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한 독일인 옥낙안이 보고 겪은
1909~1929년의 조선인의 삶과 내면
옥낙안(玉樂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독일 베네딕트회 소속의 신부 안드레아스 에카르트는 대한민국의 해외 교류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최초의 한국 미술 통사를 썼으며, 해외 한국학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선구적 인물이기도 한 에카르트는 한국에 서구의 학문을 도입한 교육자이자 가톨릭을 선교한 사제였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한 학자였으며,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조선과의 운명적 만남과 평생에 걸친 사랑
어린 시절에 우연히 접한 『한국(Korea)』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이국의 나라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는 에카르트는 타고난 학자였다. 그가 베네딕트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 서품을 받은 후 해외 선교사의 자격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찾은 것은 1909년, 대한제국이 그 종말을 맞이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는 고등교육을 통해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으나 조선총독부의 기만적인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서 그가 교장으로 취임한 학교는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했다. 이후 에카르트는 경성제대 등에서 여러 과목을 가르치며 서구의 학문을 전하려 노력했지만 이 역시 1920년대 문화 정책에 의해서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는 1920년대에 원주 지역에서 사목에 전념하다 1929년 독일로 귀국하였고, 사제직을 벗어난 후 뮌헨 대학의 첫 한국학자로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학문적인 노력에 힘썼다.
고전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와 음악,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그는 한국어와 한국 미술, 음악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대중적인 저서와 함께 한국에 관한 적지 않은 저술을 통해 독일에서 한국학의 뿌리를 내렸다. 그는 무엇보다 일생에 걸친 학문 활동을 통해 중국이나 일본과는 구별되는 한국만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려 애썼다. 자녀가 없던 에카르트는 학문적 유산과 재산을 제자이인 안드레아스 후베 교수에게 물려주어 한국 사랑의 맥을 잇도록 할 정도로 제2의 조국인 한국에 대한 애정을 평생 깊이 간직하였다.
조선에 바친 애정과 추억,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의 기록
그런데 이 책 『조선, 지극히 아름다운 나라(원제: 내가 경험한 한국)』는, 이러한 약력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걱정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서문을 쓰며 집필을 마친 이 짧은 소책자는, 그의 교육활동이나 선교활동 등 공식적인 활동을 전혀 담고 있지 않은, 한 이방인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찾아와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독특한 여행기이자 소개서이다. 서문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사랑했던 나라의 기억을 극히 주관적인 시점에서 기록하고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감상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에카르트는 철학과 종교학, 예술사와 각종 언어에 능숙한, 탄탄한 자질을 갖춘 학자로서 자신이 보고 겪은 일에 기반해서 조선인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내면 풍경에 대해 면밀한 관찰과 깊은 통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각종 예식들과 종교적 행사들이 조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일상적인 행동에서 드러나는 윤리 의식은 어떤 것인지, 신앙인이자 학자로서 에카르트는 단순한 구경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난 문화의 심층을 읽어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연과 친화적이며 소박하고 예의바른, 그러나 현세적이고 정직한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한 진솔한 애정이 놓여 있다.
옥낙안과 에카르트 : 조선의 일부가 되었던 연구자
에카르트는 교향곡을 쓸 정도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는데, 그의 대표적인 <오라이언 심포니>는 동양과 서양의 신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이 두 세계의 중재자가 되기를 바랐으며, 조선에 대한 그의 태도도 내부인이자 외부인의 두 가지 시선의 긴장을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냉철한 학자의 시선과 평범한 이웃의 태도가 섞여 있는 부분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한국어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였는지, 배우는 과정에서 있었던 고충을 늘어놓으면서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초청받은 집을 찾아가 “옥낙안이올시다.”라며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면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자연스러운 담배를 피워 물며 산천이나 노을을 감상하는 ‘구경’의 풍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는 한국 여성들의 일상이 얼마나 근면한 노동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를 기록하는 관찰자이기도 하지만, 어느새 중국인 강도의 위계를 재치로 헤쳐나오는가 하면 마을 사람을 해친 호랑이를 잡으러 뛰어다니며 삶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한 명의 한국인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에카르트는 그가 만났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일상을 영유하는지, 그들의 심층을 구성하고 있는 의식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이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한 나라를 소개하려고 이 글을 썼다. 정치적 격동기를 겪었으면서도 정치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으며, 선교사이자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목 활동이나 교육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쓰고 있지 않은 이 늦은 여행기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매우 독특하고 보기 드문 글이다. 비록 저자는 자신의 조국인 독일의 독자들을 위해 조선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그의 이러한 의도와 태도 덕분에 우리 독자들은 60년의 시차를 두고 약 80~100년 전 조선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 현재처럼 눈앞에 그려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