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몸에 대한 동물인류학적 탐험의 최종 보고서
국내에 《털 없는 원숭이》로 이름을 널리 알린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인류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새 책 《벌거벗은 여자(원제: The Naked Woman)》가 출간되었다. 한국에 소개되는 일곱 번째 저서인 《벌거벗은 여자》는 2004년 9월 영국과 동시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 책은 종래 《털 없는 원숭이》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그보다 여자의 몸에 초점을 맞추었고 훨씬 더 깊이 파고든 저작이다. 그래서 저자 스스로 《털 없는 원숭이》에서부터 시작된 여자 몸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을 통해 이제 종착역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벌거벗은 여자》는 여자의 몸에 관한 동물학적·인류학적 탐험의 최종 보고서라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여자 몸을 22개 신체 부위로 나누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차례로 탐험해가는 구성도 흥미롭다. 그동안 펴낸 저서들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폭넓은 관점을 제공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여자 몸의 복잡한 원리와 신비, 그리고 진화 과정의 숨겨진 비밀을 모두 파헤친다. 그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영장류에서 인간 종으로, 그리고 다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기까지, 여자 몸을 둘러싸고 일어난 수천만 년에 걸친 변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데스몬드 모리스는 단지 동물행동학적 측면에서만 여자의 몸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연과학을 넘어 인문학으로까지 시야를 넓히며 여자의 몸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마련해준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 현대 사회, 그리고 문명 사회에서 비문명 사회의 부족 집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집단을 아우르며 여자의 몸을 둘러싼 경이로운 사실들을 밝혀낸다. 적어도 여자의 몸에 관한 한, 이만큼 방대한 자료와 오랜 연구 경험이 축적된 책은 당분간 만나기 힘들 것이다.
왜곡과 편견을 넘어 여자의 몸을 바로 알게 해주는 책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여자의 몸은 가장 정교하고 미묘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데스몬드 모리스가 여자의 몸에 천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자야말로 지구상 모든 생물체 가운데 가장 진화한 존재이자 가장 아름다운 유기체라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다른 어떤 종의 수컷과 암컷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렇다면 같은 인간 종으로서, 여자는 왜 남자보다 더 진화한 몸을 갖게 되었을까? 데스몬드 모리스는 진화의 과정에서 정교하게 ‘디자인된’ 여자 몸의 놀라운 메커니즘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여자의 몸은 대개 가슴이나 성기, 엉덩이, 다리 등 관능적 신호를 전달하는 신체 부위들이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 책은 이들 부위를 포함, 그동안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는 다른 부위, 이를테면 눈, 코, 입, 귀, 어깨, 등, 발에 이르기까지 여자 몸의 전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여자의 몸을 머리에서 발까지 개별 장으로 나누고, 모든 여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 특징을 제시한 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이러한 특징들을 어떤 식으로 강조하고 억압했는지 설명한다.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 속에서 여자의 몸은 풍만한 가슴과 매끄럽게 쭉 뻗은 다리, 날씬한 허리, 적당히 탄력 있는 엉덩이로 그 이미지가 굳어져왔다. 여자 몸에 대한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는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여자의 신체를 인위적으로 축소하고 과장하는 등 억압을 가해왔다. 더 극단적으로는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기 할례의 관습까지 있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도 매년 200만 명에 달하는 어린 소녀들이 야만적인 관습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저자는 여자의 몸이 겪어온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설명하며,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혹은 남자의 소유물로 취급해온 남성 중심의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인류의 진화를 연구해온 저자가 볼 때,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이런 남성 지배적 경향은 수백만 년에 걸쳐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한 방식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동물의 한 종으로서 인류가 눈부신 성취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노동의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는 데 있다. 생존을 위해 서로에게 모든 걸 맡기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온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어느 쪽이 우월한 존재가 되어 다른 쪽을 지배한다는 발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부터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신체적으로 억압받는 여자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이 책이 여자의 몸을 둘러싸고 빚어진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고, 남자와 여자가 조화롭고 평등한 관계로 ‘진화’하는 데 귀중한 밑거름이 되리라 기대한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지적 탐험
데스몬드 모리스가 내는 책은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고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곤 한다. 동물행동학 혹은 문화인류학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비전문가 독자들 앞에 풀어내는 능력은 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그래서 막상 책을 접하면 “단 한 줄도 지루하지 않게 쓴 책”이라는 평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한 주제에 대해 오랜 시간 탐색하고 연구한 결과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자의 몸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제대로 알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남녀 독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저자는 영국 태생이지만 이 책에서 전 세계 모든 인종, 모든 민족의 여자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그 속에 한국 여성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책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반영해, 이 책에는 한국어판을 위한 별도의 저자 서문이 실려 있다. 그 외 70여 컷의 컬러 사진과 상세한 사진 설명을 곁들여 다양한 문화권 여자들의 특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여자의 몸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서로서,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책 읽는 재미와 함께 풍부한 교양과 지식을 안겨줄 대중 교양서가 될 것이다.