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은 끝났다
이제 세계는 오픈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20세기는 석유라는 엘리트 에너지를 기반으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경제 체제였다. 그러나 피크오일이 지나고 세계화가 정점에 이르러 기존의 경제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인류는 지구온난화 및 엔트로피 증가로 인한 생물권의 붕괴와 세계 경제 침체라는 위기에 직면했지만, 한편으로는 에너지-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초래한 새로운 경제 체제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다. 생물학에서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초래했고, 그 결과 다윈식 적자생존 대신에 공감이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적대적 경쟁보다는 유대감을 가장 고차원적 욕구로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 이해에 기초하여 앞으로는 분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협업의 경제 체제에 동승한 개인, 기업,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21세기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에서 윈윈 전략으로, 폐쇄성에서 투명 경영으로, 이기적 경쟁에서 이타적 협업으로, 엘리트 에너지에서 재생 가능한 분산 에너지로, 석유 지정학을 둘러싸는 패권주의에서 에너지 협력 관계로,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시대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애덤 스미스의 ‘음울한 경제학’의 기반을 흔들면서 3차 산업혁명인 분산 자본주의를 낳을 것이며, 이것은 새로운 경영 전략 및 권력 구도와 지정학의 변화를 예고한다.
『유러피언 드림』, 『소유의 종말』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의 2010년 신작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은 끝났다
이제 세계는 오픈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20세기는 석유라는 엘리트 에너지를 기반으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경제 체제였다. 그러나 피크오일이 지나고 세계화가 정점에 이르러 기존의 경제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인류는 지구온난화 및 엔트로피 증가로 인한 생물권의 붕괴와 세계 경제 침체라는 위기에 직면했지만, 한편으로는 에너지-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초래한 새로운 경제 체제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다. 생물학에서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초래했고, 그 결과 다윈식 적자생존 대신에 공감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적대적 경쟁보다는 유대감을 가장 고차원적 욕구로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 이해에 기초하여 앞으로는 분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협업의 경제 체제에 동승한 개인, 기업,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21세기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에서 윈윈 전략으로, 폐쇄성에서 투명 경영으로, 이기적 경쟁에서 이타적 협업으로, 엘리트 에너지에서 재생 가능한 분산 에너지로, 석유 지정학을 둘러싸는 패권주의에서 에너지 협력 관계로,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애덤 스미스의 ‘음울한 경제학’의 기반을 흔들면서 3차 산업 혁명인 분산 자본주의를 낳을 것이며, 이것은 새로운 경영 전략 및 권력 구도와 지정학의 변화를 예고한다.
공감 뉴런의 발견과 호모 엠파티쿠스 Homo empathicus의 탄생
토머스 홉스의 인간은 이기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고, 존 로크의 인간도 태생적으로 탐욕적이며, 제러미 벤담의 인간도 쾌락을 최대화하기 위해 태어났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인간의 물질적 이기심을 성적 욕구로 바꾼 화려한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윌리엄 페어베언, 하인츠 코후트, 도널드 위니콧은 각자의 방식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근간을 조금씩 흔들었고, 개인의 정신과 자아의식의 발달에서 리비도의 충동보다는 사회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인간 본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주장을 뒤집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오랜 논쟁에 본격적으로 활기를 불어넣은 사건은 뜻밖에도 생물학에서 비롯됐다. 유전학에서 거울신경세포가 발견됨으로써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과학 전문 기자들은 이 거울신경세포에 ‘공감 뉴런(empathy neuron)’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공감 의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생물학, 인지과학, 두뇌과학, 아동학 분야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전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오히려 ‘공감’이 인류의 문명을 진화시켜 왔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힘을 얻고 있다. 『공감의 시대』는 고대 신화적 의식의 시대로부터 기독교 문명의 발흥, 그리고 18세기 계몽주의 및 19세기 이데올로기의 시대와 20세기 심리학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인간의 공감이 어떻게 계발돼 왔는지에 대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경제사에 ‘공감’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들이댐으로써 문학, 예술, 신학, 철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소통이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새롭고 풍부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공감의 물결과 엔트로피의 역설
