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서클”은 H. 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번 러브크래프트 서클의 주인공은 좀비입니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의 다른 언데드에 비해 출발과 진화는 뒤처졌지만 지금은 좀비물의 홍수라고 느껴질 정도인데요. 우주적 존재들의 각축장인 크툴루 신화에서 사실 좀비의 입지는 견고하지 않은 편입니다. 좀비 뿐 아니라 지상의 다른 언데드들도 코스믹 호러 씬에서 활약할 여지가 크지 않은데요. 러브크래프트의 환상과 호러 전반으로 경계를 확장하면 지상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빈도와 활약상도 증가하긴 합니다. 스튜어트 고든(Stuart Gordon)이 B급 좀비 영화의 전설을 만들어낸 기점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이었고, 구울은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세계와 드림랜드를 종횡무진하면서 감초 이상의 활약을 펼치기도 하죠. 러브크래프트가 활동한 시기에 좀비는 다른 언데드들에 비해 기반이 약했던 것 같습니다. 문학 지면에서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지 않았고, 스크린에 남겼던 강렬한 인상과 성공도 계속 이어지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좀비 바이러스의 온상 역할을 한 것은 이른바 ‘펄프 잡지’들이었고, 그중에서도 《위어드 테일스》가 대표적이었다죠. 《위어드 테일스》의 삼인방인 러브크래프트, 로버트 E. 하워드,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도 수적으로 많진 않지만 질적으론 인상적인 좀비, 뱀파이어, 구울 등의 언데드 단편들을 선보였는데요. 이번에 소개하는 좀비 단편은 로버트 E. 하워드의 「지옥에서 온 비둘기 Pigeons from Hell」입니다. 스티븐 킹이 “우리 시대 최고의 공포 단편 중 하나”라고 극찬한 작품인데요. 하워드의 또 다른 단편 「검은 카난」과 함께 매력적인 고딕과 오컬트 분위기에서 독특한 유형의 좀비 ‘주벰비’를 창조합니다. 친구지간인 그리스웰과 브래넌은 여행 중에 하룻밤을 묵어갈 생각으로 어느 폐가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브래넌이 기괴한 죽음을 당하고 그리스웰은 도망치다가 그 지역 보안관을 만납니다. 이 두 사람은 블래슨빌이라는 멸문 집안의 저택이자 범죄 현장인 그 폐가로 다시 들어가는데요. 이 블래슨빌 집안에 얽힌 음산하고 섬뜩한 비밀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책 속에서> 그리스웰은 온몸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직감하면서 화들짝 깨어났다. 주변을 휙 둘러보는데, 처음엔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또 자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저분한 창문으로 달빛이 스며들었고, 높은 천장과 검은 벽난로가 있는 그 크고 휑한 방이 으스스하고 낯설었다. 졸음을 마저 쫓아내자, 거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거기까지 오게 됐는지 생각이 났다. 고개를 돌려 가까운 바닥에서 잠들어 있는 친구를 쳐다보았다. 존 브래너는 달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흐릿한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리스웰은 잠을 깨운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건물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건물 밖도 멀리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구슬픈 부엉이 소리가 들려올 뿐 잠잠했다. 그는 환영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렴풋한 공포로 채워진 악몽, 그 때문에 두려워 잠을 깬 것이었다. 기억을 통해서 살풍경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꿈이었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겪은 사건들이 너무도 기이하게 뒤섞여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환상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꿈속에서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을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다시 경험한 것 같았다. 갑자기 꿈이 시작된 것은, 그와 존 브래너가 지금 누워 있는 그 집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들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뉴잉글랜드의 집에서 먼 곳을 돌아다니며 울퉁불퉁한 옛 도로를 따라 소나무 숲을 지나왔다. 해질녘에 잡초와 덤불이 무성한 수풀 한복판에서 발코니에 난간이 달린 그 예스러운 저택을 발견했던 것이다. 붉은 저녁놀을 배경으로 어둠에 물든 소나무에 둘러싸여 고즈넉이 서 있는 그 검은 저택은 그들의 상상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하루 종일 숲길에서 덜컹거리느라 지쳐 있었고, 속도 메슥거렸다. 낡은 폐가는 남북전쟁 이전의 웅장함과 완벽한 퇴락의 분위기로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들이 바퀴 자국 가득한 길가에 차를 놔두고 부서져가는 벽돌 보도―무성한 수풀에 가려지다시피 구불구불한 보도―를 따라 올라가는 동안, 발코니 난간에서 비둘기 떼가 작은 천둥처럼 한꺼번에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십대 시절부터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습작을 하다 1924년 펄프 잡지 〈위어드 테일즈(Weird Tales)〉에 「창과 송곳니(Spear and Fang)」라는 단편을 실어 프로 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에도 속기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판타지, 호러, 웨스턴, 스포츠(복싱)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다. 특히 킹 컬, 솔로몬 케인, 브란 맥 몬, 킴메리아인 코난 같은 마초 영웅의 모험담이 인기를 얻었다. 코난 사가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위어드 테일즈〉에 발표하여 동시기에 활동한 H. P.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와 함께 잡지를 대표하는 작가로 인기를 얻었다.
1936년 6월, 그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앓던 결핵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회복할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자 자신의 차 안에서 권총으로 머리를 쏴서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