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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도모르 리포트: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 (라이트 에디션)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홀로도모르 리포트: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 (라이트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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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도모르 리포트: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 (라이트 에디션)작품 소개

<홀로도모르 리포트: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 (라이트 에디션)> 짧지만 강렬한 저널리즘의 표상.
우크라이나 대기근 일명 홀로도모르(Holodomor)를 세계 최초로 알린 가레스 존스의 치열한 삶.

가레스 존스는 러시아어를 포함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뛰어난 언어능력으로 영국의 전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외교 고문으로 발탁된다. 이후 스탈린 집권기의 소비에트 연방을 방문하면서 큰 성공으로 포장된 공업화 5개년 계획과 농업 집단화의 그늘을 목도한다. 성공의 이면에 가려진, 피폐해진 농촌과 굶어죽어가는 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절규. 특히 우크라이나의 실상은 충격 자체였다. 그는 세상에 이 참상을 알린다.
저널리스트로 막 발을 뗀 젊은 나이에 이미 히틀러와 동석한 최초의 외국 언론인이었고, 레닌의 부인 크룹카타야와 막심 리트비노프 등 소련의 거물급 인사들을 인터뷰한 전도유망했던 존스의 삶은 서른에서 갑자기 멈춘다.
그의 피살을 둘러싼 의혹과 소련 비밀경찰 배후설은 바로 홀로도모르 보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책은 언론 매체에 보도된 가레스 존스의 홀로도모르 기사, 1931년 및 33년 소련 방문 일지로 구성되었다.

<본문 중에서>

지금 소련은 1921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기아가 엄습해 있다. 12년 전의 굶주림은 볼가 강 유역과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으나 지금의 굶주림은 우크라이나, 북부 캅카스(North Caucasus), 볼가 강 일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사실상 소련 전역을 유린하고 있다. 나는 이들 지역의 농민 또는 목격자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이 전한 내용은 똑같았다. 남아있는 빵이 거의 없어서 농민들은 감자와 소여물로 연명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없는 경우엔 아사하고 있다.

내가 방문한 세 곳의 농경지역 요컨대 모스코바 지역, 중앙 흑토 지대, 북부 우크라이나의 마을 20군데 어디에도 빵이 남아있지 않았다. 거의 모든 마을에서 농민들이 아사하고 있었다.

심지어 모스크바에서 30킬로미터만 벗어나도 빵이 없었다. 내가 이 모스크바 인근 마을들을 다니는 동안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끔찍해요. 빵이 없어요. 모두가 모스크바로 가보지만 4파운드까지만 얻을 수 있어요. 그것도 1킬로그램에 3루블을 줘야 해요. 가난한 가족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요?”
지난해 날씨가 이상적으로 좋았다. 기상조건은 지난 몇 년간 소비에트 정부를 축복했다. 그런데 왜 이런 재앙이 벌어진 걸까? 우선, 농민의 70퍼센트가 자신의 농지를 몰수당함으로써 일할 동기를 완전히 상실한 것을 첫째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웨일스 농부의 피를 타고 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농부나 농민이 자신의 농지를 빼앗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것이다. 지난해 농민들은 농작물의 거의 전부를 강제징발로 빼앗겨서 정작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남은 것이 없었다. 스탈린의 공업화 5개년 계획 아래서 소비에트 정부는 토지를 공유하고 트랙터로 운영되는 거대한 집단농장(콜호스)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소련과 웨일스의 농민은 한 가지 점에서 다르지 않다. 자신의 농지를 원하고 그것을 빼앗긴다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요인은 농민들로부터 소를 몰수한 것이다. 베일 오브 글러모건 주(Vale of Glamorgan, 웨일스 남동부의 자치시) 아니면 카디건셔 주(Cardiganshire, 웨일스 서부의 주)에서 시의회가 농부의 소를 몰수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렇게 몰수한 소들은 집단농장에서 공동소유하고 공동으로 돌본다고 한다. 소의 상당수는 대규모 국영 공장식 축산장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이 정책의 결과, 농민들은 자신의 재산을 아무 대가도 받지 못한 채 헌납하길 원치 않았기에 차라리 자기 손으로 소를 도살하는 일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게다가 준비가 부족했던 국영 축산장의 경우, 축사가 충분히 구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무수한 가축들이 외부환경에 노출되고 전염병에 걸려서 죽어갔다. 말은 여물이 부족해 죽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가축은 현재 지나치게 감소된 상태라 1928년도 수준을 회복하는데도 1945년에 가서야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물론 이 전제에는 소를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수입해오고 전염병이 없어야 하며 여물을 충분히 공급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1945년이라는 기준점은 모스크바에 체류 중인 한 신뢰할만한 외국인 전문가의 의견이다.

