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열무가 아삭거리고 구운 대파의 달큼함이 퍼지면
종일 날 서 있던 마음도 살포시 누그러진다.”
사계절 24절기 놓치기 쉬운 제철 식재료 소개부터
평범한 요리에 포인트를 주는 정고메만의 킥까지
언제나 ‘밑’반찬으로 밀려났던
채소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식탁 위 주인공으로 만나는 시간
◎ 도서 소개
계절이 오고 가는 순간을 느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
정고메의 흙향 머금은 집밥 일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집밥은 늘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이다. 큰마음을 먹고 장을 봐 한 끼를 차려도, 다음 날이면 밀려드는 피로와 귀찮음에 앞에서 배달앱을 켜기 쉽다. 냉장고 속 채소가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반복하지만, 식탁의 루틴은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한다.
몇 번이고 ‘집밥 먹기’에 도전했다가 포기한 이들에게 정고메 작가는 말한다. “집밥에서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은 ‘오늘 무너지더라도 내일부터 다시 하지 뭐’ 하고 가볍게 넘기는 태도”라고. 완벽하게 해내야겠다는 결심보다는 느슨하지만 꾸준한 반복이야말로 다음 끼니를 이어가는 힘이라고. 저자 역시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밥을 해 먹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도시락을 싸 다닌 지 10년이 넘었다. 그렇게 오래 지속해온 채소 중심의 식탁과 생활의 감각을 이 책 《제철 채소 먹는 기쁨》에 담았다.
이 책은 집밥 중에서도 특히 ‘채소 집밥’에 주목하며 그동안 ‘밑반찬’으로 머무르곤 했던 채소를 식탁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그리고 열무, 깻잎, 무, 대파처럼 익숙한 재료가 어떻게 한 접시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를 실용적인 레시피와 생생한 설명을 통해 보여준다. 메인 요리 곁에 놓이던 채소가 주재료가 되는 순간, 우리는 늘 알던 재료에서 의외의 맛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채소 집밥’이라는 소박하지만 단단한 한 끼를 만드는 일은, 결국 나를 먹이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획일화된 바깥 음식이 아닌 나만의 입맛에 맞는 간을 찾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생활 리듬과 취향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제철 채소 먹는 기쁨》은 거창한 결심 대신 작고 사소한 반복으로 하루의 식탁을 바꾸고 싶은 이들에게, 끝내 매일의 루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다정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나는 오로지 채소만을 식탁의 중심에 놓고 샅샅이 들여다본다. 오늘과 내일 각기 다른 조리법으로 채소에서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떤 존재든 애정을 가지고 살피면 고유의 매력이 드러나는 법이다. 채소도 그렇다. 국물을 낼 때 쓰이는 대파, 쌈 채소로 놓인 깻잎, 열무김치로 절인 열무라 할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잠재력’이 숨어 있다.
【5쪽_‘밑’이 아닌 식탁의 중심에서】
깻잎은 서로 모르는 우리의 세계를 연결해준다. 깻잎을 심은 사람, 한 장 한 장 수확하는 외국인 노동자, 깻잎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사람들, 깻잎을 씻고 요리하는 사람들, 혼자서 또는 함께 깻잎 냉파스타를 해 먹는 사람들, 지금 깻잎을 먹고 있는 나까지. 우리는 본 적도 없고 지나친 적도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왠지 깻잎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8쪽_한 그릇에 담긴 들깨의 일생, 깻잎 냉파스타】
요리의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좀 더 간편한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나는 여전히 직접 장을 보는 이 수고로움이 좋다. 내게 집밥이란 단순히 완성된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고르고 선택하는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화면 속 이미지가 아닌 실재하는 채소의 물성과 생기를 마주하고 직접 손으로 만져보며 괜스레 앞면과 뒷면을 뒤집어 보는 소소한 동작들, 모르는 사람들과 비슷한 목적으로 잠시 머무르는 공간, 계산 순서를 기다리다가 점원분과 나누는 짧은 대화. 이 모든 생생한 감각들이 스며들어서인지, 직접 장을 본 채소로 만든 요리는 언제나 조금 더 특별한 맛이 난다.
【85쪽_버섯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 진국 버섯탕】
사람마다 마음을 기댈 구석 하나쯤은 필요하다. 내게는 그 믿을 구석이 바로 채소들이다. 내게 맛의 기쁨을 주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요리의 재미를 주고, 무엇보다 오늘을 살아갈 에너지를 주는 고마운 존재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에 뚝 떨어진다 해도, 풀 한 포기 자라날 땅만 있다면 나는 채소로 밥을 해 먹으며 그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묘한 안도감이 들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나를 닦달하는 불안함도, 무리하게 만드는 욕심들도 잠시 내려놓게 된다.
【185-186쪽_항상 곁에 두고 싶은 무적의 반려채소】
집밥과 함께 나는 ‘채소’를 일상의 동반자로 들였다. 채소를 일상에 들이면 부엌에 머무는 시간은 필연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흙을 털어내고, 다듬고 데치는 번거로운 과정들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바로 그 수고로움 때문에 나는 ‘채소 집밥’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는 현대인의 삶에서, 제철의 채소만큼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식은 없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제철 채소는 계절 사이로 촘촘하게 놓인 절기의 변화까지 감지하게 한다.
【201쪽_가장 용기 있는 자립의 시작, 채소 집밥】
집밥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직결되어 있다. 꾸준한 운동이 단단한 몸을 만들듯, 집밥을 꾸준히 짓는 근력을 가진 사람은 흔들림 없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집밥은 매일 마주하는 일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먹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어떻게 먹는가’는 결국 ‘어떻게 나를 대할 것인가’와 연결되어 있다.
【293쪽_채소 집밥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