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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시집 청포도 오리지널판 상세페이지

육사시집 청포도 오리지널판작품 소개

<육사시집 청포도 오리지널판> - 1946년 발간 『이육사 시집』 초판 복각본을 전자책으로 읽는 재미

· 강철로 된 무지개와 같은 강인함으로 저항을 포기하지 않은 시인
· ‘글’뿐만이 아니라 ‘실천’으로써 나라의 독립을 이루고자 한 투사


▶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며 초인의 삶을 살고 죽은 이육사

『육사 시집』은 이육사 사후 2년 뒤인 1946년 육사의 동생과 신석초를 비롯한 문인들이 그를 기리고자 출간한 유고 시집으로, 이번 그 초판본을 복각하여 발간하였다.

'절정' '광야' 등으로 대표되듯이, 이육사는 ‘저항 시인’이라는 문자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저항’을 실천하며 목숨을 바친 투사였다. 공포와 체념으로 변절하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속출하던 때에, 이육사는 마지막까지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었다.

이육사는 무려 17번의 투옥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변절하지 않았고, 그가 소속되어 활동한 비밀결사단체 ‘의열단’ 단원 가운데도 단 한 명의 변절자 없이 마지막 해방의 순간까지 활동하였다고 한다.

나라를 되찾고 일제의 악랄한 만행에 저항하기 위해 지독할 정도로 싸운 투사 이육사는 그 가운데서도 시적 감수성을 잃지 않고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였다. 그의 사후 최초로 발간된 시집을 복각한 이번 『육사 시집』을 읽으며 생을 살며 지켜야 할 신념과 의지가 무엇인지, 잃지 말아야 할 꿈과 사랑이 무엇인지 가슴 아프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출판사 서평

· 매서운 칼날 위를 걷듯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단련한 투사

17차례의 투옥과 고문을 버텨 낸 이육사는 이황(李滉)의 14대손이자, 그의 친가와 외가 모두 일본식 성명 강요와 신사참배를 거부한 독립운동가 집안이었다. 이육사는 자신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옥에 갇혀 형제들이 고문을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그 고통 속에서도 그 형제들은 각자 자신들을 고문하라며 형재애와 의기를 잃지 않았다.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이름 ‘육사’ 역시 감옥 생활로 인해 탄생한 것인데, 이육사의 꿋꿋함은 그 이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육사라는 이름은 1927년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수감 생활을 할 때의 수인 번호 ‘264’에서 음을 딴 것이다.
출감 이후 안동에서 요양을 하던 때로 ‘역사를 죽인다’ ‘죽이고 싶은 역사’는 뜻을 가진 육사(戮史)라는 한자를 사용해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어서 ‘고기를 먹고 설사하다는 뜻을 가진 육사(肉瀉)를 사용해 세상에 대한 냉소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다 노골적인 이름으로 인해 일제의 표적이 될 것을 염려한 집안 어른 이영우의 권고에 따라 ‘높고 평평한 산꼭대기’의 뜻을 담은 육사(陸史)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육사는 또한 남성적인 어조로 신념을 포기 않는 단호한 시들을 써 가며 직접 군사 훈련을 받고 독립 투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많은 지식인과 투사들이 변절하고 체념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희생하였다.

이 『육사 시집』 복각본은 스스로 ‘초인’이 되어 평생을 살다 간 이육사가 살아생전 남긴 30여 편의 시를 사후 2년 만이자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발간된 유고 시집으로서 그 가치가 더한다.


저자 프로필

이육사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04년 4월 4일 - 1944년 1월 16일
  • 경력 중외일보 기자
    의열단
  • 수상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2014.10.3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 이육사(李陸史)

1904년 경북 안동에서 다섯 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자(字)는 태경(台卿)이다. 그의 필명인 ‘육사’는 자신의 수인 번호 ‘264’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예안의 보문의숙과 대구의 교남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운 뒤, 192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1925년 귀국하여 형 이원기, 동생 이원유와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고 이듬해 중국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사 훈련을 받는다.

1927년 국내로 들어와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대구격문사건 등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20여 년 동안 계속해 독립 투쟁을 벌이며 17차례나 투옥되고 고문당하기가 반복된다. 1931년 다시 중국으로 떠나 군사 간부 교육을 받았으며 1933년 몰래 귀국하여 《신조선사》 등의 언론 기관에 근무하면서 ‘육사’라는 필명으로 시를 발표한다.

반복된 투옥과 고문으로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베이징과 서울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으며, 1943년 가을 모친과 맏형의 제사 참석차 서울에 왔다가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독립을 한 해 앞둔 1944년 1월 베이징의 감옥에서 옥사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21년 안일양과 결혼하여 1941년 무남독녀 이옥비(李沃非)를 낳았다.

목차

▷ 서(序)

- 황혼
- 청포도
- 노정기(路程記)
- 연보(年譜)
- 절정
- 아편
- 나의 뮤-즈
- 교목(喬木)
- 아미(蛾眉)
- 자야곡(子夜曲)
- 호수
- 소년에게
- 강 건너간 노래
- 파초(芭蕉)
- 반묘(斑猫)
- 독백
- 일식
- 해후(邂逅)
- 광야
- 꽃

▷ 발(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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