 칸테를 물리치고 제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이 악기는 승리의 전리품을 넘어 만딩고(Mandingo) 족의 자유와 결속을 상징하는 거룩한 유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순디아타 케이타의 생애는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고 제국을 건설한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의 구조를 띠며, 이는 오직 젤리들의 구전을 통해서만 수백 년간 전승되어 왔습니다. 1960년에 이르러서야 기니의 저명한 역사가 지브릴 탐시르 니안(Djibril Tamsir Niane, 1932~2021)이 젤리 마무두 쿠야테(Djeli Mamoudou Kouyate)의 구술을 바탕으로 이를 번역·출판하면서 아프리카 구전문학의 정수가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현재 원본 소소-발라는 기니 북부 냐가솔라(Nyagassola) 마을의 둥근 진흙 오두막 안에 은밀히 보관되어 있으며, 발라티기(Balatigui)라 불리는 쿠야테 가문의 가부장만이 중요 의례 시 이 악기를 연주할 독점적 권한을 지닙니다.
▶ 위대한 어머니의 품, 듬바와 님바(D'mba and Nimba, The Embrace of the Great Mother) : 기니의 끈적한 남부 습지대와 대서양 해안선에 거주하는 바가(Baga) 족의 예술 세계와 우주관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듬바(D'mba)'입니다. 이웃한 수수(Susu) 족의 언어인 '님바(Nimba, 위대한 정령)'로 국제 사회에 더 널리 알려져 있으나, 본래 바가 족의 푸쿠르어(Pukur)로 불리는 듬바는 막연한 신성(神性)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 내에서 여성이 지니는 역할, 즉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위대한 미덕의 '이상적 추상화(Abstraction of an ideal)'를 강력하게 상징합니다. 거대한 듬바 형태의 목각 머리 장식(Headdress)은 아프리카 조형 예술의 백미를 보여줍니다. 납작하게 늘어진 거대한 가슴은 수많은 아이를 훌륭히 길러낸 어머니의 헌신을, 정교하고 거대하게 땋아 올린 머리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대변합니다. 최대 2.4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장식은 무용수의 어깨 위에 얹혀져, 라피아(Raffia) 야자잎으로 만든 치마와 함께 춤의 일부로 승화됩니다. 농경 사회였던 바가 족에게 듬바의 춤은 풍요로운 쌀 수확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안녕을 축원하는 위대한 어머니 대지(Mother Earth) 그 자체의 현현(顯現)이었습니다. 식민 지배와 혹독한 문화 말살 정책 속에서도 듬바의 이미지는 기니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살아남아 오늘날까지도 기니를 상징하는 강력한 국가적 아이콘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 님바산 엄정자연보존지역: 생태의 피난처(Mount Nimba Strict Nature Reserve: Refuge of the Ecosystem) : 이러한 생명을 품고 기르는 위대한 어머니의 상징성은 기니 남동부의 세계자연유산, '님바산 엄정자연보존지역(Mount Nimba Strict Nature Reserve)'의 압도적인 생태적 가치와 경이롭게 맞닿아 있습니다. 사바나 평원 위로 해발 1,752미터까지 솟아오른 님바산은 초국경적 산맥이지만, 그중 12,540헥타르를 기니가 차지하고 있어 기니 생태계의 중추적인 척추 역할을 수행합니다. 독특한 지형적 고립성과 고도에 따른 극적인 기후 변화는 사바나 기후 속에서도 수많은 미기후(Microclimates)를 형성해 냅니다. 이곳은 체내에서 알을 부화시켜 새끼를 낳는 태생 두꺼비(Nimbaphrynoides occidentalis), 님바수달땃쥐(Micropotamogale lamottei), 돌을 도구로 사용하는 침팬지(Pan troglodytes verus) 등 희귀한 고유종들을 보듬는 완벽한 생태계의 피난처(Refuge)입니다. 즉, 님바산은 듬바(D'mba) 가면이 상징하는 것처럼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생명을 가슴에 품고 번성케 하는 거대한 자연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 아프리카의 생명수, 푸타 잘론(Fuuta Jaloo, The Water of Life in Africa) : 기니의 국토 중부 내륙을 거대하게 지배하는 방대하고 장엄한 고원 지대를 일컬어,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류 민족인 풀라(Fulbe 혹은 Fulani) 족의 언어인 풀라어(Pular)로는 '푸타 잘론(Fuuta Jaloo)'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푸타(Fuuta)'는 풀라 족이 거주하는 영토를 아우르는 고유 명칭이며, '잘론(Jaloo 혹은 Jallon)'은 이 지역 원주민인 얄론케(Jallonke) 사람들의 옛 언어로 '산(Mountain)'을 의미합니다. 