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난다의 시의적절, 그 일곱번째 이야기!
시인 박상수가 매일매일 그러모은
7월의, 7월에 의한, 7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오늘밤 우리는 이십 년이 넘도록
연재가 끝나지 않은 만화책을 같이 읽어나갈 거야.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싶어서
오늘밤은 불을 끄지 못하겠구나.
2026년의 일곱번째 달, 난다 시의적절 시리즈 7월의 책은 2000년 『동서문학』에 시, 2004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현대문학상, 김종삼시문학상, 젊은평론가상을 받은 시인 박상수의 첫 산문집 『생활력』이다. “말한다 해도 끝끝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메신저 백』, 문학동네, 2026)으로 시를 써온 그가 서른한 편의 산문과 책을 여닫는 두 편의 시로 7월 한 달을 가득 채워냈다. 시와 산문의 교차로 구성되었던 평소의 시의적절과는 달리, 앞뒤로는 책의 기둥이 되는 시를 한 편씩, 1일부터 31일까지는 “말하지 못했지만 쓸 수는 있었던” 이야기들을 실은 점이 특별하다. 오랜 장마가 그치고 마침내 날이 개고, 공기 속에 촉촉함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문득 생각나는 구절이 여기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작가의 말). 이따금 쓰고 읽기의 너무 많은 의미가 무거워서, 글을 쓰느라고 세상을 놓친 것 같아서, 그게 억울해서, 그래서 가벼운 음악이나 듣자고 했지만 시인은 그 안에서도 시적인 것을 발견하고야 만다. 사랑이 나를 너무 포근하게 녹여버려 내가 녹아 없어질 것 같을 때, 그 안에 삶의 균열이 있고, 상처가 있고, 해결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는 걸 감각한다(19일 산문). 그래서 글을 썼던 거다. 한번 언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시의 화자로 불쑥 ‘숙녀’라는 존재가 태어나고 시의 ‘연극성’을 체득하는 과정을 겪으면서(「우린 너무 아름다워서 꼭 껴안고 살아가야 해」). 또한 여성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세상에서 제일 약한 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이렇게 극진할 수 있는지 되물으면서(11일 산문). 글을 읽고 쓰지 않았다면 다른 어처구니없는 일에 정신이 팔린 채 영영 북극곰이 되어 표류했겠지. 녹아 없어져버렸겠지.
시를 쓸 때는 몰랐는데 쓰고 보니 겨울을 배경으로 쓴 시가 많다는 걸 알았다. 7월에 생각하는 겨울은 시인에게 더 사무치게 생생한 것이다(24일 산문). 더운 여름날, 손바닥에 놓인 얼음이 녹지 않고 제 형상을 유지할 때. 살갗을 식히며 순수함의 정점처럼 차갑게 불타오르고 있는, 녹을 수 없고 영원히 녹지 않을 것만 같은 얼음 한 조각. 하지만 결국 녹아버릴 것을 알고야 마는 어떤 순간은 도래할 것이므로(「룩셈부르크병」). “다만 여기, 우리가 밤과 낮을 같이 살며,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도 생활을 잃지 않고, 생활을 속이지 않고, 생활을 나누며 살아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다면.”(나가는 시)
점점 거칠어지는 비, 바람,
파도 거품의 뒤섞임.
후두둑,
앞으로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텐데.
