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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상세페이지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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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정보
  • 2026.08.26 전자책 출간
  • 2026.07.17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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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27.7만 자
  • 15.7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72134723
UCI
-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작품 정보

■ 책 소개

집 밖의 생산노동만큼 집 안의 재생산노동도 중요하다는 인식은 이제 보편적이다. 실제로 가사노동 분담은 과거에 비해 평등해졌다. 남성들은 과거에 비해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내 머릿속만 이렇게 바쁠까?”
이 책은 보이지 않지만 가정을 굴리는 데 필수적인 머릿속 노동, 즉 ‘인지노동’에 주목한다. 아이 생일파티 선물을 미리 준비하고, 냉장고 속 식재료를 떠올려 식단을 짜고, 휴지와 샴푸의 잔량을 확인하고, 치과 예약을 잡고, 부모님 생신과 아이의 학교 일정을 기억하는 일.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기억하고, 예측하고, 판단하고, 확인하고, 책임지는 일은 과연 누구의 몫으로 어떻게 분담되고 있을까?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슨 데이밍거는 이성 커플과 퀴어 커플을 포함한 부모 172명을 심층 인터뷰하며 오늘날 가정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추적한다. 대부분의 커플은 자신들의 가사노동 분담 방식이 평등하다고 인식했고, 실제로 많은 남성은 이전 세대보다 집안일과 육아에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의 삶 전체를 머릿속에 담고 관리하는 몫은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간으로는 측정되지 않는 머릿속 부담이 평등을 지향하는 관계 속에서도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사노동과 돌봄의 불평등은 오랫동안 ‘누가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라는 시간의 문제로 이해되어왔다. 이 책은 여기에 ‘누가 얼마나 오래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더한다. 그동안 이름조차 잘 붙여지지 않았던 인지노동을 가시화함으로써, 왜 평등한 가정에서도 돌봄과 관리의 부담은 여전히 한쪽 성별에 집중되는지를 드러낸다.


■ 책 속에서

매슈의 가사 기여도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남성 대다수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가사와 육아에 쓴 시간의 양만으로는 가정 내에서 매슈와 재키가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 집에서 수행되는 다수의 인지노동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지적 가사노동이란 가족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가족이 가족 외부의 타인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는지, 그러한 가족의 필요와 의무가 충족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다. 이러한 사고 과정은 주로 가족구성원의 욕구를 예상하고, 그 욕구를 충족할 방안을 확인하며, 선택한 방안의 실행 방식을 결정하고, 사후 결과를 확인하고 처리하는 형태를 취한다. 매슈가 야채와 고기를 볶고 청소기를 돌리는 동안에도 재키의 머리는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인지노동 활동들을 쉽게 하거나 어렵게 하는 것은 성별과 무관한 개인의 본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여성은 우연히 더 조직적이며 미래지향적이고, 남성은 그저 우연히 더 산만하고 현재에 더 집중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설명은 성립될 수 없다. 탁월한 인지노동 능력은 타고난 역량이기도 하지만 습득된 기술이기도 하다. 나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힘들이 어떻게 여성을 몰아가서 가정이란 맥락에서 그러한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하는지 밝혀 보이고자 한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우리의 문화적 강박은, 초인 유형 여성에게 갑자기 즉흥성을 수용하라거나 허당 유형 남성에게 두세 수 앞을 내다보며 계획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인지노동의 배분을 학습된 기술이 아니라 타고난 자질의 결과로 이해하는 방식은, 커플들이 자신들의 이상과 어긋나는 관계 패턴에 갇혀 있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제 목록까지 쥐여 줬는데도 왜 당신 눈에는 안 보이는 거지? 그래서 저는 그냥 목록을 버렸어요.” 콜린의 마지막 말은 밑줄을 그어 강조할 만하다. 남편이 바닥에 방치된 공기 주입기 같은 것들을 보지 못한다는 콜린의 확신은 그녀의 좌절을 누그러뜨렸다. 만약 그가 할 일을 선제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면” 그의 한계 때문에 그를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에 목록이 들려 있을 때는 이러한 이해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그때부터는 남편이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기질 때문이라기보다는 노력의 실패로 보였다. 콜린에게는 기질을 탓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그녀는 “계획자”로 행동했는데, 랜들의 표현대로라면 “작업반장” 역할이었다. 캐시는 자신을 “통제광”이라고 하면서 남편 랜들에 대해서는 사랑스럽게 “엉망”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일생에 걸쳐 거둔 성공은 전부 할 일 목록을 기초로 한 거예요. 늘 랜들한테 농담처럼 말해요. ‘내가 죽으면 당신은 곧바로 다시 결혼해야 해.’ 저는 그 사실을 알 수도 없겠지만. 왜냐면 한 사람이 그 많은 것을 다 관리하는 게 수월하니까요. 예산을 짜고 공과금을 납부하고 하는 그 모든 일을 제가 하나의 과학으로 줄여놓아서 남편도 마음을 놓게 됐죠.”

대부분의 영역에서 그러하듯이 정신 사용 영역에서도 실천이 완벽을 만든다. 인지노동을 함으로써 인지노동을 잘하게 된다. 여성 주도 커플에 속한 레아 같은 여성은 더 일찍, 더 일관되게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인지적 가사노동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계를 구축하고 지식(예를 들어 발달단계에 따라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관리하는 법)을 축적했다. 그 결과 여성의 역량은 더욱 커졌고, 이는 여성이 계속 집안일을 책임지도록 장려했다. 마테오가 표현한 대로 여성이 “모든 지식을 다 갖고 있을” 때, 인지노동의 재배분은 불가능하거나 무분별한 일로 보인다. 반대로 남성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투자에 덜 참여했기 때문에 역량 역시 더 제한적이었고, 이는 다시 그들이 집안일에서 계속 부차적인 역할에 머무르는 것을 정당화했다.

