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 노래여, 근심 많은 우리 생의 힘이여!
우리 옛 시를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선
최근 옛 선비들의 글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다룬 책들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날로 각박해지는 도시의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산 조상들의 여유 넘치고 품위 있는 삶의 방식이 새로운 삶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시와 관련한 도서들도 서점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들이 다루고 있는 시들은 대부분 자연을 주제로 삼고 있다. 자연물에 마음을 기탁하여 시인의 감정을 읊는 시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정시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친근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 옛 시들이 이처럼 모두 자연이 주는 즐거움만을 추구했을까. 또 은유의 대상인 자연 뒤에는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동아시아에서 시를 짓는 시인들은 오늘날처럼 시인이라는 독립된 직업을 가지고 시를 썼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공자와 주자 같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배운 선비들로 유교적 이상에 따라 관료로서의 삶을 지향했기에 권력의 향배에 따라 삶 자체가 좌지우지 됐다. 그들이 남긴 시가 시대로부터 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을 시의 소재로 삼아도 시인의 정치적 삶이 그 속에 반영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붓끝으로 시대를 울다』는 문학과 정치라는 주제에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저자가 “역사적 사건에 언제나 한몫 끼인 시인과 시에 관한 좀 별난 이야기들”을 담아낸 책이다. 저자가 굳이 ‘별난’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지금까지의 한국 문학사에서 다룬 방식과는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시와 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와 노래를 문학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에서 벗어나 역사와 정치라는 큰 틀에서 시인들의 삶과 그들의 시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고전문학에 대한 우리의 편벽한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한시 연구의 외연을 넓혀 중국의 옛 문헌들을 살피고 외국 문학과 현재의 역사를 접목하는 저자의 노련한 글 솜씨는 학자로서의 긴 외길을 걸어오면서 쌓인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고전비평이론으로 청마 유치환의 시를 분석하고 서포 김만중의 문학 이론을 서양 문채론과 비교해보기도 했던 그의 연구는 고전문학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험적인 시도들로 평가되고 있다.
권력의 그늘에서 살아간 시인들의 비애
“역사에 남는 큰 사건에는 반드시 노래와 시가 껴묻어 있게 마련이다.” 한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시인들은 처한 위치나 신념에 따라 시와 노래를 지었다. 새로운 왕조를 찬미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멸망한 왕조의 불행을 한탄한 시가 있고, 권력 암투에서 밀려나 정치의 변방에서 마음을 달래며 쓴 시가 있는가 하면 전쟁과 기아 그리고 권력자의 착취 아래에서 신음하는 백성을 위해 쓴 시가 있다. 이 책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과 함께한 시와 노래를 통해 한 시대가 남긴 고민의 흔적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초상을 그려보려는 시도다.
역사에 그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 시인들은 지배자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새 왕조에 대한 경외감과 복속을 유도하는 노래를 불러 은밀히 저잣거리에 퍼뜨렸는데, 우리 문학사 첫머리를 장식하는 「구지가」와 노래의 배경 설화만 전해지는 「동경곡」「도솔가」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노래들에 대한 기록은 고려 시대 문헌에 남아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인 탓에 노래가 처음 불렸을 당시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저자는 노래의 성격과 중국 문헌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이 노래들이 정치적 성격의 노래로서 치자가 피치자를 다스리기 위해 고안한 다양한 상징조작의 한 방편임을 주장한다.
온갖 야만적 행위가 판을 쳤던 고려 무신정권 아래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문신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뛰어난 문재를 권력자를 위한 아첨의 도구로 쓰거나 흙을 파먹으며 시대를 한탄하거나. 고려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이규보는 “한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아부를 문학으로 실천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가 쓴 벼슬구걸 시에는 벼슬 청탁의 대상에 대고 ‘난초와 옥같이 빼어난 분’, ‘찬란히 빛나는 백옥 같은 성품을 지니신 어른’, ‘대궐 연못에 날아온 봉황’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이 시들을 보고 있자면 시대를 편력한 대문호의 궁벽한 처지에, 저자의 표현대로 “한심함을 넘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학생들을 엄청 괴롭히는 15세기 한국문학의 결정판 『용비어천가』는 후손들과 백성들에게 조상의 빛나는 얼을 교육시킬 요량으로 세종대왕이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을 동원해 만든 노래다. 그런데 바다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에 뒤지지 않는 역대 조상들의 활약을 빼곡히 적어 놓은 이 노래의 후편에는 왕들을 불편하게 만들 규계의 내용이 부록처럼 붙어 있다. 이것이 왕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신하들의 의지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선조의 원대한 뜻을 잊지 마십시오’로 끝나는 물망장을 덧붙임으로서 『용비어천가』는 단순한 아첨에서 벗어나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권력에서 벗어난 시인들의 시선
권력자의 입장에서 혹은 권력의 중심에서 쓴 시가 있다면 반대로 권력의 변방에서 쓴 시들도 있다. 이 시들은 대부분 자의든 타의든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난 시인들에 의해 써졌다.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은 여러 번의 사화로 귀결됐는데 그 때마다 중앙 정치에서 쫓겨나거나 스스로 물러난 사림들은 시와 노래로 세월을 보내야했다. 단종의 생모 안동 권 씨의 능호인 소릉 추복을 간하는 상소를 올렸다 성종의 미움을 사 은둔의 길을 택했던 남효온이나 젊은 이상주의자들을 좌절시킨 기묘사화로 상처를 안고 살았던 박상이 대표적인 이들이다. 이들은 대의명분이 용납되지 않는 정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한 시들을 썼지만 생의 마지막에는 자연 속에서 깨달은 깊이 있는 삶의 철학을 담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자신의 불행을 읊은 시가 있는가 하면 민초들의 어려운 삶을 대신한 시도 있다. 조선조 가장 유명한 시화(詩禍)의 주인공인 권필은 현실과 밀착한 시를 썼던 중국 시인 백거이를 본받은 시들을 남겼는데, 그의 시 「충주의 돌덩이」는 왕릉이나 고관들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쓰였던 충주의 유명한 비석돌을 캐내느라 고통에 빠진 백성의 모습과 죽은 자의 이름을 선양한답시고 비석 세우기를 일삼는 자들의 속물 취미와 권세 있는 자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한 시다.
임진왜란이 벌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래 부사로 발령 받은 이안눌은 전쟁에서 부모 형제를 잃고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비극을 「사월 십오일」이라는 서사시로 남겼고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과 권문세가의 탐욕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비참한 삶은 위항 시인 이광려의 시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노래와 시의 위대한 힘
시를 쓰는 사람은 불평이 많고 울음소리도 크다고 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시인을 ‘울보’ 혹은 ‘근심 많은 자’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의 불우를 울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을 울기도 했다. 제대로 울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울어주는 일이 또한 시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울음은 공간을 넘어 전파되고 시대를 넘어 메아리친다. “한 사람의 울음이 천하의 울음이 된다는 것은 바로 노래와 시의 위대함을 반증하는 말”이다.
시를 시 자체로 보지 않고 시인의 삶, 크게는 그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에서 바라본 이 책의 시도는 우리 역사 속에서 시와 노래가가 담당했던 역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한시하면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생각해온 사람들에게 한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