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좋아하세요?“
광장에서 우연히 만난 덕후와 교수,
3000년 전의 미친 전쟁과 사랑 이야기에 빠지다
누구나 알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고전이 있다. 바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다. 서양문학의 원류로 평가받지만 만육천 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구성이 많은 독자를 읽다 지쳐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리아스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은 편견이다. 사랑, 우정, 죽음, 명예, 복수, 화해 등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불멸의 주제들을 붙잡고 오늘의 시선으로 일리아스를 읽어내는 『일리아스 좋아하세요?』가 그 증거다. 아킬레우스를 사랑하는 ‘덕후’ 하길과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원전 완역한 서양고전 전문가 이준석 교수의 안내로, 인간의 함성으로 가득한 3000년 전 트로이아의 전장 한복판을 향해 떠나보자.
덕후과 교수, 광장에서 이루어진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혐오와 양극화, 세대론이 넘치는 오늘날, 20대 여성 덕후와 50대 남성 교수가 광장에서 만나 같은 고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벗이 될 확률은 희박할 것이다. 하지만 농민과 퀴어가 만나고, 청소년과 노조원이 함께한 그 겨울의 광장에서는 가능했다. 덕후와 교수는 각자의 위치에서 일리아스를 통해 광장을 읽고, 광장을 통해 일리아스를 읽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대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광장에서 벌어진 우연한 만남이 우정 어린 상호배움으로 이어진 감동적인 이야기를 두 사람의 일리아스 교환독서로 소개한다. 때론 현실에 가장 밀착한 언어로, 때론 삶의 불가해함을 묘파해내는 명석한 언어로 쉴 새 없이 ‘자기 장르’를 영업하는 두 사람의 언어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당신이 일리아스 완독열차에 강제 탑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
탄핵광장과 고대 희랍을 잇는 서간집
덕후와 교수는 어떻게 만났는가. 2024년 12월 13일, 하길은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라고 쓴 깃발을 처음 들고 윤석열 탄핵광장에 나섰다. 일리아스의 첫 문장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12월 28일, 이 깃발을 알아본 서울대 서양고전학연구소장 안재원 교수가 말을 건넸고, 하길의 이야기는 한국의 서양고전학계로 퍼져나갔다. 안재원 교수는 이후 하길의 깃발을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대학과 아테네대학에 전달했다. 한국 민주광장의 상징 중 하나가 일리아스의 고향으로 역수출된 셈이다. 이 이야기는 “일리아스 덕후가 서울대 서양고전학 교수님께 명함 받은 썰”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광장에서 펄럭이던 깃발은 또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 이듬해 3월 하길은 자신이 읽은 일리아스의 번역자 이준석 교수와 트위터에서 인사하고 광장에서 처음 대면한다. 서양고전을 혼자 공부하는 데 한계를 느끼던 하길은 이준석 교수의 안내로 공부의 깊이를 더해간다. 2025년 4월 4일 탄핵선고 후 하길은 이준석을 포함한 광장의 동지들과 함께 희랍 비극 독서모임 ‘마이나데스’를 결성했고, 이준석 교수가 재직 중인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 편입한다. 이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광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이 책은 일리아스를 통해 광장을 읽고, 광장을 통해 일리아스를 읽은 덕후와 교수의 교환독서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안 읽었다고요?
이 재밌는 걸 읽다가 포기한단 말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만육천 행 안에 오타쿠들이 좋아서 환장하는 요소가 다 들어 있더군요”라고 상기된 목소리로 외치는 하길의 언어는 고전을 독파하려고 마음 먹었다가 여러번 포기한 독자들의 경계심을 단숨에 허문다.(「깃발을 올리며」) 한의사인 하길은 극우 유튜브를 보는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책상 위의 미니 프라이드 플래그를 포기할 수 없는 본인의 난처한 마음을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가 서로의 발치에서 함께 우는 화해의 장면으로 넘어간다.(「가끔은 저도 미워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이준석 교수는 하길의 궁금증과 일리아스 해석을 넌지시 받아주면서도 “희랍어 공부 소식이 하나도 안 들리던데, 어찌 된 일인가요?”라며 더 공부하기를 재촉한다.(「화해가 불가능한 부류들도 있지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2장 죽음과 역사) ‘헥토르의 장례’(3장 공동체와 연대) 등 일리아스의 주요 대목을 한줄한줄 꼼꼼하게 읽어나가면서도, 지난겨울의 탄핵광장과 광주민중항쟁, 각자의 일터와 취미를 경유해 자기만의 사유를 펼쳐나가는 두 사람의 수다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독파에 도전하고 싶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겨울, 광장에 있었던 당신을 위한 ‘희랍책 시간’
12‧3 불법 비상계엄 이후 우리는 왜 광장에 나갔는가. 왜 어떤 이들은 키세스단이 되어 아스팔트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잠을 청했나. 여의도와 남태령, 한강진에서 우리는 왜 「다시 만날 세계」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나. 퀴어와 농민이 만나고, 교복 입은 청소년과 40대 직장인이 어떻게 같은 구호를 외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이 불가해한 광장의 연대를 일리아스를 통해 풀어낸다.