로마 멸망의 원인을 말할 때면 흔히들 지배층의 부패와 타락, 노예 노동력의 착취, 야만족의 우월한 전술 등을 지적한다. 이런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토양의 비옥도가 나빠지면서 농업 생산량이 줄어든 데서 찾아야 한다. 로마는 더 이상 자체의 농산물로 제국의 인프라와 시민들의 복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할 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로마의 유일한 에너지 체계가 고갈되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의 문명에도 하나의 경고가 되는 대목이다. 우리도 현재의 산업사회를 지탱해 주는 값싼 화석연료가 소진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는 새로운 에너지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맞물려 훨씬 복잡한 사회를 창조해 냈다. 수렵채집 시대에는 구두 문화가, 관계농업 사회에서는 문자가 경제를 관리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였으며, 19세기에는 인쇄 매체가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20세기에는 전기통신에 의해 2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인류가 기술적으로 진보할 때마다 공동체의 크기는 커졌고 인간의 의식은 확장되었으며 공감적 감수성은 고조되었다. 그러나 환경이 복잡해지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공감 의식은 촉진되었으나 그만큼 인류의 에너지 사용은 많아지고 자원은 더욱 빨리 고갈된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에너지 집약적이고 상호 연관적인 세계에서 지구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재앙에 가까운 기후 변화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치솟는 엔트로피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공감-엔트로피의 역설을 해결하는 일이야말로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남아 번창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하게 하는 중대한 시금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와 사회의 모델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지금이 바로 새로운 에너지를 바탕으로 분산 자본주의라는 3차 산업혁명이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 경제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환경 난민은 250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금세기 중반에 이르면 이 수치는 2억 명 이상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세계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핵 압력 단체들은 핵만이 유일한 자원으로 에너지 갈등 해소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바람, 태양열, 지열, 물, 파도, 바이오매스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라는 훌륭한 선택을 두고도 하필 핵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고 세계를 새로운 핵무기 경쟁으로 몰아넣어 피할 수 없는 핵전쟁만 야기할 우려가 있는 핵에너지만을 고집한다.” 핵발전소가 기후 변화에 외곽의 영향으로나마 기능하려면 적어도 세계 에너지의 20퍼센트는 생산해 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현재 가동 중인 모든 낡은 발전소를 핵발전소로 대체하고 추가로 1,500개의 핵발전소를 건설하여 총 2,000개의 핵발전소를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IEA(국제에너지기구)가 내놓은 어처구니없는 제안이다. 지역 분쟁이 갈수록 확산되는 시대에 수천 개의 핵발전소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과 유럽연합과 세계 많은 나라들이 이라크와 북한 겨우 두 나라가 핵발전소를 세우겠다며 확보한 농축 우라늄을 핵폭탄 제조에 쓸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지구 구석구석까지 핵발전소를 세우려 기를 쓰고 있다.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 등이 대표적인 그런 나라들이다.”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피크오일(생산의 피크오일과 다르다.)은 이미 1979년에 일어났다. 치솟는 유가로인해 우리는 ‘정점 세계화(peak globalization)’를 목격하고 있다. 지구촌 경제 성장이 멈추고 에너지 사용이 줄어드는 현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애초에 세계화의 배경에는 충분하고 값싼 석유를 바탕으로 기업이 값싼 노동 시장을 찾아 자본을 이동시키고 거기서 식품과 제조 상품을 최소 비용으로 생산한 다음 해외로 수송하여 수익을 높인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는데, 이런 전제가 무효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구촌 신용위기, 에너지 위기,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 기후 변화의 영향이 하나로 뭉쳐 세계 경제는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 이 위기 앞에서 인류는 새 시대의 경제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수소 에너지와 같은 분산 에너지 경제 체제로 이동해야만 한다.
