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장애의 시학, 그리고 정치에 대한 미묘한 논의
-장애는 ‘용감한 투쟁’도 ‘역경에 맞서는 용기’도 아닌, 독창적인 삶의 방식이다
깊은 통찰력으로 연극과 장애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연극 속 장애를 탐구하는 다양한 개념들을 익힐 수 있다.
더불어 다양하게 소개되는 공연 사례들은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연극 그리고Theatre &〉 시리즈는 상기한 ‘인간사의 축도’로서 연극에 대한 다양한 사유와 담론을 학술적으로, 그러나 친근한 어투로 풀어낸다. 시리즈의 필진이 세계의 저명한 연극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저자들의 명성에 걸맞은 본 시리즈의 학술적 가치와 무게감을 방증한다.
_「한국현대영미드라마학회 서문」에서
지난 50년 동안 연극과 퍼포먼스는 젠더, 경제, 전쟁, 언어, 미술, 문화, 자아감을 재고하는 중요한 은유와 실천으로 활용되었다. 〈연극 그리고〉는 연극과 퍼포먼스의 끊임없는 학제 간 에너지를 포착하려는, 짧은 길이의 책들로 이뤄진 긴 시리즈다. 각 책은 연극이 세상을 어떻게 조명하는지, 세상이 연극을 어떻게 조명하는지 질문하며, 연극과 더 넓은 세상이 보여주는 특정 측면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_「Theatre and 시리즈 원서 편집자 서문」에서
“세상이 연극을 비추듯, 연극은 세상을 반영한다.
여기 한 번에 한 공연씩 지렛대를 놓고, 벽을 허물고,
변화로 우리를 열 수 있는 곳이 있다.”
보행 장애가 있는 저자 페트라 쿠퍼스는 ‘극장’을 방문할 때 자신이 어떤 일을 겪는지 소개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휠체어 좌석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자신은 그나마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쉽게 옮겨 앉을 수 있어서 일반 좌석을 구했지만, 휠체어를 근처에 두는 게 불법적이지 않은지 따지는 관객을 만나는 등 소란이 뒤따른다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쿠퍼스는 ‘극장’의 연극 무대, 공연장 등에 물리적으로 ‘접근’하는 문제부터, 지적 장애인이나 자폐성 장애인이 극을 관람하며 일반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여도 비난받지 않는 관극 환경 제공 문제, 다양한 장애 유형에 따른 차이를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문제, 여러 종류의 공연에 장애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배우로 캐스팅되거나 극 제작에 참여하는 문제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도록 독자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극장에 가는 방법_관객으로서, 배우로서
저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등장하는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소개하면서, 이 연극의 원작이 된 소설이나 수상 이력에 빛나는 연극 대본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재현되는 과정에 장애인의 직접적 참여는 없었으며, 또한 관람객 중에 자폐적 표현을 드러내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극장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릴렉스’ 공연이 따로 있어서 관객들 사이에서 활동적인 행동을 보여도 퇴장당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으나 이 역시 장애에 대한 완벽한 대처는 아니며,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표현하는 공연에 직접 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사회적으로 더 광범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체적으로 공연에 등장하는 신체 장애는 한 개인이 나쁜 태도를 극복함으로써 ‘고장brokenness’으로 여겨지는 장애에 적응하는 극복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재현 속 캐릭터는 대부분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로,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 분장을 하고 연기한다. 다행히 이제는 이러한 전통적 극복 서사 틀을 따르지 않는 극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연극 〈무게Weights〉는 주인공이 시력을 잃게 된 사건 전후의 시간을 넘나들며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절의 일화를 비연대기적 형식으로 나열함으로써 인물의 서사를 파편화해 보여주고, 비시각 장애 배우가 시각 장애인을 연기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연극계의 변화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크리핑 업cripping up(장애인인 듯 연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때가 언제쯤 올까 독자에게 묻는다.
저자 쿠퍼스는 경험으로서의 장애, 사적 존재와 대중 앞에 선 존재가 만나는 장소, 서사로서의 장애에 대해 설명하면서, 장애인 연기자로서 극장에 가는 것, 억압과 혐오를 경험한 같은 시대 사람들 앞에 장애인 연기자로서 무대에 올라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장애인들은 여성, 빈민, 퀴어, 비백인 등 전통적인 극장 밖으로 소외된 타자의 일부로서, 때로는 필요에 의해 연극을 우리의 집으로 삼는다. 때로는 기쁨과 재미를 위해 연극 무대를 시민 교육의 장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보통 연극적 노동이라는 환상의 공간 밖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더 넓은 세상을 우리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
장애 연극 역사의 흐름과 변화_장애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탐구하는 다양한 길
저자는 장애 공연 비평이 시작된 이래로, 자신을 비롯한 이 분야 많은 작가가 대체로 배제에 대해 반발하며 노골적으로 정치적 미학의 견해를 밝혀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다고 소개한다.