셋째 요인은 소련에서 가장 숙련된 농민(이를테면 쿨라크로 불리는 부농) 6~7백만 명이 영국에서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축출되
어 추방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2년 전에 소련 정부가 쿨라크 처단을 마무리했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유능한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야만적인 몰이는 지난겨울에 더욱 거세진 폭력으로 계속되었다. 볼셰비키는 쿨라크를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없애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쿨라크가 “마을의 자본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스크바 지역에서 한 농민 여성이 내게 말했다. “그들이 쿨라크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봐요! 소를 한두 마리 가지고 있는 그저 평범한 농민이라고요. 그들은 농민들을 죽이고 있어요. 사방으로 내쫓고 있어요. 이건 탄압, 탄압이라고요.” 나는 모스크바 인근에서 착검한 소총을 든 적군(붉은 군대) 병사에게 쫓겨 가는 굶주리고 비참한 모습의 농민들을 목격했다. 다른 농민들도 역시 가혹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농지와 가축을 몰수당한 농민들은 굶주리고 땅이 없는 농노 상태에 처해있다.

소련에서 기아가 발생한 마지막 요인으로 곡물 수출이 꼽힌다. 소련 정부는 5개년 계획 완수에 매몰된 나머지(스탈린은 1928년 시작된 공업화 5개년 계획의 생산성 목표치를 애초보다 상향조정하고 기간도 5년에서 4년으로 단축하라고 독려했다—옮긴이) 자국민이 아사하는 상황에서도 기계류를 구입하기 위하여 곡물, 버터, 계란 등을 수출해왔다. 이런 점에서 소련 정부는 식량 부족을 겪는 해에도 곡물을 수출했던 차르 정부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차르의 제정러시아 시대에서조차 지금과 같은 전방위적인 기아는 없었다.

농민의 토지 몰수, 가축의 대량 도살, 가장 근면한 농민들의 추방 그리고 곡물 수출. 이 네 가지가 지금 소련에 기아를 발생시킨 주된 원인이다.


저자 프로필

개러스 존스 Gareth Richard Vaughan Jones

  • 출생-사망 1905년 - 1935년
  • 학력 에버리스트위스 대학
    1929년 캠프리지 대학 졸업
  • 경력 1930년 영국의 전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외교 고문
    《웨스턴 메일》 기자

2021.01.0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905년 웨일스의 동남부의 글러모건(Glamorgan), 배리(Barry)에서 태어났다. 에버리스트위스(Aberystwyth, 웨일스 동부 도시)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에서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 1등급 학위(first-class honours)를 받았다. 영어까지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뛰어난 언어능력 덕분에 빠르게 외교 분야로 진출했다. 1929년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직후 잠시 모교에서 언어를 가르쳤고, 이듬해인 1930년 영국의 전 총리이자 의회의원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외교 고문으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여름 소비에트 연방과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를 처음 방문했다. 1931년 소비에트 연방을 두번째 방문했고, 이때 작성한 『1931년 소련 일지』는 1932년 익명으로 출간됐다. 1932년 가을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에서 기아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돌자 개러스 존스는 다시 한 번 소련을 방문했다. 1930년 여름 3주, 1931년 여름 한 달에 이어 1933년 3월 개러스 존스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소비에트 연방과 우크라이나 방문을 시작했다. 이 무렵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히틀러, 레닌의 부인 크룹스카야를 비롯해 소련의 거물급 인사들과 면담하는 등 이미 저널리스트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직접 목격한 기아의 참상을 세계 최초로 1933년 6월까지 영국과 미국 언론을 통해 속속 기사로 타전했다. 스탈린의 치부를 드러내 비판했다고 여긴 소비에트 연방은 향후 존스의 입국을 영구 금지했고, 친 소련 서구 언론인들도 진실을 호도하며 그를 공격했다. 그러나 존스는 굴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상을 알릴 수 있는 여러 채널(특히 그를 공격했던 월터 듀란티와 관련된 조셉 퓰리처와 경쟁관계이자 영화 「시민 케인 」의 실제 모델이기도한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만나는 등)을 접촉하며 기아의 실상을 알리려고 고군분투했다.
이후 고향 배리로 돌아와 《웨스턴 메일》의 기자로 일한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일본의 움직임에서 특이점을 감지한다. 일본 방문에 이어 다시 여러 나라를 거쳐 중국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독일 언론인 헤르베르트 뮬러(Herbert Muller)를 만나 함께 내몽고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강도단에게 붙잡혀 뮬러는 풀려난 반면 존스는 살해되는 비운을 맞았다. 1905년 서른 살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의 석연찮은 죽음에 소련의 비밀경찰이 개입됐다는 의혹과 배후설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 소개

