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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경 상세페이지

백유경

  • 관심 0
삼호재 출판
소장
종이책 정가
20,000원
전자책 정가
20,000원
판매가
20,000원
출간 정보
  • 2026.01.20 전자책 출간
  • 2026.01.10 종이책 출간
듣기 기능
TTS(듣기) 지원
파일 정보
  • PDF
  • 444 쪽
  • 41.4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94677789
UCI
-
백유경

작품 소개

원통암(圓通庵)은 정말 고운 암자다.
내 고향 충북 단양(丹陽) 대강면(大岡面) 황정리(黃庭里) 황정산(黃庭山) 8부 능선 바위틈에 겨우 터를 잡고 동향(東向)으로 초요(峭岆)하게 앉아 있다.
곁에는 바로 第二 단양팔경(丹陽八景)의 하나인 칠성암(七星巖)이 독암(獨巖)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데, 실로 이는 부처님 손을 편 형상으로 다섯 손가락이 그대로 펴져 있는 뚜렷한 모습이다.
그곳 황정리는 도교(道敎)의 흔적을 가지고 있어, 지명도 ‘黃庭’은 도교 경전 <황정경(黃庭經)>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이 <황정경>은 바로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가 거위를 좋아하여 산음(山陰) 도사(羽客)에게 그 자리에서 써주고 거위를 받아 조롱 채로 얼른 들고 돌아선 고사를 남긴 도교의 경이다.
이에 이백(李白)은 <왕우군(王右軍)>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읊었던 그 경(經)이다.

右軍本淸眞, 瀟洒在風塵.
山陰遇羽客, 要此好鵝賓.
掃素寫道經, 筆精妙入神.
書罷籠鵝去, 何曾別主人?

아마 이곳 황정리는 그 <황정경>을 신봉하던 이들이 단약(丹藥)을 굽고 도를 닦던 그런 곳이 아닌가 한다.
주위는 용두산, 덕절산, 올산, 수리봉, 도락산, 묘적봉, 도솔봉, 죽령을 넘어 연화봉 국망봉,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의 험준한 백두대간 중심선상에 둘러싸여 있고, 그 골짜기마다, 미노천, 올산천, 죽령천, 가산천, 단양천이 이어져 선유구곡(仙遊九曲)이며 사인암(舍人巖)이며, 삼선구곡(三仙九曲) 등이 신선 세계를 이루어 지금도 지명에는 연단굴(鍊丹窟)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도가(道家)의 깊은 기도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이곳에 불교가 들어서 이미 통일신라 때 대사찰 대원사(大元寺)가 있어, 그앞 계곡을 대원사골이라 불리고 있는 곳이며, 그 대원사 뒤에 절벽을 반등(攀登)하다시피 40분을 올라야 이 원통암이 있다.
어린 시절 그 절(암자)에 여름 방학 공부하러 곡식을 짊어지고 다녀온 읍내 선배가 ‘함박꽃이 참 대단하더라’는 말에, 함박꽃이 어떤 꽃인지 궁금했고,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어 길도 없는 황정리에서 올산천 따라 한없이 올라가, ‘참으로 먼 길이구나’하면서, 다시 바윗길 좁은 계류(溪流)를 기어 오를 때는 마침 깊은 가을이어서 온통 단풍나무에 파란 하늘이 너무 적료(寂寥)하였다.
드디어 도착해보니 그야말로 초라한 초가집 달랑 한 채에, ‘이걸 암자라 하나’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때는 화재에, 또 수해에 휩쓸려 흔적도 없었던 것을 지금은 10여 년 전 포공 각문(覺文) 스님이 헬기를 동원하여 자재를 올려, 아주 예쁘고 반듯한 대웅전을 세우고, 부속 건물도 바위틈마다 그 공간을 활용하여 모습을 갖추고 있어 너무나 단아하고 정갈하다.
편액을 붙이기에 걸맞을까 하는 옛 툇마루 위 지붕 밑에 <심검당(尋劒堂)>이라 한 것이 참으로 정겹다.
이 원통암은 고려말 나옹화상(懶翁和尙) 혜근(惠勤, 1320~1376)이 수행하여 득도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암자로부터 가파른 언덕 넘어 큰 바위 아래 ‘나옹굴(懶翁窟)’이 있다.
그 굴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이며 겨우 한 사람 앉을 공간인데, 거기에 앉아 시선을 직선으로 하여 멀리 서전(舒展)하면, 맞은편 올산(兀山) 바위산 절벽이 손에 잡힐 듯 하얗게 다가오고, 그 산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며 그 산 위의 떠가는 구름과 저 아래 대협곡 같은 깊은 계곡 속의 계류, 그리고 대원사 기왓장은 ‘여기가 불국’이라 탄성을 지를 만하다.
그러니 그의 유명한 <청산가>(토굴가)가 이런 곳에서 저절로 터지지 않았겠는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青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
미움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聊無愛而惜兮
바람처럼 물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如水如風而終我