응답자들은 육체적인 집안일은 번갈아 할 수 있었지만 인지적 과업에서는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육체적인 집안일에도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관계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지 않고, 지역의 육아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에도 덜 의존하기 때문에, 한 파트너에게서 다른 파트너에게로 비교적 쉽게 넘겨질 수 있었다. 누군가가 아기에게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보디수트를 입히는 걸 보고 몇 차례 연습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 일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된다. 반면 많은 인지적 과업을 효율적으로 완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요약하고 흡수하기가 더 어렵다. 이는 응답자들이 파트너들 사이의 능력 격차를 매울 수 없이 크게 느끼는 이유가 된다.

겉으로는 모성적 ‘문지기 행동(남성의 육아 참여 기회를 통제하거나 제한하는 행동)’처럼 보이는 것들의 상당수는, 집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결과를 자신이 불균형하게 떠안게 될 것이라는 여성들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여성이 가정 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인간관계에 투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기방어를 위한 시도였다.

문제는 집안 문제들을 예측하거나 한 프로젝트를 끝까지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던 바로 그 남자들이, 직장에서는 바로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는 사실이다.

남성 주도 커플의 여성 파트너인 섀넌 또한 서비스 제공자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아이들의 치과 진료를 담당하고, 예약 알림 메시지를 받는 쪽은 남편 리처드였다. 그런데 리처드가 업무상 갈등이 생겨서 섀넌이 대신 아들을 데리고 치과에 간 날, 그녀는 거기서 꾸지람을 들었다고 느꼈다. “리처드가 치과에서 보낸 메시지 한 개를 놓쳤는데, 우리 아들이 치과 오기 전에 뭘 먹으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치과의사가 이러는 거예요. ‘아무것도 먹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러고는 ‘어머님이 메시지를 챙기셔야 하지 않겠어요?’라더군요. 정말 무례해요.”

더욱이 이들은 ‘평등’을 좋은 것으로, ‘불평등’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손쉬운 이분법적 사고에 문제를 제기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공유 커플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수집한 자료들은 인지노동 공유 정도와 만족도 사이에 약간 더 복잡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아네트와 크레이그의 경우, 인지노동 공유는 그들의 상호 존중과 가정생활에 대한 공동의 투자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른 공유 커플의 경우에는 같은 행동이 서로 권위를 차지하려 다투는 듯한 적대적인 기운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레슬리와 카트리나는 자신을 묘사할 때 ‘부치’나 ‘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여성 모두 고정관념상으로 레슬리가 좀 더 남성적인 사람이고 카트리나가 좀 더 여성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구분은 다소 이례적인 것이었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응답자가 자신과 파트너가 비슷한 젠더 표현을 한다는 점을 굳이 강조했다. 또한 여성 동성 커플 가운데 부치와 펨 역학을 어느 정도 나타나는 경우에도, 펨 파트너가 반드시 인지노동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별 가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인지노동 불평등이 주로 개별 가족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제라고 보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또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생계부양자 한 명과 가사 전담자 한 명의 가족 모델을 전제로 설계된 사회 정책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를 불안해 하고 걱정하게 만드는 만연한 불평등 역시 주목해야 한다. 또한 남성과 여성을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본질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서로 다른 존재로 묘사하고 ‘성격’을 사회적이고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고정된 것으로 기술하는 문화적 메시지들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모순적이게도, ‘여성 역량 강화’를 내세우는 메시지들조차 미묘하게 성별 차이의 관념을 강화하고 초인 여성과 허당 남성이라는 전형을 강조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들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정에서 여성을 관리자로, 남성을 서투른 보조자로 설정하는 문화적 구조에 일조하기도 한다. 성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화적 산물들조차 의도치 않게 본질주의적 사고를 지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개별성과 개인의 본연성을 널리, 그리고 거의 의심 없이 찬양하는 문화는 ‘우리가 누구인가’가 사회적으로 매개된 구성물이 아니라 고정된 사실이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인지노동은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길러지는 기술과 역량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역할을 재배분하려면, 처음에는 관련 지식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관계까지도 옮겨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수년에 걸쳐 벌어진 역량의 격차가 하루아침에 좁혀지기는 어렵다. 한동안은 비효율도 감수해야 한다. 아마도 그 일을 늘 해오던 사람이 계속 맡는 편이 더 빠를 테지만, 당신이 이미 이 단계까지 왔다면, 공정성이나 두 사람 모두의 정신 건강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 역시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이미 인정했을 것이다.

작가 소개

■ 지은이
앨리슨 데이밍거Allison Daminger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 사회학과 교수. 가족생활에서의 성별 불평등을 주로 연구하며, 특히 가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보이지 않는 노동인 ‘인지노동’ 연구로 주목받았다. 미국 사회학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그의 연구는 《뉴욕 타임스》, 《디 애틀랜틱》, 《사이콜로지 투데이》 등 주요 매체에 소개되었다.
이 책은 이성애·퀴어 커플 관계를 맺고 있는 172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와 다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배가 널리 공감받는 오늘날에도 왜 인지적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지, 그리고 그 불균형이 가족생활과 친밀한 관계,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 옮긴이
전경훈
서울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한때 가톨릭 수사로 살았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로 살아간다. 옮긴 책으로는 《친밀한 착취: 돌봄노동》, 《프랑스의 음식문화사》, 《가톨리시즘》, 《페미사이드》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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