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권력은 어떻게 국가를 설계하는가
성리학을 중심으로 세워진 국가 조선,
국가의 창업과 중흥에 깊은 뿌리를 내린
다섯 유학자의 사유와 선택
새로운 사상과 권력이 요구되는 오늘,
그들의 분투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시대를 열어갈 방향을 모색한다.
◎ 도서 소개
조선은 성리학을 국시로 삼아 국가를 세웠고, 성리학은 조선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이 성리학은 조선 왕조 약 500년간 우리나라에 뿌리를 깊게 내렸으며,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전통, 관습, 윤리 등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성리학은 단일한 이념이나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건국의 설계, 개혁의 요구, 실천의 윤리, 제도의 안정과 민생의 문제를 둘러싸고 성리학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확장되었다. 정도전부터 이이까지 조선, 그리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을 통해 이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조선 밖에서 널리 퍼진 왕양명의 양명학까지 다루며 성리학을 더욱 객관적으로 살핀다.
이 책의 저자이자, 국내 조선사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인 신병주 교수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사유의 산물로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사상이 국가의 운영 원리가 되었는지를 살피고, 어떤 사유는 제도로 정착되고 어떤 사유는 좌절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이 여정은 조선의 사상과 권력을 설계한 다섯 사상가의 궤적을 따라간다. 정도전은 새로운 왕조의 제도적 청사진을 제시했고, 조광조는 소학과 사림이라는 새로움을 바탕으로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다. 조식은 실천을 통해 유학의 윤리를 증명하려 했으며, 이이는 조정과 민생을 아우르는 경장의 논리를 모색했다. 여기에 조선 밖에서 유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왕양명의 사유가 더해지며, 성리학 정치의 가능성과 한계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 시리즈 소개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
국내 최고 연구자들의 입체적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역사의 시그니처’는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각 세기의 대표적 시대정신을 소개하는 인문 교양 시리즈입니다. 한 시대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들을 엄선해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소개하고 인류의 사상이 어떤 갈래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봅니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시대별로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되어 오늘의 21세기를 만들었는지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를 통해 만나보세요.
◎ 본문 중에서
“이미 술을 마셔서 취하고 큰 은덕으로 배가 부르니 군자께서는 만년토록 큰 복(景福)을 누리리라”라는 구절을 인용해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으로 정했다고 했다.
【20쪽_PART 01_01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다】
조광조는 요순과 같은 성군을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자신과 같은 능력 있는 신하들의 정치 참여를 은연중 강조했다. 이러한 신권강화론의 입장은 이후 중종과 조광조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단서가 됐을 뿐만 아니라 궁극에는 조광조를 하루아침에 실각시키게 하는 계기가 된다.
【68쪽_PART 02_02 중종을 사로잡은 조광조의 대책문】
조식은 무엇보다 학문에 있어서 수양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敬)과 의(義)는 바로 남명 사상의 핵심이다. 남명은 ‘경’을 통한 수양을 바탕으로, 외부의 모순에 대해 과감하게 실천하는 개념인 ‘의’를 신념화했다.
【98쪽_PART 03_02 비판으로 드러난, 실천의 의지】
조식은 이황과 동년인 1501년[연산군 7년]에 태어나 조선 시대 내내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섰다. 이황의 근거지 안동, 예안은 경상좌도, 조식 근거지 합천, 산청은 경상우도의 중심지였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경상도 지역을 보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낙동강을 경계로 좌측은 경상좌 도, 우측은 경상우도로 칭했다. 그리고 ‘좌퇴계 우남명’이라 하여, 두 사람을 이 지역 학문의 대표자로 인정한 것이다.
【108쪽_PART 03_04 퇴계에게 건네는 실천의 편지】
선조에게 『동호문답』을 바친 것을 시작으로, 이이는 계속해서 선조에게 간언하여 시무를 받아들여 줄 것을 요청 했다. 그러나 선조는 이이의 간언을 들어주지 않았고, 때로는 그를 과격하다고 배척하게 되면서 『동호문답』에 담긴 이이의 개혁은 실현되지 못했다.
【136쪽_PART 04_02 정체기를 극복할 경장론의 집대성】
왕양명은 자신의 제자와 대화 중 ‘지극한 선’을 오직 마음에서만 구한다면 천하의 사리는 다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언급에, 마음이 곧 이치라 대답을 한다. 즉, 마음이 이치이자 사사로운 욕심 같은 것이 없다면 그것이 곧 천리(天理)이기 때문에 밖에서 이치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다.
【181쪽_PART 05_03 세상의 이치는 결국 마음속에 있다】
양명학은 ‘심즉리(心卽理)’를 내세운 사상으로서, 정치(精 緻)한 이론 탐구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해 가기보다는 ‘자득(自得)’이나 직관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했던 화담의 학문과 부합되는 면이 많았다고 여겨진다. 화담은 김인후에 의해 당시 ‘심학(心學)의 종주(宗主)’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0쪽_PART 05_07 조금씩 양명학을 수용한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