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합격의 기준을 찾으려는 한 소년의 엉뚱발랄한 분투기!
우리 청소년들은 수많은 기준에 둘러싸여 있다. 학교와 사회는 청소년들을 성적으로 분류하고, 그 성적에 의해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성공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으로 분류한다. 그뿐이 아니다. 점퍼의 브랜드, 블로그 글에 담을 솔직함의 함량, ‘격’이 맞는 커플의 조건 등 복장에서부터 관계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세대만의 고유한 기준들도 수없이 많다. 청소년들은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으로 자기 삶을 판단하는 데 익숙하고,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쓴다.
여기 아주 엉뚱한 ‘기준’을 찾아나선 소년이 있다. 열아홉 살 이상진은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되는 데에도 기준이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상진이의 마음속은 혼란스러워지고, 가보인 명검에 얽힌 기구한 사연, 과거의 폭력 사건까지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시공 청소년 문학 53번째 책 《인간 합격 데드라인》은 정답이 아닌 ‘질문’으로 독자의 내면을 흔드는 청소년 소설을 선보여 온 남상순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이다. 이상진은 어쩌다가 인간 합격의 기준을 찾게 되었을까? 이 작품 속에 담긴 끊임없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괜찮은 인간인가?
‘저짝섬’에서 수많은 나를 만나다
외모도 성적도 시원찮은 평범한 예비 고3 이상진. 어느 날 상진이는 자신을 기숙 학원에 보내려는 아버지를 피해, 난생처음 친할머니가 사회사업을 하고 있다는 시골 마을 작전(상진이는 ‘저짝섬’이라 부른다)으로 간다.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찾아간 그곳은 상진이가 알고 있는 모든 ‘기준’과 동떨어진 황당한 세계다. 사회사업가는 엄격하고 인자해야 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욕도 잘하고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할머니, 사법고시를 준비했다는데 영락없는 시골 아저씨인 삼촌, 조금 모자란 주제에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 하는 양분이. 거기에 가장 친한 친구인 모범생 동윤이까지 불쑥 찾아와, 상진이가 잊고 싶던 폭력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저짝섬’에서 상진이는 비로소 자신이 ‘쿨하고 평범한 소년’일 뿐만 아니라 ‘명검 기인도의 여덟 번째 상속자’이고, ‘비겁한 친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상진이를 충격에 빠뜨린 이 ‘세계’가 외국도, 우주도 아닌 경상북도의 작은 시골 마을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짐짓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얼마나 좁은 현실에 갇혀 있는지를 보여 준다. 스스로가 만든 기준이 모두 허물어지는 저짝섬에 와서야 상진이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족적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이 작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을 조금만 벗어나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가 오히려 자신의 ‘세계’를 점점 협소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를 청소년 독자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내 마음속에서 돌덩어리를 발견하다
2년 전, 상진이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윤리 선생이 상진이에게 주먹질을 했다. 거기에 항의하던 동윤이는 어금니가 두 대나 부러졌고, 정작 상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동윤이는 상진이를 아무렇지 않게 대했고, 상진이는 그 사건을 잘 넘겼다고 믿었다. 그런데 저짝섬으로 불쑥 찾아온 동윤이에게 바보 양분이가 동윤이는 좋은 사람이고 상진이는 ‘사람도 아니라’고 외친 순간, 상진이는 자기 마음속에 돌덩어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상진이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괜찮은 인간일까? 그래서 ‘인간 합격의 기준’을 찾기 시작한다.
자기 삶에 의문을 갖거나, 그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생소한 경험이다. 어른들이 준 너무나 많은 정답에 둘러싸여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자신의 문제, 내가 좋은 인간인가 하는 질문에조차 답을 찾지 못하고 흔들린다. 상진이는 자신에게 질문함으로써 과거의 죄책감을 이겨 내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질문을 잃어버린 청소년들에게 자기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되찾기를 북돋운다.
‘기인도’와 ‘카레’의 상관관계
임금이 하사한 가보 ‘기인도’를 두고 두 아들이 싸우자, 할머니는 칼을 동강 내 두 개의 부엌칼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는 기인도가 사라졌으니 법의 도리를 다하려면 자신처럼 법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삼촌은 날마다 부엌칼을 갈며 ‘이것이 기인도’라고 말한다. 마을 식당의 두 자원봉사자는 카레에 카레 가루를 얼마나 넣느냐를 두고 다툰다. 주방장 아줌마는 나쁜 향신료가 많으니 카레 가루를 적게 넣으려 하고, 다른 아줌마는 카레 맛이 나야 카레라고 주장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그때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진다. 상진이가 꾸민 장난에 양분이가 진심으로 동윤이에게 고백을 하자, 참다못한 동윤이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 정작 일을 꾸민 상진이는 울며 동윤이를 말리고, 마침내 마주 앉아 마음속 돌덩이를 고백한다. 동윤이는 윤리 선생이 자신에 대한 편견으로 상진이보다 더 세게 때렸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한 가지 사건을 두고 둘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진이는 문득, 그 모든 문제가 실은 하나의 갈등에서 빚어졌음을 깨닫는다.
모든 갈등이 자신의 기준만을 고집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자기 기준으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태도가 또 다른 갈등을 낳은 것이다. 《인간 합격 데드라인》은 상진이가 주변 인물의 관계를 관찰하고, 마치 퍼즐을 맞추듯 인간관계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모든 인물과 사건에 저마다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모든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이 작품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인간을 이해하는 보다 넓고 입체적인 시각을 열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 합격 데드라인은 무엇일까?
상진이가 그토록 고민하고, 인간 합격의 데드라인을 찾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그 기준에 들고 싶기 때문이다. 살면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있지만 비겁하기는 싫고, 이왕이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답을 얻고 싶어 한다. 어른들은 ‘공부 못하고 생각 없다’고 평가해 버리지만, 오직 ‘좋은 인간’이고 싶다는 소망에 매달리는 상진이의 모습은 진지하고 사랑스럽다.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을 관찰하던 상진이는 자기 마음속에서 해답을 얻는다. 인생에 절대적인 답은 없고, 자기 마음속 의자에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앉히며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간 합격 데드라인》에는 ‘인간 합격의 기준’이 없다. 다만 어느 청소년에게나 좋은 인간이 되고 싶은 소망, 자신의 마음속에 의자를 마련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장소설의 역할이 아닐까?
재미와 문학성, 세상을 보는 유쾌하고 건강한 시선이 담긴 청소년소설
다양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이 등장해 무심한 듯 가벼운 말을 던지고, 황당한 사건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유려한 문체는 독자를 절로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그러다 문득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질문을 담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문학이 주는 짜릿한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인간 합격 데드라인》은 중견 작가 남상순의 저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짐짓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사건들 속에서 하나의 커다란 질문을 발견하는 재미, 다양한 인간들의 어울림,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선 그리고 청소년이 마음의 힘을 되찾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독자들을 실컷 웃고, 실컷 고민하게 할 진정한 청소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