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이라는 틀을 통해 보는 연극과 공연
상업 연극은 게이와 레즈비언 연극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20세기부터 현재까지
무대 위에서 재현되어왔고 또 연극에 영향을 끼쳐왔는지,
좀더 풍성하고 상세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연극 그리고Theatre &〉 시리즈는 상기한 ‘인간사의 축도’ 로서 연극에 대한 다양한 사유와 담론을 학술적으로, 그러나 친근한 어투로 풀어낸다. 시리즈의 필진이 세계의 저명한 연극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저자들의 명성에 걸맞은 본 시리즈의 학술적 가치와 무게감을 방증한다.
_「한국현대영미드라마학회 서문」에서
지난 50년 동안 연극과 퍼포먼스는 젠더, 경제, 전쟁, 언어, 미술, 문화, 자아감을 재고하는 중요한 은유와 실천으로 활용되었다. 〈연극 그리고〉는 연극과 퍼포먼스의 끊임없는 학제 간 에너지를 포착하려는, 짧은 길이의 책들로 이뤄진 긴 시리즈다. 각 책은 연극이 세상을 어떻게 조명하는지, 세상이 연극을 어떻게 조명하는지 질문하며, 연극과 더 넓은 세상이 보여주는 특정 측면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_「Theatre and 시리즈 원서 편집자 서문」에서
섹슈얼리티는 공연 속 욕망을 어떻게 굴절시켜왔는가: LGBTQ 연극의 역사
섹슈얼리티를 무대 위에서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보는 것이 이성애라고 당연시한다. 그러나 저자 질 돌런은 『연극 그리고 섹슈얼리티』를 통해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아니면 일부러 간과해왔던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이성애를 제외한,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와 같은 대안적 섹슈얼리티들이 명확히 부여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들을 어디서 발견해야 하는가? 관객, 연출가는 공연을 비전통적인 관점에서 퀴어화할 수 있는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퀴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중요한가? 섹슈얼리티는 성적 인식을 뛰어넘어, 어떻게 극이나 공연과 그 이면에서 동기를 부여하는 욕망의 흐름을 보여주는가?
돌런은 극작과 공연 제작을 레즈비언/게이/양성애/트랜스젠더/퀴어(LGBTQ)의 사회와 연극사의 맥락에 놓고, 이러한 질문의 역사를 추적함과 동시에 그 비평적 의의를 설명한다. 또한 섹슈얼리티가 삶과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주체의 한 측면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성적 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한 연극계 LGBTQ 인물들의 발자취를 기린다.
서사적 요소로서의 섹슈얼리티와 LGBTQ에 대한 고찰
연극과 섹슈얼리티는 서양의 공연에서 늘 서로 영향을 끼치는 분야로, 성적 욕구는 등장인물의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관계를 맺거나 파괴하고, 질투심을 일으키거나 부정을 저지르게 만들며, 또한 인물들을 뭉치게도 하고 분리시키기도 하는 힘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서사적 요소로 작용해왔다. 게다가 오랫동안 연극은 사회 부적응자와 소외된 자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며, 특히 성적 소수자들은 지배 문화가 강요하는 순응적 삶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관대함을 연극인들 사이에서 발견했다.
그 결과 LGBTQ 관점에서 창조된 연극은 내용과 형식뿐 아니라 제작 방식에도 정치적 의미를 두게 되었으며, 반자본주의적·반권위주의적인 운영을 지향한다. 여러 앙상블 극단들이 퀴어 예술가들의 공동 창작과 협업을 통해 고안한 공연을 선보였다.