분산 자본주의가 이끄는 3차 산업혁명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새로운 에너지 제도로 수렴되어 전혀 다른 환경을 만들어 낼 때 거대한 경제적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런 수렴의 꼭짓점에 있다. 즉 지난 20년간 분산된 정보통신 혁명이 21세기 분산 에너지 제도의 길을 닦았다. 분산 에너지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데 적합한 지휘명령 메커니즘으로서의 분산정보통신 기술은 21세기 후반에 경제적 승수효과를 동반하면서 위력적인 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열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을 가능케 한 정보통신 기술은 세계의 파워 그리드(power grid, 전력망) 형태를 바꾸고 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집, 사무실, 가게, 공장, 기술단지에서 스스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모아 전력을 생산하고, 그것을 사이버 공간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듯,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를 통해 P2P 방식으로 공유한다. 기업들은 이미 업계 리더들이 말하는 소위 ‘분산 자본주의’를 위한 시장과 인프라의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빌딩은 인간이 생산하는 모든 에너지의 30에서 40퍼센트를 소비하는, 인간이 야기한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이다. 하지만 이제는 해당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재생 에너지원으로부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는 발전소형 빌딩을 세우는 기술이 가능해졌다. 3차 산업혁명의 3요소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 발전소형 건물, 재생 에너지의 저장법이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이들 에너지원을 모아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저장법을 개발해야 한다. 배터리나 분화양수기 등은 저장 용량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수소는 공급 면에서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하고, 전력 생산뿐 아니라 차량에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재생 가능 에너지를 ‘저장하는’ 보편적 매체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볍고 가장 풍부한 원소인 수소는 에너지원으로 쓰고 나도 순수한 물과 열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우주선은 첨단 수소 연료전지로 동력을 조달했다. 수소를 얻으려면 우선 태양열, 풍력, 수력, 지열, 파도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재생 에너지를 수소 형태로 저장하는 기술은 이미 실용화되고 있다.
“에너지 주권” 시대가 야기하는 “아래로부터 다시 짜는 세계화”
3차 산업혁명은 민족과 국가를 전례 없는 새로운 차원의 협력 관계로 끌어들여 전력이 널리 분산되는 새로운 사회적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다. 분산된 통신 혁명으로 네트워크 사고방식, 오픈소스 공유, 통신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처럼, 3차 산업혁명은 에너지 민주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제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의미심장한 생활 방식을 실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갖추는 세계를 그려야 할 때다.” 20세기가 참정권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에너지를 손에 넣는 것이 사회적 권리이자 인권이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필요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만들어 그것을 지역, 국가, 대륙 간 인터그리드를 통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분산 에너지 경제 체제는20세기 지정학적 권력 투쟁에서 21세기 ‘생물권 정치’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2차 산업혁명에서 3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50년은 세계화 과정을 극적으로 바꿀 것이다. 무엇보다 개발도상국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전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빈곤이 지속되는 핵심 요인이다. 반대로 에너지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적 기회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다.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이 자기가 쓸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 권력 구조에도 큰 변화가 닥칠 것이다. “변방의 민족들은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권력의 중심 국가의 영향을 그만큼 덜 받을 것이다. 어느 나라나 재화와 용역을 각 지역에서 생산하여 전 세계에 팔 수 있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개발 정치학의 핵심이고 아래로부터 다시 짜는 세계화다. 선진국은 산업체와 시민단체와 손잡고 개발 원조의 방향을 다시 정하고, 거시 및 미시 금융을 레버리지하고, 개발도상국이 3차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도록 최혜국 무역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세계화의 다음 단계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이것은 미래의 공상과학 이야기가 아니다. 프록터앤갬블, 시스코, 이노센티브는 피어링과 협업 마켓플레이스로 전환 중이며, 인터넷을 협업의 매개체로 활용하며 자란 N세대는 20억이 넘는다. GM은 스페인 아라곤 공장을 발전소형 빌딩으로 개조하여 에너지 비용을 사실상 제로로 만들었고, IBM, 제너럴일렉트릭, 지멘스 같은 세계적인 IT 회사들은 이미 파워그리드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엑셀에너지와 셈프라 등 에너지 회사들은 스마트그리드 설치에 착수했다. 다임러, 메르세데스, 르노닛산도 분산 전기 충전소 사업을 시작했고, 시스코는 분산 에너지 기술이 앞으로 100억짜리 사업이 되리라 예측한다.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앞으로 기업과 국가의 미래는 이 분산 에너지의 활용 및 대처에 달렸다. 물밑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 중인 이 에너지 혁명은 30억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위한 에너지 민주화를 예고하고 있다.
