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조앤 디디온은 2003년 12월 30일 남편을 잃었다. 그는 독감이 악화하여 패혈증에 걸린 딸 퀸타나를 면회하고 돌아온 후 급작스레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누구보다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보였던 보호자 조앤 디디온은 사실 마법 같은 사고로 그 현실을 버티고 있었다. 남편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그가 다시 살아서 돌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 설상가상 병에서 회복해 나가는 것으로 보였던 그녀의 딸마저 다시 병상에 눕고 만다. 남편의 죽음만큼이나 갑작스레 예고 없이. <상실>은 조앤 디디온이 남편 존 그레고리 던(John Gregory Dunn)을 갑작스레 떠나보낸 후 약 1년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던 그 시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하지만 실상 그 담담함은 그녀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버티며 내보인 일면일 뿐이다. 그녀는 단어 하나, 장소 한 곳 등 계속해서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에 괴로워하면서, 펼쳐 낼 수밖에는 그 생각의 나래를 가감 없이 독자에게 내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 남편이 다시 돌아오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음을 밝힌다. 온갖 주술적인 방법들, 미신들을 실행하며 남편이 돌아와서 신을 신발이 없어 당황할까 봐 그의 신발을 버리지도 못한다. 책을 읽을 때는 조앤 디디온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그저 참 절절하게도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책으로 썼구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미국에서 각종 정치평론이나 냉정하고 현실적인 분석으로 이름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감정적인 글을 쓰고 미신적인 행동을 하며 남편을 그리워하는 글을 썼다니. 작가의 이력 때문에도 미국에서는 이 책이 상당히 많은 주목을 받은 모양이다. 또한, 두 사람은 40년동안 결혼생활을 했고 처음 5개월간을 제와하면 두 사람 다 재택근무를 하며 24시간 함께 붙어있다고 한다. 일상적인 아주 소소한 것들을 서로에게 이야기해주고 서로의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는 등 아주 친밀하고 밀착된 부부였다는 것. 작가는 고통스러운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에 따라 점차 통증에 무뎌지는 것에 그녀는 괴로워한다. 그 마법 같은 사고에서 벗어나며, 사랑하는 이를 잊게 되는 것에 괴로워한다. 둘이 함께 지내던 공간, 추억이 담긴 물건을 바라보며 더 이상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무너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측은했다. 더욱 기막한 사실, 작가 조앤 디디온은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시기쯤 딸마저 잃게 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독감 악화로 쓰러진 딸은 회복하는 듯했으나 다시금 병상에 눕게 되었고, 그렇게 세상을 달리했다.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이는 그 감정을 제대로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비애’, ‘비통’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비애와 슬픔을 넘어 진정한 ‘애도‘의 과정에 이르르기 위해서 우리 앞의 일상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경험을 통해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______ 그냥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 뭔가 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던 일이 얼마나 많던지. 존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은 존이 죽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대답을 들을 가능성만 사라졌을 뿐. 신문에서 어떤 글을 읽으면 평소라면 존에게 읽어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에서 존이 관심을 가질 만한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랄프 로렌이 71번가와 72번가 사이 더 넓은 매장으로 확장했다거나, 매디슨 애비뉴에 서점이 있던 자리가 드디어 임대되었다든가. 8월 중순 어느 날 아침, 센트럴파크에서 산책하다가 다급하게 전할 소식을 갖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렀던 기억이 선하다. 하룻밤 새 나무에서 짙은 여름 색이 옅어지고 벌써 계절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소식. 우리 가을 계획을 세워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새해를 어디에서 보낼지 정해야 해. 현관문 안쪽 테이블에 열쇠를 내려놓고서야 생각이 났다. 이 소식을 들을 사람이 없다는 것, 아직 짜지 않은 계획이나 완결되지 않은 생각을 따라서 갈 데가 없다는 것. 내 말에 맞장구치거나, 다른 의견을 내놓거나, 반박할 사람이 없다는 것. ‘비애가 왜 긴장감처럼 느껴지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실 | 조앤 디디온, 홍한별 저 #상실 #조앤디디온 #책읽는수요일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