트로이아 전쟁 10년째, 아킬레우스는 어떻게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고 다시 일어섰는가. 전장의 영웅들은 어떻게 죽을 운명을 알고도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원수와 화해하고 함께 뜨겁게 울 수 있었는가. 일리아스는 분노에서 시작하지만 타인을 향한 연민으로 끝난다. 전쟁 속에서 파멸에 이른 인간이 끝내 가장 고귀한 인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길과 이준석은 3000년 전 희랍인들의 정신을 지금 이 시대의 대화로 풀어낸다. 광장의 감자튀김 트럭에서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발견하고, 응원봉의 불빛에서 진리를 발견하며,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의 눈물에서 공감의 어원을 찾는다. 12‧3 계엄 이후 우리가 겪은 희비 섞인 타임라인이 일리아스의 서사와 교차하고, 그 겨울 광장을 지켰던 당신의 이야기가 고대 희랍의 철학과 나란히 놓인다. 이 책은 그런 당신을 위한 ‘희랍책 시간’이다.
일리아스가 처음인 독자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책
서울대 서양고전학연구소장인 안재원 교수는 이 책을 두고 “가장 친절한 일리아스 안내서”라고 평했다. 권두에는 일리아스의 여섯 가지 핵심 장면을 담은 명화와 줄거리 요약을 수록해 일리아스의 내용을 전혀 모르거나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덕후와 교수의 대화 속에서 다루게 될 일리아스의 줄거리와 의미를 소개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 고대 희랍의 도기화부터 일리아스의 묘사를 세밀하게 담은 판화까지, 일리아스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눈으로 즐기게 해주고 상상력도 자극하는 다채로운 도판을 수록했다. 원문의 리듬과 힘을 그대로 살린 이준석 교수의 번역으로 일리아스의 주요 대목을 그대로 삽입해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리아스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대의 현장을 넘어 우리의 일상과 호흡하는 덕후와 교수의 목소리를 따라, 3000년 동안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불멸로 남을 일리아스의 주제들을 직접 음미해보길 권한다.
추천사
호메로스를 읽는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나의 오랜 질문이었다. 그런데 광화문 광장에서 우연히 깃발 하나를 보았다. 일리아스의 첫 문장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 깃발의 주인 하길님을 찾았다. 호메로스를 ‘최애’한다고 했다. 놀람의 연속이었다. 각자의 ‘덕질’로 연대한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광장의 열기가 가라앉은 지금도 그들은 민주주의를 투쟁의 완료가 아닌 미완료의 진행형으로 살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좋은 나라’가 바로 이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였다. 이 책은 광장에서 만난 덕후와 교수가 일리아스를 함께 읽으며 나눈 대화다. ‘좋음의 공동체’ 그 자체이면서 가장 친절한 일리아스 안내서다. 이 책과 함께 인간의 함성으로 가득한 트로이아의 전장 속으로 뛰어들어보시길 바란다. 안재원(서울대학교 서양고전학연구소장)
그 겨울 광장에 있었던 당신을 위한 희랍책 시간. 깃발 아래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해 아킬레우스의 죽음으로부터 삶을 이야기하고, 5월 광주로부터 거인 퀴클롭스와 기억의 문제를 연결 짓는다. 고대의 전쟁과, 전쟁 같은 우리의 삶에 대한 숙고가 교차하면서 두 사람의 ‘광장 자만추’는 고대 희랍의 비극과 철학으로 관심사를 넓혀간다. 일리아스의 가장 고귀한 순간을 읽으며 숭고함을 배운다. 재밌어, 짜릿해! 광장이 우리를 구한 것처럼, 고전으로 당신을 다시 살게 하시라. 우리는 결국 만나야 하니까. 이다혜(『오래된 세계의 농담』 저자)
책속에서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많이 울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막상 그 순간에는 울컥하기만 했고 기쁜 마음이 더 커서 일행들과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하길의 편지 「90년대 운동권과 10년대 활동가가 만나다니」 중에서
아킬레우스는 동료들 누구와도 나누지 못했던 공통의 감정을 프리아모스와 나눕니다. 프리아모스는 신과 같았던, 혹은 짐승과 같았던 아킬레우스에게서 연민과 동정을 이끌어내며 그를 온전히 ‘인간’으로 되돌려 놓고, 증오와 폭력을 넘어서도록 돕습니다
이준석의 편지 「광장은 자괴감에 갇힌 저를 꺼내주었습니다」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끝은 언제나 죽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한 영원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호메로스의 인간들에겐 아주 중요한 테마입니다. 광주항쟁의 시민들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우리는 오늘 여기서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을 믿고, 죽음을 불사하고 최후까지 맞서 싸웠습니다.