이 시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나도 그 자리에 앉았더니, 나옹화상이 곁에서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날 지켜보는 것만 같다.
그 곁에는 ‘도솔암’이라 방을 지어 놓았는데, 한 사람 겨우 들어가 앉을 좁디좁은 공간이지만 그래도 아궁이를 마련하여 불을 지피면 충분한 온기로 밤을 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다리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면서 주위는 가을철 송이와 능이가 지천이어서, 얼핏 보고도 그저 능이 몇 개를 따러 절벽 바위를 타고 내려갔다 와야했다.
절로 되돌아 와 좁은 방에 군불을 때고, 등을 지지며 자고 이튿날 일찍 새소리에 깨었더니, 여명이 사라지면서 맞은 편 올산 정상으로 해가 솟아 천지가 찬란하다.
참으로 신기하다. 어둠이 이렇게 빛을 받아 고스란히 품어 안더니 자신은 살며서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것이.
보살님은 아침을 하는지 알 수도 없이 조용하고, 스님은 납의(衲衣)를 걸치고 아침 염불에 들어간다.
안지추(顏之推)는 “인생난득(人生難得)”(삼라만상 중에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가장 어렵다)이라 하였는데, 나는 어쩌면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나, 그것도 삶의 가치를 찾으며, 내 직업과 하는 일에 만족하며, 나아가 이 아침 이런 곳에 이르러 와서 바로 이 자리에 있는가?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어라.
짐 무거운 자에게 길은 멀어라.
진리의 바른길을 모르는 자에게,
생사의 밤길은 멀고 길어라.”(≪法句經≫)

일찍이 이 한 구절에 붙들려 절을 찾고 고승을 뵙고, 말씀을 듣고, 때로는 불서(佛書)에 눈길을 주며 살면서도, 탐진치(貪瞋癡)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안쓰럽다.
내려오는 길에 주지 스님은 일흔이 넘어가는 내 나이를 두고 “선생님은 속세에 십 년, 이 산 중에 육십 년 사신 겁니다”라고 덕담을 하며 합장을 한다.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 고승 혜원(慧遠)은 득도하기 전까지는 그 절 앞 아주 작은 냇물 호계(虎溪)를 절대 건너지 않겠노라 다짐하였지만, 마침 도연명(陶淵明)과 도인 육수정(陸修靜)이 찾아와 정담을 나누고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에 빠져 함께 배웅을 하다가 그만 그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그때 숲속에서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화들짝 웃음을 터뜨렸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사실에 맞지 않는 꾸며낸 이야기지만, 이 ‘虎溪三笑’야 말로 선속(仙俗)이 따로 없고, 불유도속(佛·儒·道·俗)이 한 덩어리임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離世覓菩提, 恰如求兔角”(≪六祖壇經≫)이라 했던 것일까?
더구나 그 호계를 가 보았더니 전혀 현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작고 시멘트 바닥으로 덮어, 절 앞 넓은 마당 가였으며 몇 걸음도 되지 않는 다리였다.
내가 신비감을 갖는 그 많은 것들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였으니, 나는 전혀 경외심 없는 미물이기에 그러했으리라.
나는 실제 불교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아주 신심이 깊어 보살행이나 보리심을 발휘하거나 실행해본 적도 없으며, 초발심(初發心)이나 환희심(歡喜心)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평정심(平靜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저 스님이 좋아 몇몇 스님을 만나 자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었고, 절이 좋아 편안한 마음으로 고요한 초리(招提)를 한 바퀴 돌며 주위의 산과 계곡의 청정한 물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으며, 더러는 주련(柱聯)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짐짓 고개를 들어 풍경소리를 내는 구리판 붕어가 왜 매달려 있는지 궁금해하며, 또는 혹 비석이나 탑을 보며 시간을 삭이는 이끼나 풍화작용으로 검어져 가는 모습에 겁(劫)이라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되돌아 나오는 길옆의 잘 가꾸어진 잔디밭의 부도(浮屠)들을 스쳐보며, 그 고승들의 지난날 현생(現生)에서의 삶과, 당시 일상 속에 댓돌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어야 했던 흰 고무신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고향에 갈 때마다 새벽 어둠이 걷히기 전 원통암으로 향하던 나의 석장(錫杖)이 돌에 부딪혀 달각대는 소리에 나는 늘 행복하고 고마웠다.
새봄이면 새봄대로 움이 트고 볕이 가득하고, 여름이면 여름대로 쏟아지던 비가 운무(雲霧)가 되어 그 속에 갇히고, 가을이면 가을대로 풍엽(楓葉)에 실려오던 가을 냄새와 천뢰(天籟)의 무현지음(無絃之音)이며, 겨울이면 겨울대로 눈 속 오세(五歲) 동자가 되어 설중송탄(雪中送炭)의 안온함에 입김이 곱던, 아무도 밟지 않던 눈길 생각이 꿈속처럼 아련하다.
이제 이 책을 마치면 어서 유와려(酉蝸廬)로 달려가 짐을 풀고 그곳, 그 암자를 향해 새벽 등산화끈을 잡아매리라.
이이 책을 작업하는 데 꿈을 준 함양 고반재(考槃齋) 종림(宗林)대선사와 이미 열반에 든 원경(圓鏡)대종사, 그리고 늘 용기를 주신 보광사 선우스님, 따뜻한 고향의 각문스님, 사인암(舍人巖) 곁 청련암(靑蓮庵)의 각승(覺乘)스님, 승학(乘學)과 서예에도 능한 지장사(地藏寺) 고광(古光)스님, 및 방곡 벌재 넘어 문경 포영(泡影)스님, 대구 팔공산 원학(圓學)스님, 예인(藝人)의 재능을 한껏 갖춘 만우(卍雨)스님, 그 밖에 연(緣)이 되어 만났던 많은 스님들, 특히 매주 오르는 검단산 통일정사 선지(先智)스님, 언해불전연구소 오윤희 소장께도 감사를 드린다.

乙巳年(2025) 立冬(11월 7일)에 茁浦 林東錫이 負郭齋에서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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