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여성들 삶의 상징공간
부엌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한국 여성들의 삶을 변화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 책은 전통시대 부엌부터 초현대식 아파트의 부엌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의 부엌의 변천에 주목하였다. 전북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인 필자 함한희는 실제 여성들을 면담과 부엌 구조도 등을 토대로 하여, 예전 부엌이 가진 특징들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이런 연구를 통해 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한국의 전통가옥에서의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고 저장하기도 하며, 난방을 하는 공간을 말한다. 명칭도 다양했다. 궁중에서는 수라간, 양반들은 반빗간, 경상도나 전라도에서는 정짓간 또는 정지, 충청도에서는 부세라고 부른다.
한국 여성들의 살림살이는 집안 전체에서 이루어졌다.
여성들이 살림살이를 하는 공간은 부엌이 중심이다. 그러나 유독 한국 여성들의 살림살이는 집안 전체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집안 내 각 공간의 기능은 통합적이고, 다기능적이서 여성들이 살림살이를 하기 위해서는 집안 전체, 구석 구석을 총괄하고 있어야 했다. 과거 여성들의 집안일은 생계를 위한 모든 활동을 포함하였다. 농사를 짓는 일, 아이 키우는 일, 식사를 준비하는 일, 그리고 바느질을 하거나 길쌈을 매는 일등 모두가 집안일에 포함된다.
굴뚝을 높이고, 천장을 높여라
19세기 말부터 등장한 서양식 주택은 부엌의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20~1930년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주택 개조론이 나온다. 한글학자 최현배도 “부엌의 위치를 잘 선정하여 위생상, 기능상 지장이 없고, 아궁이를 개량하고 굴뚝을 높이 하고, 집안에 우물을 파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운동에도 불구하고, 난방과 취사연료가 변하지 않는 한 부엌이 쉽게 입식으로 바뀌고 실내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개량한옥이나 영단주택에서는 부엌이 점차 변화하기는 했다. 도시 서민 주택의 부엌은 대체로 좁고 어두웠우며, 환기도 안되었다. 그래서, 가공식품도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되었다.
연탄이 양은 그릇을 쓰게 만들었다.
연탄이 부엌에서 사용되면서,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아궁이 공사가 집집마다 이루어졌다. 주부들은 연탄가스 만성 중독증 환자가 많았다. 그래서 상습적인 두통에 좋은 진통제가 상비약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연탄가스로 인해 놋그릇은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점차 양은이나 스테인레스 그릇을 쓰게 되었다.
밥을 먹지 않는 날(無米日)- 1960년대
1960년대 입식부엌이 생기면서, 찬장이 생기는 것도 유행이었다. 찬장이 들어오면서, 부엌은 더욱 위생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때 밀가루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밥을 먹지 않는 ‘무미일(無米日)을 정하여, 분식을 장려하였다. 값이 싼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정부에서는 밀가루 음식이 쌀보다 영양가가 높다는 영양학 관련 정보를 널리 선전하였다.
냉장고는 여름에만 킨다-1970년대
지금은 냉장고 없는 부엌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냉장고가 한국 가정의 필수품이 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처음 부엌에 들어온 냉장고는 여름에 김치를 보관하는 저장고로만 쓰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주부들은 비싼 전기요금 때문에 여름이 지나면 냉장고를 꺼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국인의 식생활 습관상, 매일매일 장을 봐서 신선한 음식을 먹는데 익숙했다. 특히 도시의 주부들의 경우는 근거리에 시장과 가게가 있었고, 농촌의 주부들은 텃밭에서 각종 야채를 키우기에, 냉장고가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100년을 달려온 부엌
한국의 부엌은 기능과 구조면에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이제 부엌은 가족들의 휴식공간까지 겸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문화와 서구적인 문화가 만난 곳이면서, 사회적, 경제적 여건과 관습적 사고와 미래지향적 가치관 등의 조정이 이루어진 곳도 부엌이다. 부엌의 변화는 음식과 경제, 과학 기술의 변화 그 모든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