하길의 편지 「‘오월의 청춘’이라는 드라마를 봤어요」 중에서
소크라테스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원래 우리가 원래는 알고 있는 게 엄청 많다고 이야기해요. 이런 기하학은 물론이고요. (“기하학!”이라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놀라운 일이죠.) 모든 걸 이미 알고 있다니,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었다고요?
이준석의 편지 「기억이 없는 곳에는 인간다움도 없지요」 중에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자마자 광장이 떠올랐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옆 사람에게 담요와 핫팩을 나눠주고, 혹 배고프진 않을까 감자튀김 트럭을 보내던 그 광장요.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이 우리의 광장을 보았다면 감탄하지 않았을까요?
하길의 편지 「광장의 감자튀김 트럭에서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떠올렸습니다」 중에서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회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 민회에서 구혼자들은 이 소통을 끊임없이 방해하지요. 이로써 이들은 이타카라는 하나의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준석의 편지 「우리의 광장은 우리의 폴리스였어요」 중에서
4개월간의 광장을 보며 저는 종종 호메로스의 영웅들을 떠올렸습니다. 상식적인 논리로 생각해보면 윤석열은 탄핵되는 것이 마땅한 결말이었겠죠. 그러나 그 결과에 이르기 위래서 우리는 광장에서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을 스스로의 의지로 해내곤 했습니다.
하길의 편지 「다정함과 사랑을 믿으며」 중에서
저는 이번 탄핵 광장이 이 차이와 예민함을 뒤섞어 흐릿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수만명이 동시에 존재하는 광장에 저와 안 맞는 사람이 실제론 얼마나 많겠어요?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호메로스는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성장한, 똑같이 창을 맞으면 피를 흘리는 인간임을 강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길의 편지 「가끔은 저도 미워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중에서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연민이란, 이렇게 인간조건에서 비롯된 상실이 공유되며 솟아나는 감각입니다. 그렇게 『일리아스』는 노여움으로 시작하여 동정심으로 끝나게 됩니다. 공감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우리에게 익숙한 sympathy의 어원도, ‘함께하는’(sym) ‘고통’(patheia)이라는 희랍어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말 나온 김에 본업인 교수 말투로 좀 묻겠습니다. 요새 희랍어 공부 소식이 하나도 안 들리던데, 어찌 된 일인가요?)
이준석의 편지 「화해가 불가능한 부류들도 있지요」 중에서
깃발을 들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잠깐의 명예에 눈이 멀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광장은 뛰어난 한 사람이 돋보이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협력해야 하는 곳이었지요. 깃발에만 집중하고 있던 시선을 돌리고 나서야 광장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길의 편지 「우리의 명예는 서로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에요」 중에서
오뒷세우스가 자랑 대신 인간 운명의 연약함, 그리고 경건을 강조할 것이라고는 아테네도 전혀 내다보지 못했을 겁니다. 이것이 호메로스가 자신의 주인공에게 부여한 인간다움의 영예입니다. 다른 전사들은 물론, 신조차 닿지 못한 자리에 오뒷세우스가 서 있는 것이죠.
이준석의 편지 「인간다운 영예를 안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