커스티 존스턴(Kirsty Johnston)은 21세기 장애 공연 붐을 통해 비평가가 수용하게 된 ‘기본 원칙을 뛰어넘어 장애인도 예술적일 수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존스턴은 헬렌 켈러를 다룬 2009년 밴쿠버 플레이하우스의 연극 〈미라클 워커The Miracle Worker〉에 장애인 배우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장애인 배우가 기회를 놓친 것으로만 보지 않고, 캐나다의 주류 미디어와 활동가 미디어가 이런 캐스팅 선택에 관심이 부족했다고 분석한다. 또한 인프라의 문제가 캐스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스테이지 레프트(Stage Left)의 작품 〈안락사 또는 살인: 트레이시 라티머 이야기〉는 아버지에 의해 살해된 14세 소녀 트레이시 라티머 사건과 그에 따른 사법 절차를 다루는데, 이 공연은 다큐드라마 기법과 혁신적인 훈련법을 사용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가 협력하여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장애인 배우들의 자신감 저하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적 기술 훈련 기간’을 마련하고 집중적으로 배우 교육을 시행한다. [……] 배우들의 스트레스 관리 기술을 지원하고, 리허설에 오가는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여 배우들이 더 많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제작 과정에서 문해력이 부족한 배우들은 그림과 기호로 구성된 코드 시스템을 이용해 연기 지도를 받는다. 한 배우에게는 녹음한 대본을 통해 대사를 익힐 수 있도록 CD를 제공했고, 다른 배우에게는 대사를 잊어버릴 염려를 덜 수 있도록 법정 속기사 역할을 맡기고 대사가 담긴 책을 소품으로 준비했다.
리얼휠스의 작품 〈스카이다이브〉에서는 지체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신체적으로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무대 장치를 이용했는데, 지렛대에 긴 기둥을 달아 배우들을 묶어서 이동성을 확대하고, 옆돌기, 제자리 비행, 기타 반중력 묘기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저자 쿠퍼스는 작품 줄거리와 연극의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 방식을 언급하는 이런 연극사 접근법이 장애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탐구하는 다양한 길을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프릭 쇼(freak show)
저자는 또한 장애 공연 역사에 대한 비평이 활발한 프릭 쇼 현장을 소개한다.
수전 로리 파크스의 연극 〈비너스〉는 호텐토트 비너스라고 불리던 세라 바트먼에게 초점을 맞춘다. 세라 바트먼은 살아 있을 때에도 파리와 런던의 박물관에 전시품처럼 전시되었으며, 죽은 후에도 보존 처리한 생식기와 엉덩이가 전시되었다. 버나드 포머런스의 〈엘리펀트 맨〉에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 실존한 코끼리 인간 조지프 메릭이 등장한다. 두 연극 모두 캐스팅 선택에 대해 살펴보고, 복잡한 권력 관계에 얽힌 사회적 구성물이자 경험으로서의 장애, 인종, 젠더에 대해 토론할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작은 키 때문에 톰 엄지 장군으로 불리던 찰스 셔우드 스트래턴은 무대에서 신분과 스타이미지, 에로티시즘과 성적 매력, 높은 지능, 요란한 신체적 과시 등을 보여주었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높은 얻었지만, 미국 연극사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 이론가들은 프릭 쇼 연기자의 자질 부족 때문이 아니라 미국 예술의 정전에 들어가야 할 것과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을 나누는 왜곡, 저급문화 대 고급문화의 지위에 대한 왜곡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애인 공연 제작자_비장애인 리더들에게
저자는 신체적·감각적·경제적 장벽이나 장애인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장벽으로 인해 많은 장애인은 주류 속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학생, 노숙자, 노동자로 구성된 혼성 앙상블과 함께 독일어로 번역해 공연한 〈프랑켄슈타인〉,
의료진 앞에서 표본처럼 전시되고 나서 살인자가 된 장애 군인의 이야기를 다룬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첵Woyzeck』 각색 공연 등과 연구를 기초로 하여, 저자는 영국, 오스트리아, 캐나다, 독일, 미국을 비롯하여 기타 지역의 장애 공연에 대해 분석하는 책들을 저술했다. 또한 칸도코 무용단, 배우 맷 프레이저, 프랑스 극단 로소 무슈 등 국제 분야의 많은 연기자와 단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거나 의료 환경에서 만들어진 예술에 대해 논의하고, 인종, 젠더, 계급화한 장애 차이가 교차하는 세계에서 정체성 정치와 연합에 의문을 제기하는 저서들을 집필했다고 밝히면서, 저자는 많은 극장과 연극 워크숍, 무용 테크닉 수업 등이 장애인 사용자에게는 닫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비장애인 리더들에게 다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장애 분야를 위한 기금을 받고 있다면 비장애 중심인 당신의 다른 작품 역시 접근이 불가한 공간에서 공연하는 것을 거절하면 어떨까? 리허설 장소, 스튜디오, 극장에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더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누가 그 공간에 있고, 대화에 (구두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참여할 수 있는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형성하는 데 관여하고 있는가?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며, 의료 시스템을 통해 ‘고쳐야 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며, 의료 시스템을 통해 ‘고쳐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장애에 대해서는 수술법이 필요한 것도, 새로운 삶을 위한 치료법을 찾는 것도 답이 아니며, ‘장애인’을 대하는, ‘장애인’인 존재하는 방식,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무대를 통하여 적절한 학습이라고 생각하던 것의 인식을 확대하고, 다른 지식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 편협한 행동 양식을 돌아보며, 세상에서 더 많은 이가 ‘인간’과 ‘가치’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함께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대해 생각하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장애 안의 부정적 개념은 사라지고 결국에는 차이만 남게 할 수 있다.
저자는 ‘극장’은 예술적이고 환상적인 연극을 아우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다가가며, ‘우리’가 얼마나 더 포용적일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넓은 텐트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러한 극장에서 장애인은 관객으로서, 공연자로서 연극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극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애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깊은 통찰력으로 연극과 장애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연극 속 장애를 탐구하는 다양한 개념들을 익힐 수 있으며, 다양하게 소개되는 공연 사례들을 접하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