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한 시도
이 책은 기존의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이나 사회운동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뛰어넘어, 한국민주주의의 변화과정 자체를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정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는 모두 한국 민주주의의 일면(一面)일 뿐이라고 보고,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two track approach)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견지에서 볼 때, 근대 민주주의를 제도화된 정치(의회, 정당, 대표자 정치 등)로 파악하는 시각 자체가 서구 중심의 특수한 이론화를 전제로 한 것이 된다. 오히려 한국의 운동경험을 일반론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근대 이후 서구의 민주주의의 역사 조차도 한번도 정당민주주의나 제도화된 정치로 일체화된 적이 없다. 한국이 시민사회운동이나 운동정치의 역동성이 대단히 큰 사례라고 할 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사례이자 과도기적 사례가 아니라 그래서 빨리 서구적인 민주주의 모델(예컨대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로 회귀해야 과제를 안고 있는 사례가 아니라, 서구의 경험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적절히 드러내지 못했던 어떤 일반적 특징을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례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투트랙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 이후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정치로서의 사회적 정치와 일체화된 적이 없고, 오히려 제도화된 정치와 정당정치 ‘외부’의 사회적 정치, 그 일부로서의 운동정치와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최장집과 손호철을 계승하면서 뛰어넘어
저자는 한국 정치사회학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 하에,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선도적으로 전개하여 온 최장집 교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투트랙 민주주의론’을 개진하고 있다. 저자는 일종의 ’한국 정치사회학‘의 누적적 발전’이라는 점에서,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그의 일련의 저작들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뛰어넘는 ‘한국적’ 민주주의론을 정립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좌파 반신자유주의론을 전개하여 온 손호철 교수의 논의 속에서는 정치의 공간이 없다는 취지 하에서, ‘급진적 정치주의’ 혹은 진보적 정치주의의 입장에 서고 있다. 이렇듯 최장집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손호철에 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저자 나름의 투트랙민주주의 프레임을 만들고 그에 따라 한국현대 민주주의의 부침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나 서구 이론의 적용대상으로 한국사례를 생각하는 한, 한국사회과학의 전통은 존재할 수 없고, 우리끼리 인용하는 관행이 정착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과학의 토착화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경험과 다른 한국 및 아시아적 경험을 ‘새로운 준거’로 하여 새로운 ‘한국적 이론화’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투쟁을 단지 ‘아주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서구의 민주주의 경험이 드러내주지 못하는 어떤 일반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사례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한국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분석 속에서, 민주화의 동학과 세계화의 동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하는 것에 주목했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핵심적인 특징을 저자는 ‘민주화의 동학’이 작동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이른바 반독재 민주정부의 집권기인 97년 체제는 ‘세계화의 동학’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작용하게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의 동학과 세계화의 동학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가하는 것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반독재세력은 독재와의 저항에서는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한 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반독재 세력은 역설적으로 집권세력이 되면서 세계화의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하고 패배해갔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사의 시기구분
이를 위해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50년대의 극우반공분단체제, 61년 이후 87년까지의 개발독재체제, 87년 이후의 민주화체제, 2008년 이후의 포스트민주화체제로 나누어, 통사(通史)적으로 한국현대사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저자 스스로가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와 전개과정을 일관되고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적·개념적 논의를 하는 1장과 2장이 있다. 1장에서 나는 근대민주주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한국민주주의를 여러 시각들을 포함하여, 이 책의 분석적 프레임을 제출하게 된다. 그런 이후에 2장에서는 운동 혹은 운동정치의 위상을 분명히 하기 위한 논의를 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 3장에서부터 4장까지는 50년대와 60·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다루게 된다. 3장에서는 50년대 극우반공분단체제와 60·70년대 개발독재 하에서의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다루게 된다. 그런 후 4장에서, 50년대 비합법정치, 60년대의 재야, 광주꼬뮨 등을 통하여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경계가 각 시기에 따라 상이하게 수정되어지고 각축되는 과정을 다루게 된다.
5장에서 10장까지가 이 책의 메인 파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화 체제를 다룬다. 1987년부터 2007년까지의 시기이다. 2008년 이후 2012년까지의 이명박 정부 시기를 저자는 포스트민주화체제로 다루고 있다. 민주화 체제 분석에서는, 민주화체제 20년의 시기를 3개의 경합국면으로 나누게 된다. 즉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부터 90년 3당합당의 시기, 3당합당 이후 97년 까지의 시기, 다음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라고 하는 반독재 민주정부 시기에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이 어떻게 상이하게 전개되는지를 분석하게 된다. 3당합당이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역동적 각축과정의 중요한 전기로 본 점이 새롭다.
1권에서는 제1경합국면과 제2경합국면까지를 다루고, 제3경합국면의 전반부인 김대중정부까지가 다루어진다. 2권에서는 제3경합국면의 후반부인 노무현정부 시기를 다룬다.
5장, 6장, 7장, 8장에서는 제1경합국면에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을 다루게 된다. 이어서 9장에서는 민주화체제 하에서 동반되는 변화를 수동혁명적 민주화와 포스트개발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고 규정하고 이것이 운동정치에 어떤 변화를 동반하는가를 다룬다. 10장에서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을 제도정치를 감시하는 운동과 제도정치를 대체하고자 하는 ‘대체정치운동’으로 나누어 분석하게 된다.
11장에서는 포스트민주화체제 하에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게 된다. 이 장에서는 민주화 시기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 포스트민주화체제 하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하고 있다.
학자 조희연과 ‘교육감 조희연’의 거리
이 책의 저자인 조희연교수는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성공회대 교수로서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어 서울교육행정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다. 저자는 “사실 교육감 선거에 나서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그 망설임 속에는 이 책을 더욱 완성된 내용으로 내놓고자 하는 의욕, 나아가 내가 구상하고 있는 일련의 저작들을 완성하고 싶은 의욕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학자 조희연’을 마감하고 ‘교육행정가 조희연’으로 살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이 책을 더욱 완성도 높은 책으로 만드는 작업 자체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현 상태로 책을 냄으로써 이것을 사회과학계의 자산으로 편입시키고 내가 의도했던 작업은 이제 동료들과 후학들에게 이월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 상태로 책을 낸다. 동료와 후학들이 나를 비판하면서, 학문을 전진시키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을 현재의 교육감의 입장이나 정책방향, 이념적 지향과 동일시하거나 연관시키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제2인생’을 사는 ‘교육행정가 조희연’과 제1인생의 ‘학자 조희연’ 간에 연속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이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