연극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찰은 배우와 관객을 구현하는 비규범적인 새로운 섹슈얼리티의 틀을 제공한다. 텍스트의 형식과 구조뿐 아니라 서사의 내용, 제작에 참여하는 인력, 공연과 제작 스타일, LGBTQ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관객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 등 여러 요소들이 지금도 공연 제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벨 리프리브〉 : LGBTQ 이론을 실천한 공연
돌런은 『연극 그리고 섹슈얼리티』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대표하는, 미국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공연 집단 스플리트 브리치스와 영국 블루립스가 함께 미국의 고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퀴어적으로 각색한 공연 〈벨 리프리브Belle Reprieve〉를 분석함으로써 LGBTQ 이론과 그 실현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또한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자신의 삶과 작품에서 동성애를 위장할 수밖에 없었던 LGBTQ 연극사의 한 시기에 집필한 작품을 ‘해체’한 〈벨 리프리브〉가 명백히 드러내는 공연 전략과 저항적 읽기 행위를 해설하여 공연으로 실천된 이론을 입증하고, 또 그러한 비평적 접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은 또한 상업 연극, 혹은 윌리엄스로 대표되는 주류 연극과 스플리트 브리치스와 블루립스와 같은 극단이 제작하는 아방가르드적이고 실험적인 공연 간의 상호 작용을 추적하면서도 아방가르드에 좀더 중점을 두는데, 앞선 LGBTQ 연극사 관련 문헌들이 거의 백인 남성들이 가장 주목받고 큰 성공을 거둔 상업 연극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변부를 살펴봄으로써, 저자는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20세기부터 현재까지 무대 위에서 재현되어왔고 또 연극에 영향을 끼쳐왔는지에 대해 풍성하고 상세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LGBTQ를 위한 정치적·비판적 전략: 분석과 이해
공연 스타일, 형식, 내용, 관객의 다양화와 증가로 LGBTQ 연극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객은 더는 LGBTQ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많은 LGBTQ 연극이 영미권의 게이와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그들의 복잡한 삶을 반영하며 시작되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는 무대 위 혹은 영화 스크린에서 누구나 대안적인 성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연기하고 또 감상할 수 있도록 점차 기준이 완화되었다. 배우들의 성적 지향이 알려지더라도, 그것이 연기의 전달력이나 사실성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쇼타임 방송국의 시리즈 〈간호사 재키Nurse Jackie〉에서 이브 베스트(Eve Best)가 연기하는 의사는,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와 빠르고 추저분한 성관계를 가진다.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종종 만나던 여자 친구를 다시 자기 삶 속으로 받아들인다. 베스트가 레즈비언 혹은 양성애자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미국에서 아웃팅한 게이로서 최초로 공직자로 선출된 하비 밀크(Harvey Milk)의 삶을 다룬 2008년 아카데미상 수상작 〈밀크Milk〉는 두 백인 게이 남성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는데, 게이 남성과 레즈비언 역할 대부분은 밀크 역을 맡은 숀 펜(Sean Penn)과 그의 연인을 연기한 제임스 프랭코(James Franco)와 같은 이성애자 배우들이 연기했다.
이러한 캐스팅에 대해 어느 누구도 진실성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펜은 오스카상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과 영국 문화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배 문화는 쉽사리 원래의 규범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많은 서양 국가들에서 동성 부부 관계를 합법화하고 반차별 조항에 성적 지향에 대한 부분을 추가하는 등, 게이 남성, 레즈비언, 이성애자, 트랜스젠더 들을 위한 눈에 띄는 사회적 진보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국 트랜스젠더들은 공문서에 기록된 성별을 바꾸기 위해 도시, 주, 연방 정부와 분투하며 그들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우고 있으며, LGBTQ 사람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혐오 범죄 역시 지속되고 있다. 진보적 인사들도 정치적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퀴어 공동체의 성적·인종적·문화적·젠더적 다양성을 온전히 포용하기를 꺼린다.
저자는 LGBTQ 인권과 여전히 불안정한 LGBTQ의 문화적 위치를 생각하면,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전략으로서의 날카로운 분석과 깊이 있는 이해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연극 그리고 섹슈얼리티』가 LGBTQ 공연뿐 아니라, 모든 연극, 영화 그리고 TV 속 재현에 대한 사려 깊고 윤리적인 대응을 위한 유용한 도구들을 제공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