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서양연극의 큰 흐름 속에서 연출가들을 비롯한 중요한 연극인들의 연극관과 작업을 소개하는 책. 공연의 예술적 측면에서 총책임을 지는 연출가와 그 연출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사조와 극작가, 무대미술가 등을 쉽게 소개하여 일반 독자들이 현대 연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20세기는 연출가의 연극 시대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서양연극사를 돌아보면 그 양상이 너무도 다양해, 이를 하나의 일정한 틀 속에 넣어 기술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오히려 그런 다양함이 하나의 사조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20세기의 연극은 ‘연출가의 연극’이며, 관객 또한 연극공연의 여러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연출에 초점을 맞춰 관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적인 능력을 인정받은 연출가의 작품이 늘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의 자유극장운동과 그 후의 혁명적인 시도들부터, 라인하르트와 코포 등 연출가들이 전면 등장한 시기, 아르토의 잔혹극, 브레히트의 서사극, 베케트 등의 부조리극, 1960년대 뉴욕에서 벌어진 에너지 가득한 실험들, 보편적 연극언어과 새로운 연극언어의 대립, 현재 주목받은 므누슈킨과 윌슨 같은 연출가까지 순차적으로 20세기 서양연극을 쉽게 개관하고 있다.
이오네스코, 베케트 등의 부조리극
내용도 형식도 부조리한 부조리극은 어떤 명제를 내세우지도, 어떤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며 토론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개개 인간이 처한 근본상황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결국 부조리극은 상황의 연극이며 언어 역시 논리의 전개나 토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암호가 된다. 무엇인가를 설명하거나 주장하면서 발설하는 것과 실재 사이의 괴리로 인해 언어는 실재를 전달하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계와 인간존재에 대한 개인적 느낌과 섬뜩한 악몽같은 비전이 출발점이므로 부조리극 작가들은 동아리를 형성한 적이 없다. 그들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파리의 한 구석에서 머물며 개인적 체험과 느낌을 각자 극화해냈을 뿐이다.
부조리극의 첫 무대는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였다. 1950년 파리의 테아트르 드 녹탕뷜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일견 황당하고 혼란스런 언어유희(말놀이)처럼 보였고, 당시로서는 재래의 연극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무리 없이 수용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십 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부조리극 작품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즉, 새로운 연극언어, 새로운 개념들, 새로운 관점과 형식으로 연극의 범주를 넓힌 점이 인정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에 가장 많이 공연된 서양작품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고, 가장 많이 무대화된 서양작가들 속에 베케트와 핀터, 이오네스코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부조리극이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