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인 디오도르 랫서Theodore Roethke는 "늙는다는 것은 이제까지 입어보지 못한 납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의 반만 동의한다. 젊은이들은 납으로 만든 옷을 나이들 때까지 입어야 함이 맞다. 그들에게는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면서 사회에 공헌할 의무까지 있으니 그것은 납으로 만든 옷이다. 그러나 은퇴자들에게는 납으로 만든 옷을 벗어 던지고 자유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은퇴 후 2023년 2월12일부터 한국 여행을 시작했다. 은퇴 날짜를 정해놓고 3년을 더 일한 뒤 2022년 말, 미동부에 위치한 주립정신병원을 15년만에 퇴직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웠던 때 혹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을 때는 언제일까. 나는 아내와 함께 우리의 화양연화를 꿈꾸며 은퇴 이후의 삶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우리는 '24개월 한 도시 한 달 살기'를 실천에 옮겼다. 서울1, 구미, 부산, 통영, 여수, 광주, 구례, 목포, 전주, 대전, 수원, 베트남, 인천송도에서는 2달을 머물며 13개월을 보냈다. 나머지 11개월은 남양주, 춘천, 청주, 울산 2달 서울 신림동 등을 거쳐 여의도에서 수개월을 머무르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여행 후반기에 들어서니 건강 문제가 심심찮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의사를 매달 한 번씩은 만나야 했다. 한국에서 벌어진 전공의 파업으로 야기된 문제와 지방 병원의 실태는 서로 다른 나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제 어디서나 신속하게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뜻밖의 12.3 계엄이 선포된 이후,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국민의 힘 당사 주변의 시위 현장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그들의 함성을 들었다. 눈과 귀만 가동한 채 찬반 시위대 주변을 서성거리며 몸을 떨었어야 했다. 여의도에서 우리는 2년간의 여행을 마무리했고 이 책을 발간하는데 필요했던 모든 작업을 일사불란 一絲不亂하게 할 수 있었다. 지난 2년동안의 경험을 화양연화를 기대하는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 어떤 호텔에 얼마를 지불했는지, 우리가 쓴 돈은 월별로 얼마나 되는지, 부부가 손잡고 걸어 다닌 거리는 몇 킬로미터나 되는지 등이 그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아내에게 고마웠다는 나의 진정을 이 책에 남긴다. 우리가 남기고 떠나온 집안 일의 대소사를 처리하느라 수고한 사랑하는 딸 남경과 사위 브랜든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손자 네이튼과 손녀 카리나의 성장기를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편집을 맡아 밤늦은 시각에 작업을 해야 했던 조카며느리 이태리에게도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일기 형식으로 만들어진 제 1권(제2권은 출판예정)은 관광지 소개를 위한 사진 위주의 관광 도서가 아니다. 사진은 한 장도 싣지 않았다.
글의 앞부분에 여행을 위한 사전 준비와 외국국적 동포가 한국인처럼 살면서 여행하는데 필요한 법 절차를 경험에 의해 기술했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하면서 읽게 된 근대까지의 의학 이야기를 메모하고 글로 마무리한 내용에 원고 마감 때까지 쓴 646일의 일기 중에서 도시별로 추려낸 88일간의 일기와 한 편씩 교차해 실었다. 여행 일기와 의학 이야기는 조합이 이상하지만 그냥 재미로 읽으면 작은 이야기거리는 될 것이라 믿는다.
김윤신
작가 소개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배재중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2년 미국시민권자가 되었고 뉴욕 주립정신병원 근무를 마친 2022년 11월25일 은퇴하였다. 울기도 하면서 속절없이 살아온 세월이다. 대학 문을 드나들며 꿈을 키워 나갔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흙은 영양분이 많아 좋았는데 그 땅에 심어진 묘목은 부실했다. 좌절했고 무너졌다. 그래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힘은 들었지만 더 이상 좌절하지 않았다. 나약했던 묘목은 새롭게 호흡하는 법을 배웠고 줄기에 파란 싹을 틔우는 건강한 호흡을 시작했다. 일기를 썼고 어머니께 편지를 드렸으며 한국에 있는 지인과 편지 왕래를 했다. 책을 읽고 메모를 했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데서 아무것에나 적었다. 그렇게 세월은 또 흘렀다. 은퇴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 여행을 시작했다. 2년의 세월 동안 한국의 정기가 내 피와 함께 폐순환을 했다. 여행 중에 책을 썼다. 처음하는 은퇴이고 마지막 청춘이라 안타깝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마무리했다. 내 심장의 일부를 대전 현충원에 계신 부모님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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