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그 모든 것은 어떻게 달려왔는가?
대한민국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한국 현대사 2000년대
2000년대는 가히 ‘노무현 시대’로 불릴 만하다. 긍정적이었든 부정적이었든, 노무현은 5년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 그 앞뒤로도 ‘희망과 가능성’(2000~2002년), ‘반추와 유산’(2008~2009년)의 아이콘으로 2000년대 내내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떤 이는 노무현을 생산적 파괴의 희망을 안겨주는 개혁가로 받들었지만, 어떤 이는 파괴의 문법을 일삼는 문제적 인물로 보았다.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 편은 노무현 시대의 명암을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경계를 가로질러 냉정하게 평가했다. 정치 분야를 보면, 2002년 폐허에서 핀 꽃인 노무현 당선, 100년 정당을 외치다 3년 9개월 만에 사라진 열린우리당, 2008년 촛불집회, 2009년 노무현과 측근의 비리 의혹과 서거에 이른 부활 등을 자세하게 추적한다. 여기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연예인 성 접대 파문, 성형수술 붐, 영어 권력, 휴대전화와 ‘미드’ 열풍 등 미시사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88만 원 세대의 등장, 부동산 투기 광풍 등 서민이 더 살기 힘들어진 시대상도 다뤘다.
노무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원고지 8,200매에 오롯이 담은 노무현 시대의 성공과 좌절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통시적이면서도 공시적으로 분석, 평가한 ‘성찰의 교과서’
노무현은 한국인의 숨은 얼굴
한국인은 모두 아웃사이더다.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한국인에게는 아웃사이더의 피가 흐르고 있다. 노무현은 ‘아웃사이더’의 화신이자 지존이었다. 그는 똑똑하고 정의롭고 뚝심을 지닌 아웃사이더로서 ‘열정’의 상징이자 구현체가 되었다. 아웃사이더의 열정, 그것이야말로 2000년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그렇지만 아웃사이더 기질은 과장된 피해 의식이라고 하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뜻을 이뤄 정치·통치 영역에 들어선 뒤엔 독약이 될 수 있다. 과장된 피해 의식만이 전부가 아니다. 권모술수의 내재화 현상 또한 일어난다. 남들이 보기엔 권모술수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에는 진정성이다. 게다가 자신이 아웃사이더요, 약자라는 사실을 ‘만병통치용 면죄부’로 삼는다.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아웃사이더들은 이제 노무현이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당혹감을 느꼈다. 낮은 곳에 있을 때 아름답던 아웃사이더 기질이 높은 곳에 오르면 추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열정’이 ‘냉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열정에서 냉정으로
2000년대를 짧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열정에서 냉정으로’다. 2000년대는 열정에서 냉정으로 전환한 시대다. 시대를 지배하는 건 대체로 냉정이었다. 이 땅에서는 생존경쟁이 늘 치열했지만, 2000년대 들어 ‘꿈 없는 생존경쟁’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식자들은 이를 ‘신자유주의의 악몽’이라고 하는데, 우리 스스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망친 탓이기도 하다.
꿈 없는 생존경쟁은 영어를 종교처럼 숭배하게 만들어 기러기 아빠라는 현상과 ‘아린지’ 파동을 낳았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지만,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라는 요즘 세대는 결혼은커녕 88만 원 세대라는 자조, 비정규직이라는 일자리만 돌아올 뿐이다. 세상은 점점 각개약진을 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각개약진은 아예 한국인의 유전자에 각인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 신드롬 같은 집단적 열광이나 분노에 숨어 있는 비밀 또한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각개약진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한 집단주의 축제였던 것이다.
‘밥그릇 싸움’과 ‘승자 독식주의’를 넘어서
한국 사회에서는 이념이 ‘밥그릇 싸움’을 포장하는 용도로 동원될 때가 많았고, ‘승자 독식주의’는 사회 분열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특히 승자 독식주의는 강한 연고 문화, 정실 문화를 낳았다. 개혁 정부라는 노무현 정부가 ‘지배 세력 교체’를 내세움으로써 외려 승자 독식주의를 강화했다. 반대편에서는 체면상 ‘밥그릇 타령’을 할 수는 없으니 명분을 갖춰 욕하는 게 바로 ‘좌파 타령’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보수파는 물론 줄 서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나서야 했다. 꼭 개혁파가 맡아야 할 일을 빼고 문을 활짝 열고, 독식하지 못하게 살펴야 했다. 정권이 논공행상과 보은을 위한 전리품 이상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승자 독식주의로 배제된 사람들이 엄청난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끔 배려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승자 독식주의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더 기묘한 모양새를 띠게 되었다. ‘고소영 신드롬’이 그것이다.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을 이르는 신조어에서 승자 독식주의가 강화되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밥그릇 싸움을 위한 편 가르기와 승자 독식주의라는 습속을 버리지 못한 채 우리 편의 집권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대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2000년대 우리 사회의 자화상
한국 사회는 다양한 문제로 끊임없이 요동쳤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2000년대 내내 꾸준히 이어진 문제들도 많았다. 아파트와 재개발 문제를 다룬 꼭지만 해도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2004년), 「‘강남 불패’ 신화의 부활」(2005년), 「개포동·압구정동 평당 3000만 원 돌파」(2006년), 「재개발의 사각 동맹」(2009년) 등이 있다. 영어 문제를 다룬 꼭지 또한 「요람에서 무덤까지 영어 스트레스」(2001년), 「영어가 권력이다」(2006년), 「영어 잘하면 군대 안 간다」(2008년), 「“한국에선 영어가 ‘종교’나 다름없죠”」(2008년) 등이 있다. 10년이란 세월에도 해결하지 못한 사회문제였던 셈이다.
이 밖에도 룸살롱(「한국은 ‘접대부 공화국’인가?」(2001년), 「역사는 룸살롱에서 이뤄지는가?」(2002년), 「한국은 ‘룸살롱 공화국’인가?」(2009년)), 취업(「환경미화원 공채 응시 27%가 대졸자」(2003년),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2003년),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었다」(2005년)) 등을 보면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