지은이 가레스 존스Gareth Richard Vaughan Jones, 1905~1935
1905년 웨일스의 동남부의 글러모건(Glamorgan), 배리(Barry)에서 태어났다. 에버리스트위스(Aberystwyth, 웨일스 동부 도시)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에서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 1등급 학위(first-class honours)를 받았다.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뛰어난 언어능력 덕분에 빠르게 외교 분야로 진출했다. 1929년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직후 잠시 모교에서 언어를 가르쳤고, 이듬해인 1930년 영국의 전 총리이자 의회의원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외교 고문으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여름 소비에트 연방과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를 처음 방문했다. 1931년 소비에트 연방을 두번째 방문했고, 이때 작성한 『1931년 소련 일지』는 1932년 익명으로 출간됐다. 1932년 가을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에서 기아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돌자 가레스 존스는 다시 한 번 소련을 방문했다. 1930년 여름 3주, 1931년 여름 한 달에 이어 1933년 3월 가레스 존스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소비에트 연방과 우크라이나 방문을 시작했다. 이 무렵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히틀러, 레닌의 부인 크룹스카야를 비롯해 소련의 거물급 인사들과 면담하는 등 이미 저널리스트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직접 목격한 기아의 참상을 세계 최초로 1933년 6월까지 영국과 미국 언론을 통해 속속 기사로 타전했다. 스탈린의 치부를 드러내 비판했다고 여긴 소비에트 연방은 향후 존스의 입국을 영구 금지했고, 친 소련 서구 언론인들도 진실을 호도하며 그를 공격했다. 그러나 존스는 굴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상을 알릴 수 있는 여러 채널(특히 그를 공격했던 월터 듀란티와 관련된 조셉 퓰리처와 경쟁관계이자 영화 「시민 케인 」의 실제 모델이기도한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만나는 등)을 접촉하며 기아의 실상을 알리려고 고군분투했다.
이후 고향 배리로 돌아와 《웨스턴 메일》의 기자로 일한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군 세력을 확장하는 일본의 움직임에서 특이점을 감지한다. 일본 방문에 이어 다시 여러 나라를 거쳐 중국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독일 언론인 헤르베르트 뮬러(Herbert Muller)를 만나 함께 내몽고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강도단에게 붙잡혀 뮬러는 풀려난 반면 존스는 살해되는 비운을 맞았다. 1905년 서른 살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의 석연찮은 죽음에 소련의 비밀경찰이 개입됐다는 의혹과 배후설이 계속되고 있다.

옮긴이 정탄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찾아서 읽으며, 가치 있는 무명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해변에서』, 『세상의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 『덩케르크』, 『위대한 쇼맨』, 『리지』, 『미드웨이:어느 조종사가 겪은 태평양 함대항공전』 등을 번역했다.

목차

저자 소개

기사1
-토지 몰수와 가축 도살

1931 소련 일지
-서문
-소련행 배에 오르다
-레닌그라드, 소비생활
-월터 듀란티와의 만남
-레닌 부인, 크룹스카야와의 만남
-볼가 강 선상에서 만난 사람들
-콜호스(집단농장)
-트랙터 공장
-귀국길

1933 우크라이나 일지

기사2
-“빵이 없다”
-우크라이나 대기근

짧지만 강렬한 저널리즘의 표상
-가레스 존스의 생애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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