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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 출생-사망 1762년 6월 16일 - 1836년 2월 22일

2014.11.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정약용
조선시대의 실학자. 문신(文臣). 경기도 광주 사람으로, 자는 미용(美鏞). 송보(頌甫). 어려서 아버지 재원에게 경사(經史)를 배우고, 영조 52년 상경한 후 이익의 유고를 보고 민생을 위한 경세(經世)의 학문에 뜻을 두게 되었다. 정조 1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가주서(假注書)를 거쳐 예문관 검열이 되었으나.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해미에 유배되었다. 곧 풀려나와 지평(持平), 수찬(修撰)을 지냈고, 동부승지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좌천되거나 유배되었고, 순조 18년 이태순의 상소로 풀려나와 고향에서 저술 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1836년(헌종2,丙申 75세) 2월 22일 진시(辰時)에 열상(洌上)의 정침(正寢)에서 생을 마쳤다. 이 날은 다산의 회혼일(回婚日)이어서 족친(族親)이 모두 왔고 문생(門生)들이 다 모였다. 장례 절차는 모두 유명(遺命) 및 [상의절요(喪儀節要)]를 따랐다. 이에 앞서 임오년(1822) 회갑 때 공이 조그마한 첩(帖)을 잘라 유명을 적어 두었으니 장례 절차였다. 4월 1일에 유명대로 여유당(與猶堂) 뒤편 광주(廣州)초부방(草阜坊) 마현리(馬峴里)자좌(子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마과회통] 등이 있다.

역자 - 박석무
1942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했고, 전남대 법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네차례 옥고를 치른 바 있으며, 한중고문연구소장과 13, 14대 국회의원, 한국고전번역원장과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 석좌초빙교수, 다산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다산 정약용의 철학과 사상을 대중에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해왔다.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다산의 법률관]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다산기행][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 1·2][다산 정약용 일일수행 1·2][조선의 의인들]등의 저서와[다산 논설선집][다산 문학선집](공편역)[다산시정선 상·하](공편역) [역주 흠흠신서][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등의 편역서가 있다.

<개정판 l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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