전혀 다른 두 민족의 이름과 언어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물리적으로 융합되어 탄생한 이 지명은, 이 산악 지대가 지닌 복합적인 민족적, 지리적 정체성을 완벽하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푸타 잘론은 서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숨통을 틔우는 '서아프리카의 급수탑(Water Tower of West Africa)' 역할을 합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푸타 잘론 고원의 깊은 계곡과 산맥은 막대한 양의 비를 머금고 저장했다가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3대 주요 강으로 뿜어냅니다. 광활한 곡창지대를 형성하는 니제르강(Niger River), 세네갈을 지나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세네갈강(Senegal River), 그리고 감비아강(Gambia River)의 젖줄인 틴키소(Tinkisso), 밀로(Milo), 바핑(Bafing) 등의 지류들이 모두 이 고요한 고원에서 그 생명의 기원을 시작합니다.
▷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이슬람 학문과 아자미(The Unfailing Spring of Wisdom: Islamic Scholarship and Ajami) : 더 나아가 푸타 잘론은 단순히 맑은 물을 쏟아내는 수원을 넘어, 서아프리카 전역에 종교적, 학문적 영감을 불어넣는 멈추지 않는 지혜의 샘이기도 했습니다. 1720년대 후반, 카라모코 알파(Karamoko Alfa)와 이브라히마 소리(Ibrahima Sori)가 이끄는 풀라 족과 마닌카 족의 이슬람 성전(Jihad)을 통해 이 지역은 서아프리카 최초의 이슬람 신정 국가(Theocratic state)로 거듭났습니다. 수많은 무슬림 학자들이 이곳의 고원에서 코란을 깊이 연구하고, 아랍어 문자를 차용하여 자신들의 토착어인 풀라어나 마닌카어를 기록하는 이른바 아자미(Ajami) 문자를 발전시켜 고도의 문학적, 철학적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아프리카의 대지를 끊임없이 적시는 푸타 잘론의 강물처럼, 이들이 남긴 학문과 종교적 사상은 메마른 정신을 일깨우며 이웃 국가들로 도도히 흘러갔습니다.
▶ 지혜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미래(Drawing the Future from the Well of Wisdom) : 지금까지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붉은 심장이라 불리는 기니를 상징하는 세 개의 깊고 푸른 언어의 우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조상들의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선율의 역사가 집약된 영혼의 기록 '젤리야(Jeliya)', 여성이 지닌 생명 잉태의 힘과 자연의 풍요를 숭고하게 기원하는 대지의 어머니 '듬바(D'mba)', 그리고 서아프리카 전체를 촉촉이 적시며 사상과 철학을 잉태한 웅장한 물의 고향 '푸타 잘론(Fuuta Jaloo)'까지. 이 세 가지 키워드는 기니라는 국가가 단순히 식민 지배의 상흔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의 고유한 언어와 예술적 행위를 통해 대자연과 깊이 교감하며 독립적이고 완전한 우주를 창조해 낸 위대한 문화권임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니의 찬란한 무형 유산과 경이로운 자연 생태계는 오늘날 현대 문명의 거센 동화 작용과 무자비한 자원 개발의 폭력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아슬아슬한 생존의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UNESCO)에 등재된 각종 타이틀은 이 귀중한 인류의 보물들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에 불과합니다. 인류가 철학적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전통의 뿌리를 망각할 때, 우리는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영혼의 나침반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La sagesse est comme un baobab, une seule personne ne peut l'embrasser.
Wisdom is like a baobab tree; no one individual can embrace it.
지혜란 바오밥나무와 같아서, 한 사람의 두 팔로는 온전히 껴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