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고승 30인과의 불꽃 튀는 법거량 100화
선문답은 수행자의 이정표가 됨은 물론, 일반인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묘리(妙理)를 담고 있다. 선문답 가운데는 온갖 이론이나 망념을 내려놓고 자기를 돌이켜 보면 문득, 수긍이 가고 깨달음의 기연이 될만한 보석같은 언구(言口)들이 가득한 최고의 수행지침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옛 선사들은 수시로 법문을 통해 선어록을 강의하며 공안에 대한 독자적인 견해와 평을 제시하고 제자들의 안목을 키워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선사들의 한 마디 언행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단박에 성품을 달아 부처가 되게 한다)’이 가능하도록 인도하는 살아있는 법문이었다. 말끝에 단박 깨달으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할 것이요, 깨닫지 못한다면 화두가 된다.
이 책은 선문답이 수행과 동떨어진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아니라, 오히려 수행의 지름길을 제시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특히 영흥 스님이 온 몸으로 체험한 선문답과 선화(禪話)는 중국 선종의 언어를 답습하지 않은 한국적인 선문답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에게는 더욱 가슴에 다가오는 가르침이 될 것이다.
경봉, 전강, 춘성, 혜암, 서옹, 향곡, 성수, 숭산 선사를 비롯한 근ㆍ현대 선사 30여 분과의 95회에 달하는 생생한 법거량은 불법(佛法)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깨달음의 삶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흥 스님에게 깨달음의 기연을 준 ‘욕쟁이 도인’ 춘성 스님과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 경봉 스님과의 수차례 선문답은 중국의 조사스님들의 선문답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살활(殺活)이 자재한 선기(禪機)를 보여준다. 특히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서옹 스님과 그 시자(侍者)였던 영흥 스님과의 일상 속의 선문답은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 사제지간의 아름답고도 애뜻한 정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영흥 스님의 선문답에는 콩떡과 팥떡, 풀잎과 돌멩이, 해와 달 등 토속적인 한국형 선구(禪句)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심지어는 전통 민요인 ‘쾌지나 칭칭나네’ 등의 사설이 등장할 정도로 신명나는 문답들이 적지 않다.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고승들의 천둥과 벼락같은 살아있는 선문답이 수행자의 안목을 높여주고 단박 깨닫는 기연(機緣)으로 이끌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구체적인 간화선 구도과정과 견성 체험 기록
이 책은 현대 고승들과의 불꽃 튀는 법거량과 함께 영흥 스님의 오도(悟道) 체험과 선문답 등 구도기(求道記)가 1인칭 화법으로 서술되어 있다. 아울러 참선 입문자나 재가 수행자들이 선(禪)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스님의 선법문과 선시(禪詩), 일문일답도 수록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선문답은 간화선 수행자들이 화두(話頭)로 삼을 만큼 일반 불자들에게는 난해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선문답 역시 대부분 알음알이와 이론으로는 접근이 불가하지만, 선(禪)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관심과 공부 길을 열어주기 위해 가능한 한도 내에서 공안(公案)의 출처와 숨은 배경을 ‘사족(蛇足)’으로 달아놓았다.
영흥 스님은 이 책에서 크게 세 번의 깨달음을 체험했다고 술회하고, 구체적인 기록을 남겼다. 역대 조사스님들도 적게는 두 세 번, 많게는 여덟 번까지 크고 작은 깨달음을 체험한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 오도송이나 시적인 표현으로 언급을 대신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흥 스님은 구체적으로 깨달음 당시의 주변 상황과 개인적인 체험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를 증득할 때의 상황을 스님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 나이 42살, 음력 12월 3일 오후 5시쯤이었다. 그날도 평상시처럼 정진 중이었는데, 웬지 너무 피곤해서 토굴벽에 막 몸을 기대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희 밝아오고 온 마음 온 몸이 상쾌해 지면서 중이 된 후 2번째의 큰 깨달음이 왔다. 산을 보면 산이 되고 물을 보면 물이 되고 꽃을 보면 꽃이 되고 새를 보면 새가 되는 생사일여를 자유자재로 하는 자수용삼매의, 진여실상의 대자유 대해탈이었다. 49일 동안 오나가나 머무나 떠나나 밤이고 낮이고 어묵동정, 몽중, 숙면중에도 오매일여의 일행삼매, 일상삼매로서 번뇌망상이 사라지고 깨침도 미함도 사라지고, 생사열반도 사라지고 색공, 시공도, 유무도 사라진 영원한 대광명의 본나, 참나의 오로지 대생명의 영원한 절대 현재의 대실존이었다.”