경쟁과 적자생존에서 협력과 평등으로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리더십은 공감적인 관계 기술이 가장 중요하게 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정보를 쉽게 공유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밀접하고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대부분의 고용인들은 상사의 배려와 새로운 공감적 유형의 관리를 더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만명 이상을 상대로 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상사의 배려’를 돈이나 그 밖의 혜택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마찬가지로 많은 연구를 통해, 직장 내 생산성은 정서적으로 동료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옛 ‘아메리칸 드림’은 개인의 자율성과 기회를 중요시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물질적 이익을 강조한다. ‘유러피언 드림’도 개인의 창의력과 경제적 기회를 소홀히 하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문제에도 똑같은 비중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한 개인이 자율적인 고립 상태에서 홀로 번창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 사회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삶의 질을 창조하려면 사회적 자본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적 자본에도 투자하여 공동선을 촉진시켜야 한다. 유럽 사람들은 오랫동안 개인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는 데 자발적 의지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의료 서비스는 공익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결과 미국에 비해 유아 사망률은 낮고 기대 수명은 길다. 유럽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더 많은 공공기금을 들이는 덕분에 미국보다 유소년기 빈곤 비율도 더 낮다. 그뿐만 아니라 치안도 더 잘돼 있고, 살인 비율도 훨씬 낮으며, 수감된 사람들도 훨씬 적다. 대중교통 체계는 단연 세계 최고다. 유럽은 또한 환경보호와 관련해서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세계는 매일 3조 2000억 달러가 광속으로 자본 시장에서 교환되고 있다. 2007년은 인류 정착사에서 거대한 티핑포인트로 기록된 해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농촌보다 도시 인구의 수가 많아진것이다. 바야흐로 호모 우르바누스(도시형 인간)의 시대다. 무서운 속도로 세계인을 하나로 이어 주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코스모폴리탄에 어울리는 시야를 갖게 해 주는 도시화, 국제적인 이주의 물결, 다중 정체성과 이중 국적의 증가, 세계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의 출현, 유행처럼 번지는 세계 여행과 관광 등은 다양한 형태로 인류를 하나로 묶어 준다. 그 결과 동성연애자, 장애인을 포함하여 인류사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이 모두 타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동체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네트워크화된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 활동은 어떻게 변할까?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전의를 다지고 벌이는 적대적 경쟁이 더 이상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통하는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험이다. 나의 이익은 상대방의 손해를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고전적 경제 개념은 물러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나 자신의 행복을 증폭시킨다는 개념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은 빛을 잃고 윈윈 시나리오가 대세를 이룬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변환은 사업체들이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관리하는 방식에도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에 초점을 둔 기존의 시장 체제는 물러나고, 에너지 효율을 늘리고 엔트로피의 흐름을 늦춰 인센티브를 얻는 사업 방식으로 바뀐다. ‘접속권’을 확보하려는 21세기의 개인이나 집단의 투쟁은 재산권을 확보하려 했던 19세기와 20세기의 투쟁만큼이나 치열해질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은 분산 정보와 분산 커뮤니케이션과 분산 에너지와 P2P 협력을 강조하기 때문에, 보다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조직에서 개인화를 계속 재촉하는 반면, 경제, 사회, 정치적 생활을 관리하는 위계적 형태는 평준화된다. 협동적이고 분산적이고 비위계적인 사회가 곧 공감 사회이다. 음반 회사는 CD를 파는 대신 사이버스페이스 접속을 통해 시간당 돈을 받는 방식으로 거래 비용을 줄였고, 브리태니커 사전도 온라인 접속으로 전환하여 사실상 모든 거래 비용을 제거했으며, 심지어 미국에서 성인식의 상징이었던 자동차의 개념도 바뀌고 있어 지금은 도로 위의 40퍼센트가 리스 차량이다. 필립스라이팅은 성과 계약제를 도입하여 도시에 소형 형광등과 LED 옥외 조명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대신 에너지 절약분을 수입으로 거둬들이고 있다. 이제 기업은 지속 가능한 효율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에너지 절약형 제품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이처럼 21세기 공감의 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의식은 게임의 원리를 바꾸면서 모든 생활 방식과 경제 기반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