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오가이(森鴎外, 1862~1922)
시마네현 출신. 소설가, 평론가, 의사, 군인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인물로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근대 일본 소설의 거장으로 불린다. 도쿄대학 의학부 졸업 후 육군 군의관으로서 독일로 가게 되는데, 이때 접한 문학과 미술 등 문화 예술 전반에 관한 경험이 그를 소설가의 길로 이끌었다. 귀국 후, 번역 시(詩) "오모카게(於母影)", 대표 소설인 "무희(舞姫)" 등을 집필했고, 군의총감 자리에 오르며 한때 창작활동에서 멀어졌지만, 퇴임 후 역사 소설 《아베 일족(阿部一族)》, 《다카세부네(高瀬舟)》와 사전(史伝) 《시부에주사이(渋江抽斎)》 등을 선보이며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
도쿄 출신. 치밀한 구성과 냉철한 지성을 바탕으로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재학 시절 발표한 단편 소설 《코(鼻)》가 스승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동서양의 역사와 고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인간 내면의 이기주의와 위선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데 탁월했으며, 대표작으로 《라쇼몬(羅生門)》, 《지옥변(地獄変)》, 《갓파(河童)》 등을 남겼다.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사후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아쿠타가와상‘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가와 미메이 (小川未明, 1882~1961)
본명 오가와 겐사쿠(小川健作). 일본 근대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일본 아동문학의 아버지’, ‘일본의 안데르센’이라고 불린다. 니가타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의 전신인 도쿄전문학교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재학 중 발표한 첫 작품 《표랑아(漂浪児)》로 주목받은 후 소설가로 활동하다가 1926년 동화 창작에 전념할 것을 선언하고 다수의 동화와 소설 작품을 남겼다. 1961년 향년 79세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오가와 미메이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저서로는 《빨간 초와 인어》, 《달밤과 안경》, 《들장미》등이 있다.
기쿠치 간(菊池寛, 1888~1948)
가가와현 출신. 메이지 대학 법학부 중퇴 후 교토 대학 영문학과 졸업. 1918년 <무명작가의 일기>를 월간지 <주오코론>에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했다. 현재까지 활발하게 발행 중인 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를 1923년 창간하여 사업가로도 활약했다. 인간의 욕망, 윤리, 운명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남겼으며,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기쿠치 간상 등을 제정하여 문학 진흥에도 이바지했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로,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고독, 자기모순을 예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문체와 깊은 인간 이해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으며, 대표작으로 《인간 실격》, 《사양》, 《달려라 메로스》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근대문학의 고전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나가이 가후 (永井荷風, 1879~1959)
본명 나가이 소키치. 20대를 미국과 프랑스에서 보낸 후 《아메리카 이야기》, 《프랑스 이야기(발매 금지)》를 발표해 명성을 높였다. 1910년, 대역사건 이후 나가이 가후는 문학가로서의 사회적 발언을 중단하고 풍속을 다루는 소설과 수필을 발표한다. 1917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42년간 꾸준히 쓴 일기 《단장정일승(断腸亭日乗)》는 일본 근현대사 자료로 평가받으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52년 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지옥의 꽃》, 《장마 전후》, 《묵동기담》 등이 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 1886~1942)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일본 자유시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기존 정형시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고독, 허무와 고통을 섬세하고 독창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특히 개인의 내면세계를 깊이 탐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일본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예민한 감수성과 뛰어난 표현력으로 많은 독자와 문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시집 《달을 향해 짖다》, 《푸른 고양이》 등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일본 현대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사토 고세키 (佐藤垢石, 1888~1956)
본명 사토 가메키치(佐藤亀吉). 군마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한 뒤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유년 시절부터 즐겼던 낚시 경험을 살려 낚시 관련 글과 수필을 다수 집필하며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1941년에 출간한 《다누키지루》로 이름을 알렸으며 1946년에는 낚지 전문 잡지 《쓰리비토》를 창간했다. 1956년 향년 68세에 뇌출혈로 삶을 마감했다. 저서로는 《낚시 성전》, 《낚시는 청춘》 , 《마미담》 등이 있다.
가타야마 히로코(片山廣子, 1878~1957)
도쿄 출신. 외교관의 가정에서 태어나 익힌 서양적 기품과 교양을 바탕으로 시인, 수필가, 번역가로 활동했다. 도요에이와 여학교를 졸업한 후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사사키 노부쓰나에게 사사해 시인으로 데뷔했다. 마쓰무라 미네코라는 필명으로 싱, 예이츠 등의 아일랜드 문학을 번역하여 일본에 아일랜드 문학을 소개하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며, 주요 작품으로 《물총새》, 《들에 살며》 등의 시집과 수필집인 《등화절》 등이 있다.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
본명은 기타오지 후사지로(北大路房次郎). 교토 출생으로 판화, 서예, 미술, 요리, 미식, 도예, 칠공예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거장이다.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라는 철학으로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30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고, 일본 최고의 회원제 요테이 <호시가오카 사료>를 설립했다. 단호하고 직설적인 성격에 남들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성미까지 더해져 악명도 자자했지만, 일본 정부에서 요청한 인간문화재 지정을 두 번이나 거절할 만큼 그 기백과 위세가 대단했다. 국내에서 출간된 저서로는 《무타협 미식가》, 《요리를 대하는 마음가짐》, 《로산진의 요리왕국》 등이 있다.
후루카와 롯파 (古川ロッパ, 1903~1961)
본명 후루카와 이쿠로. 193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이자 수필가. 대학을 중퇴하고 집필 활동을 시작했으며 영화 평론가와 잡지 편집자로 일했다. 성대모사에 능통한 특기를 살려 연극 무대와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큰 인기를 얻었다. 만년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과식, 과음으로 얻은 당뇨병과 결핵에 시달렸다. 저서로는 《후루카와 롯파의 쇼와 일기》, 《롯파의 비식기(悲食記)》, 《영화 AB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