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은 왜, 어떻게 탄생하는가?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자화상 고발
사회와 조직을 좀먹는 간신 대해부!
2011년의 키워드는 ‘꼼수’라 할 만하다. 국민의 눈과 귀가 꼼수 부리는 정치권에 쏠렸고, 여기저기서 분노가 터져 나왔으니 말이다. 간신은 ‘꼼수의 제왕’ 쯤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늘 그럴듯한 말과 충성스러운 얼굴로 본심을 감춘 채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뒤로는 딴 짓을 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다. 희대의 간신들은 머리도 좋고 겁이 없었기 때문에 큰 권력을 쥘 수 있었고 그만큼 역사에 끼치는 해악도 컸다.
『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가 세상에 나온 결정적인 계기도 ‘분노’라고 볼 수 있다. 저자들은 중국의 5천 년 역사에서 간신들에게 입은 피해가 막대하고 때때로 역사가 퇴행하는 모습을 보니 울분을 참을 수가 없어 동세대와 후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책을 썼다. 사마천 『사기』 전문가로 유명한 편역자 또한 개탄스런 현실에의 배후에는 항상 간신배들이 득실거린다는 역사의 증거와 사례를 발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자화상을 비추고자 심혈을 기울여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버금가는 주제를 다룰 뿐 아니라, 간신, 매국노, 간군 등 사회를 좀먹는 무리들의 실체부터 근절까지 철저히 분석한 최초의 이론서이다.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간신’은 역사적 사회적 현상이라는 불편한 진실이다. 5천 년 중국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고, 그 패턴은 지금까지도 비슷하거나 같다. 더구나 역사적 사회적 현상으로서 간신 문제를 바라보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모습들을 직시하게 된다.
역자는 서문에서 “사회질서가 문란해지면 평소에는 뜻을 펴지 못하던 야심가와 음모가들이 우리를 뛰쳐나온다. 이들은 하늘이 내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라가 편안할 때는 실현할 수 없었던 자신의 야심과 목적을 실현시켜나간다. 동시에 이런 때는 사상도덕을 교육시킬 겨를이 없고, 감독기관은 마비되며, 선악시비가 뒤바뀌고, 사람들의 도덕수준은 떨어지기 일쑤다. 게다가 각종 파벌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며, 평소에는 고개를 쳐들지조차 못했던 이단 종교나 사이비 종교들의 사악한 교리와 설법들이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고 여기저기서 설쳐댄다.”고 말한다.
이 책의 가치는 추한 사회병폐를 들추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 또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함께 제시한다. 역자는 ‘역사는 각종 질병, 특히 전염병을 예방하는 백신과 같은 역할과 작용을 한다.’며 『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가 이런 백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라 믿고 있다.
간신을 테마로 한 흥미로운 역사 교양서
『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는 간신을 주제로 하지만 더 나아가 역사와 인간을 다루는 책이다. 이 책은 수많은 역사서를 바탕으로 풀어서 서술했기 때문에 역사를 간신이라는 주제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대중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세상을 기만하고 사욕을 추구하는 간신의 반대편에는 그들과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 충신들의 희생 또는 승리가 있었다. 이러한 대결을 지켜볼 때 때로는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이 책은 간신과 충신의 잣대가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에 따라 뒤바뀌기도 하고 간신의 일부는 한때 충신의 마음을 지닌 적도 있음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간신이란 존재는 사회의 부조리, 인간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구현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 책에 따르면 간신은 혼탁한 시대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타는 사람들이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인성의 약점’을 이용하여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 능하다. 결국 간신을 구별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성찰하여 단단히 무장하고 간신을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믿을 수 있는 부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닌 것으로 드러나 뼈아픈 후회를 해도 늦는 경우가 많다. 나라와 지역을 위해 좋은 지도자를 뽑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보다 단편적인 사실만을 근거로 투표하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소통이 화두가 되었어도 진실한 소통은 줄어드는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고 어떤 사람을 멀리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점점 절실해진다. ‘어떻게 사람을 판단할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을 안고 있는 현대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본문 중 에피소드 소개
① 간신과 충신의 차이에 대한 너무도 명쾌한 정의
당 현종 이융기는 개원 후반기에 한휴를 재상으로 기용했는데, 한휴는 매우 강직하여 현종이 잘못을 하면 그 잘못을 면전에서 서슴없이 지적했다. 이 때문에 현종의 마음은 늘 편치 못했다. 언젠가 어떤 이가 왜 한휴를 내치지 않느냐고 묻자 현종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말랐지만 천하가 살찌지 않았는가? 래숭은 모든 일을 내 뜻대로 따라했지만, 정사를 끝내고 자리에 누워 천하를 생각하면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한휴는 내 앞에서 솔직하고 딱 부러지게 바른 소리를 해도, 자리에 누워 천하를 생각하면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있다.”
②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추악한 간신의 권력욕
춘추시대 제 환공은 역아라는 자가 요리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이런 농담을 던졌다.
“과인이 이 세상의 맛있는 요리라면 먹어보지 않은 것이 없는데 단 한 가지 사람고기는 못 먹어보았다. 사람고기의 맛은 어떤가?”
환공은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역아는 그냥 들어 넘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역아는 환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 살 난 자기 아들을 죽여 요리로 만들어서 환공에게 갖다 바쳤다. 처음에 환공은 역아의 이런 행위에 마음이 언짢았지만 역아가 제 자식보다 자기를 더 사랑한다고 여겨 역아를 총애하였고, 나아가서 명재상 관중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도록 맡기기까지 했다.
③ 닮고 싶은 군자의 언행이란 이런 것
측천무후가 적인걸에게 “경이 여남에서 정치를 잘했는데도 경을 헐뜯는 자가 있소. 그 자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소?”라고 물었다. 적인걸은 “폐하께서 잘못이 있다고 하시면 신이 고치면 되는 것이고, 잘못이 없다고 하시면 그것은 신의 행운입니다. 헐뜯는 자가 누군지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송나라 때도 여몽정이란 재상이 처음 조정에 들어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떤 관리 하나가 그를 가리키며 “이런 풋내기도 정사에 참여한단 말인가?”라고 비웃었다. 여몽정은 못들은 척 지나쳐버렸다. 함께 있던 동료들이 씩씩거리며 저 자가 대체 누구냐고 열을 올렸다. 여몽정은 서둘러 “일단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나면 평생 못 잊을 걸세. 차라리 모르는 게 좋아.”라며 동료들을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