유년 시절 시인은 하루에 한 번씩 마을 초입의 당산나무에 올랐다. 훤칠한 나무의 이파리 전체가 열렬하게 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풍경. 어린아이의 작은 몸을 품어주는 그 아늑함. 그것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과 연관된 매일의 의식이었음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마침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린 동생을 안고 손에는 이런저런 짐을 가득 든 채로 저 멀리 까맣고 작은 점으로 나타났을 때, 시인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 따위는 모른다는 듯, 신발이 벗겨지도록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그들을 안았다(「기다림에 대하여」).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지독한 책임감으로 아버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빈틈없이 해냈다. 단 한 번도 한눈 파는 일 없이. 그이의 삶을 떠올리면 마음에 어두운 풍랑이 휘몰아친다. 시인이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계속 읽고 쓰는 사람이 된 것은 아버지의 못다한 꿈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8일 산문). 시인의 엄마는 이미 젊은 나이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알아버린 사람이었다. 세상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모두 구해와 아픈 아버지를 보살피고, 불안과 슬픔으로 벌벌 떨고 있는 동생과 나를 돌본 엄마. 시인은 ‘생활력’이라는 말을 아버지뿐만 아니라 엄마에게서도 배웠다. 엄마의 ‘끈질긴 생활력’이 아니었다면 나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생활력」). 시인의 몸에는 여러 사람의 기억과 흔적들이 부서진 채로, 혹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형태를 달리한 채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흐린 하늘의 뒤섞임, 너는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서도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지, (…) 이제 그만 돌아갈까? 엄마의 희미한 목소리에도 너는 먹구름이 거꾸로 선 채로 회오리를 만드는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거느린 채 일어설 생각이 없지,”(들어가는 시) 그렇다면 일어나라고, 벗어나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안다고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에서 조금 놓여나면 삶을 얻겠지만 시는 잃을지도 모른다. 고통에 더욱 사로잡히면 시는 얻겠지만 삶은 끝내 무표정할 것이다. 알지만 반복되는 삶이 여기 있다(「똑똑, 당신은 지금 어디를 보고 있나요」).
그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는 게 좋아서
날마다 서툰 이야기를 발명했지.
잘 왔어,
여기까지 오느라 무엇보다 잘했어.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나는 늘 ‘남자’가 맞을까. 삼십 퍼센트 정도는 남자이다가, 또 어느 순간 삼십 퍼센트 정도는 여자이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무정형의 상태로 지내는 것은 아닐까. 그날 우리는 문득 무정형의 상태로 서로에게 이끌렸던 건 아니었을까. 역시 자신은 없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그리고 미래의 내가 모두 ‘남자’일 거라는 추측으로 난 비로소 안도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이니.”(「나의 첫번째 남자친구」) 그러므로 시인은 이미 알고 있는 자의 마음으로 슬픔을 눈앞에서 겪으며, 고통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시를 쓰며 다시 맞이하곤 했다(10일 산문). 어떤 경우, 시 쓰는 과정은 (의식적인, 혹은 명명백백한) 자기를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백일몽 혹은 무의식의 관여가 상당하며, 익히 알고 있는 나와는 다른 나를 불러들이는 것이 시쓰기의 출발이라 말해도 좋겠다(21일 산문). 다만 시라는 작은 마법은 그것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자각하고 있는 한에서 시간의 정지를 허용하며,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하나를 밀봉하여 영원히 간직하게 해준다. 행복을 행복이라고 깊이 감각하지 못했던 우리는 전면적으로 울고 웃다가 비로소 시쓰기의 행복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좀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또한 꿈꾸게 된다(「시를 쓸 때 솔직히 고통스럽지 않나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면접장을 나오면서 시인은 건물 일층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 변기는 쇠줄을 잡아당겨서 수조의 물을 내리는 옛날 구조였다. 줄을 잡아당겼을 때, 머리 위의 수조에서 지저분하게 물이 튀면서 머리와 양복 어깨 부분이 젖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시를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면대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조금만 더 해봐야겠는데, 어때?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게 하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큰 무언가를 포기했다거나 무언가 거창한 것을 이루겠다는 특별한 결심도 없이(「김혜순을 만났어」). 그렇게 알 수 없는 힘으로 버티면서, 도망가지 않고 오래 앉아, 시를 썼다. 끝까지 썼다.
시간이, 이렇게나, 느리게 흘러가기도 하는구나.
그때의 바다. 매일매일 달랐던 바다의 냄새와 풍경들. 코발트 블루에서 코랄 블루까지 층을 만들며 하늘과 바다가 시원하게 이어지고, 피어오르는 풍성한 하얀 구름, 눈이 부시게 끝없이 펼쳐진 세계. 몸은 젖었다가 말랐다가 반복했다. (…)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면 어느새 사방을 뛰어다니며 놀다 지친 아이들은 우리 품안에서 잠들어 있기 마련이었다. 노을이 지고 마침내 저녁별이 떠오를 때까지 아내와 나는 잠든 아이들을 토닥이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 별이 정말 많다.
그치. 맞네.
더이상 아무 말 없이 별들을 올려다보던 시간들.
지금도 여름, 하면 깊고 아늑한 행복감으로 떠올릴 수 있는 그때의 풍경들.
_7월 30일 산문 「여름, 제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