물론 크고 작은 깨달음은 그 본질상 다른 것은 아니다. 마치 구름을 헤치고 밝은 태양을 잠깐 본 것이나, 구름이 사라져 늘 활짝 개어있는 상황은 그 깊이와 넓이가 차이가 있지만, 태양을 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차례의 깨달음에 대해 영흥 스님은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다시 나의 공부, 나의 깨달음을 돌이켜 점검해 보자면, 중이 되기 전 세 번의 깨침과 중이 된 후의 세 번의 깨침이 그 바탕은 한 터럭도 차이 없었지만, 그 맛은 다시 새롭고 완벽하게 거듭거듭 똑같이 증명해 주었다. 즉 깨칠 때는 한번이고 열 번이고 백번이고 간에 누구든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초월한 돈오돈수요, 구경각을 초월한 구경각이요, 견성성불과 견성본불을 초월한 견성본불이다. 하지만, 돈오돈수를, 구경각을, 견성성불을 지키고 쓰고 누리는 실참실행이 항상 깨어있는 본래 나로 가나 오나, 머무나 떠나나, 말하나 침묵하나, 움직이나 고요하나, 꿈속에서나 잠속에서나, 깨달을 때나 미할 때나, 죽음에서나 살았음에나 입태에서나, 윤회에서나, 만행에서나 여여부동하고 활발발하게 자유자재로 하는 오후수행이자 오후보림, 오후부처행이 항상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돈오 이후의 보임공부 명확히 제시
이 책은 견성(見性) 이후의 보임(保任: 깨달음을 보호하고 지켜가는 공부) 공부에 대해 구체적인 경험담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역사상 수많은 도인들이 ‘이치를 깨친[理入]’ 후에 ‘언행일치의 부처행[行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에 안주하고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선 수행에 있어 ‘나는 얻은 바가 있다’는 생각으로 정진을 중단하고 머무는 순간, 향상일로(向上一路: 끝없이 초월하는 깨달음의 길)는 종언을 고하고 만다. 끝없이 머무는 바 없는 무주행(無住行)을 실천하는 것이 불행수행(佛行修行: 부처행의 실천수행)이자 오후수행(悟後修行: 돈오 이후의 돈수 또는 점수의 수행), 무수지수(無修之修: 닦는다는 생각 없이 닦음)의 보임공부인 것이다.
이러한 보임공부에 대해 영흥 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깨칠 때는 일체 공부가 다 된 것이지만, 계속 여여부동하게 지키고 쓰고 누려야 되는 것이다. 견처(見處)와 견행(見行)이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어묵동정, 꿈속에서나, 잠속에서나, 죽음에서나, 삶에서나 영겁도록 자유자재하게 꼭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흥 스님은 “구경각을 이루고 견성성불이 되고 견성본불(見性本佛)이 되어 이를 지키고 쓰고 누린다 해도 정진을 놓아서는, 공부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면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보임공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중국의 역대 선어록에도 보이지 않는 귀중한 기록이라 사료된다.
독자적인 가풍 ‘산을 세우고 물을 펼친다’
이 책의 서문에 영흥 스님의 수행 가풍(家風)을 노래한 시가 적혀 있지만, ‘산을 세우고 물을 펼친다’는 이 책의 제목은 스님의 선풍을 더욱 압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옛 조사나 선지식들의 언구를 흉내 내지 않는 영흥 스님만의 독창적이고도 생동감 있는 목소리는 이 선어록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선문답 가운데 하나인 ‘산을 세우고 물을 펼친다’편은 성철 스님과 숭산 스님의 가풍과 비견되면서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다음날 서옹 큰스님의 동안거 결제법문을 여러 대중들과 함께 법회에서 경청한 후 점심공양을 마치고 큰스님을 뵙고 떠나는 큰절을 세 번 올리니 물으셨다.
“어떤 것이 1구인고?”
“산을 세우고 물을 펼칩니다.”
“어떤 것이 2구인고?”
“산은 푸르고 물은 흐릅니다.”
“어떤 것이 3구인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입니다.”
“좋다, 좋다, 좋다. 훗날 천하의 안목은 오로지 그대일 것이다. 내 법을 너에게 전해주니 이제 내 법을 받아가거라.”
“어떤 것이 큰스님 법입니까?”
“사자를 울부짖게 하여 붉고 흰 꽃을 난발케 하고, 흰 학을 날게 하여 산과 물을 푸르게 한다. 절룩바리 나귀가 뒷발을 걷어차고 천리마를 앞지르니 이로부터 천하가 청풍명월로 길이 태평하구나.”
성철 스님은 1981년 1월 20일 종정 취임식에서 취재진에게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山是山 水是水(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짧은 법어만을 내려보내 세간에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준 적이 있다. 영흥 스님은 성철 스님의 이 법어를 염두에 두고 독자적인 안목으로 1구, 2구, 3구를 말하고 있다.
먼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경지는 마음이 마치 깨끗한 거울과 같게 되어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진리 아닌 것이 없는 단계이다. 즉 진여실상의 세계를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고 하는 경지는 진여를 생활 속에 올바르게 수용(受用)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숭산 스님이 독창적으로 제시한 법어이다.
‘산을 세우고 물을 펼친다’는 것은 진여실상을 깨달아 자유자재로 누리고 쓰는 묘용(妙用)의 단계로 풀이할 수 있다. 영흥 스님이 진여의 활발발한 작용을 강조하기 위해 독창적으로 제시한 법문이다.
물론 이상 세 가지 법문에 우열이 있다고 분별해서는 안된다. 다만, 중생교화를 위한 보살행의 적극성을 보다 강조한 새로운 안목을 눈여겨 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