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속살인을 주제로 한 비어스의 단편 2편을 묶었다. 앞서 소개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살인」, 「개기름」 이번에 소개하는 「불완전한 화재」, 「최면술사」 이렇게 4편이 비어스가 존속살인을 주제로 쓴 단편이다. 영어권에서는 이 4편을 묶어서 『존속살인 클럽The Parenticide Club』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비어스는 특유의 블랙유머와 비틀기로 이 병적이고 섬뜩한 주제를 노련하게 끌고 간다. 곳곳에 지뢰처럼 묻혀있는 풍자를 밟으면 한번 씩 웃음이 터질지 모르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불완전한 화재」에서는 강도행각을 일삼는 아버지와 아들이 장물을 공평하게 나누려다가 문제가 불거진다. 아들은 아버지에 이어 목격자인 어머니까지 무참히 죽이고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애려고 한다. 「최면술사」는 갑자기 자기의 재능을 알아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재능은 최면술, 문제는 이걸 범죄에 사용한다는 것. 도시락 도둑이 목숨 도둑이 된 셈. 존속살인에 관한 작품 모두 광인의 황당무계한 넋두리 같은데 묘하게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책 속에서>
1872년 6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 나는 내 아버지를 살해했다. 이 행동은 그 당시에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내가 결혼하기 전, 위스콘신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와 나는 우리 집 서재에서 간밤에 벌인 강도짓의 수익을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이 살림살이였고 공정한 분배는 어려운 일이었다. 냅킨과 수건 따위는 아주 공평하게 나눴고 은식기 류의 분배도 제법 공평했으나 하나의 완성품인 뮤직 박스를 잔여물 없이 둘로 정확히 나누려고 한다면 누구든 곤란해질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재앙과 불명예를 가져온 것이 바로 그 뮤직 박스였다.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불쌍한 아버지는 지금 살아계실 것이다.
그것은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운 공예품이었다. 고급 목재로 상감을 했고 진기하게 조각했다. 다양한 음악을 연주할 뿐 아니라 메추라기처럼 삑삑 울고 개처럼 짖으며 태엽을 감든 감지 않든 빛이 비추는 아침이면 안식일을 가리지 않고 수탉 우는 소리를 냄으로써 십계명을 어겼다. 이 마지막 특성 때문에 아버지는 이 뮤직 박스에 혹했고 생전 딱 한 번의 비열한 행동을 저질렀다. 물론 아버지가 더 오래 살았다면 비열한 행동도 더 늘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그 뮤직 박스를 나한테서 숨기고는 맹세코 그걸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내가 뻔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때 강도짓의 가장 큰 목적이 바로 그 뮤직 박스를 훔치는데 있었다. -「불완전한 화재」 중에서-
내가 종종 최면술로 독심술 따위를 즐기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은 이런 현상들의 토대를 이루는 자연 법칙에 대해 내가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지 심심찮게 묻곤 한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언제나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고 가지고 싶지도 않다고 답한다. 나는 자연의 작업장 열쇠구멍에 귀를 대고 저속한 호기심으로 자연의 사업 비밀을 훔치려는 그런 연구자가 아니다. 나의 관심이 과학에 의미가 없듯이 과학의 관심은 내게 무의미하다.
앞에서 말한 현상은 당연히 간단한 것을 이른다. 우리가 단서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 현상은 결코 우리의 이해력을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단서를 찾고 싶지 않다. 내가 지식보다는 미스터리에서 더 많은 만족을 느끼는 유난히 낭만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면술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